독일 제치고 차기 잠수함에 국산 연료전지 탑재
  • 이상욱 영남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3 14:00
  • 호수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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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 기업 CEO 인터뷰] 잠수함용 수소연료전지 독자 개발한 범한산업㈜ 정영식 대표이사

[편집자주] 신기술에 목마른 기업인들이 기술 개발에 뛰어들며 우리나라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경기 침체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기 위해 신기술 기업 CEO 인터뷰를 게재한다. 그들의 사업기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한민국의 경제 미래를 탐색해 본다. 

“수소는 연소 이후에도 공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연료입니다. 수소로 가정과 건물에 전기를 공급하고, 수소연료전지 기반 차량이 도로를 달리는 ‘무공해 사회’ 구축이 최종 목표입니다.” 8월14일 경남 창원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있는 수소기업 범한산업㈜에서 정영식 대표이사를 만났다. 최고경영자(CEO)이기 전에 연구 실무자이기도 한 정 대표이사는 연구실을 잠시 벗어나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정영식 범한퓨얼셀(주) 대표이사(사진 오른쪽)가 자사 R&D 부서 직원과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범한산업
정영식 범한퓨얼셀(주) 대표이사(사진 오른쪽)가 자사 R&D 부서 직원과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범한산업

세계 두 번째로 잠수함용 수소연료전지 개발

정 대표이사가 1990년 설립한 범한산업은 600억원 매출 규모의 중소기업이다. 지난해 물적 분할을 통해 설립한 범한퓨얼셀은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범한산업은 2018년 9월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수소연료전지를 3000톤급 차기 잠수함인 장보고Ⅲ, 도산 안창호함에 탑재하며 수소기업으로서 자체 판매 브랜드를 갖게 됐다. 관련 글로벌 시장이 수천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만큼 높은 수익도 기대된다. 

범한산업은 도산 안창호함에 수백㎾급 수소연료전지(PH1)를 4대 탑재했다. 정 대표이사는 “독일 TKMS와 지멘스가 수소연료전지 잠수함을 만든 이후 세계 두 번째로 잠수함용 수소연료전지를 개발했다”며 “이런 성과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줬다는 것보다는 수소산업 기술 개발에 청신호를 줬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범한산업은 수소연료전지 관련 설계와 생산 공정 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잠수함용 수소연료전지 특허 1개를 획득했고, 8개를 추가로 출원 중이다. 

수소 분야 도전은 2015년 GS칼텍스의 수소연료전지 사업을 양수받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GS칼텍스는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정 대표이사는 어차피 수소 분야에 뛰어들기로 한 것, ‘빨리 제대로 해보자’고 결심했다. 그는 GS칼텍스의 특허권을 비롯해 설비·기술인력 등을 모두 이전받고 군수용 수소연료전지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정 대표이사는 “기술 개발을 진행하면 할수록 크게 늘어나는 개발비를 중소기업이 홀로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GS칼텍스가 수소연료전지에 대한 응용연구까지 마친 터라 우리는 기술 이전을 통해 상용화 시간과 개발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잠수함용 수소연료전지의 수입대체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장보고Ⅲ급 잠수함 9척이면 금액이 수천억원에 달한다. 또 214급 9척 수소연료전지 교체 사업을 포함하면 3000억원 이상의 수입 대체 효과가 생긴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범한산업의 잠수함용 수소연료전지는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됐다. ‘세계일류상품’ 인증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주관하는 어워드인데,  범한산업의 잠수함용 수소연료전지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을 인정받아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일류상품이 된 것이다. 정 대표이사는 “세계일류상품은 글로벌 시장 규모가 연간 5000만 달러 이상이거나 수출 규모가 연간 500만 달러 이상인 상품 중 세계시장 점유율 5위 이내이면서 5% 이상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는 상품에 한해 선정된다”며 “우리 수소연료전지가 정부로부터 세계적인 톱클래스 경쟁력을 가진 기술로 인정받은 셈”이라고 자부했다. 

정영식 범한산업(주) 대표이사가 자사 R&D 부서 직원들과 사진 촬영하면서 사기를 북돋우고 있다. ©범한산업
정영식 범한산업(주) 대표이사가 자사 R&D 부서 직원들과 사진 촬영을 하면서 사기를 북돋우고 있다. ©범한산업

범한산업 성공의 출발점은 ‘와이(why·왜)’

군수용이 아닌 민수용 연료전지도 상용화했다. 5㎾ 건물용 연료전지가 대표적이다. 처음부터 정부 에너지 정책과 보조를 맞추면서 공략한 것도 주효했다. 건물용 연료전지 브랜드 자체가 신뢰를 얻으면서 한국에너지공단 ‘건물지원사업’에 참여하는 등 가치를 갖게 됐다. 그러면서 매출도 수직 상승했다. 지난해 20억원으로 시작해 올해는 200억원이 예상된다. 불과 2년 만에 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정 대표이사는 “범한산업은 수소 사회 전환을 위한 중요 인프라인 수소충전소 사업도 추진 중이다. 최근 수소 보급을 위한 특수목적법인 수소에너지 네트워크의 13개 회원사 중 하나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립한 지 3년 만인 1993년부터 국내 공기압축기 시장을 석권해 온 이 회사가 어떻게 이 굴뚝산업을 수소 기반의 신재생 에너지 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의 여느 성공한 기업이 그렇듯, 정 대표이사의 출발점은 ‘와이(why·왜)’였다. ‘수소로 어떻게 미래 에너지 문제를 개선할 것인가’란 문제로 시야를 넓혔다. 정 대표이사는 “수소 경제로의 전환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앞으로 수소 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이르면 10~20년 안에 수소가 에너지 시스템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대표이사는 “회사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에서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판매하는 모든 과정에서 연구개발이 가장 중요하고 선행돼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물론 중소기업이 그런 일을 해내기란 쉽지 않다. 그는 범한산업만의 두 가지 기술 개발 전략을 소개했다. 우선 공기압축기 부문 기술 개발은 경남 창원의 ‘범한기술연구소’가 담당한다. 주요 거래처인 해군과 조선해양업체, 원자력발전소 등은 제품의 높은 신뢰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여태까지 맞춤형 고압압축기를 개발해 온 범한기술연구소에 맡기기로 했다. 

더 핵심적인 전략은 ‘범한기술원’에 있다. 정 대표이사는 올해 신설한 서울 마곡동 ‘범한기술원’이 수소 분야 기술을 연구개발하면서 수소 산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수소 산업 우수 인재를 범한기술원에 대거 확보했다”며 “우리나라 수소 산업 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것”이라고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인터뷰 말미, 기자가 다른 중소기업 경영자들을 향한 조언 한마디를 요청하자 그는 “세상 환경이 너무 빨리 변한다. 산업 환경과 기업 환경 트렌드가 바뀌고, 사회적 니즈(needs) 또한 마찬가지다. 변화하는 산업구조에 재빠르게 적응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사업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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