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라보는 정부와 의사의 ‘동상이몽’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8.31 08:00
  • 호수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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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두고 전문가는 “시급”, 당국은 “신중” 

코로나19 사태 앞에서 정부와 전문가의 상황 판단이 어긋나고 있다. 의사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를 권고해도 정부가 듣지 않다가, 위기가 닥치면 따라가는 형국이다. 엇박자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판이다.

당장 현실이 된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서도 의견차가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8월23일 전국을 대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2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그러자 대한감염학회 등 전문학술단체는 다음 날 성명을 통해 “거리 두기 3단계 격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현재 상황은 정부가 제시한 3단계 기준을 이미 충족했다”며 “방역 조치는 조기에 적용돼야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감염학회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월 “대한의사협회(의협)보다 더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모인 곳”이라고 평가한 곳이다.

단 그들의 조언을 따르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박 장관은 8월24일 “감염 확산을 이번 주 내에 막지 못하면 (거리 두기) 3단계로 올라가는 것도 불가피하게 검토해야 하지 않느냐고 예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가피하게 검토”란 표현에서 상향 조치를 확언하긴 힘들다는 뉘앙스가 읽힌다. 이후 ‘3단계 격상설’이 인터넷에서 퍼지자 박 장관은 8월27일 “가짜뉴스는 방역 당국의 억제 조치를 무뎌지게 만들 것”이라고 경계했다.

8월19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보건복지부-대한의사협회 긴급 간담회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전문가들 조언보다 한발 늦은 대응이 사태 키워

정부가 민간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제한 건 지난 3월22일이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각 지자체에 행정명령인 ‘집단감염 위험시설 운영제한 조치’를 내렸다. 15일간 종교·체육·유흥시설은 운영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고강도 조치가 시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감염병 위기경보가 있다. 위기경보는 ‘관심-주의-경계-심각’ 4단계로 나뉜다. 최고 단계인 심각에 이르면 범정부적으로 최고 수준의 대응에 들어간다.

정부는 1월27일 위기경보를 ‘경계’ 수준으로 높였다. 반면에 의사들은 곧 “심각 단계로 격상하자”고 제안했다. 2월1일 의협 명의의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서다. 의협은 이틀 뒤에도 “정부는 충정 어린 권고를 심각히 받아들여 달라”고 호소했다. 반면에 정부는 “현 위기경보를 유지하기로 했다”(2월9일 정세균 국무총리). “위기경보 조정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2월15일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 등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다 2월18일 대구 신천지 집단감염 사태와 맞닥뜨렸다. 확진자는 3일 만에 세 자릿수로 늘었다. 결국 2월23일 정부는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조정했다.

이후 확진자는 감소세를 보였다. 5월5일에는 최저치인 3명을 기록했다. 다음 날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생활방역’으로 전환했다. 지금의 거리 두기 1단계에 해당한다. 느슨해진 방역체계는 하루 만에 다시 위기에 처했다. 5월7일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이 확인된 것이다.

다시 의료계가 나섰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5월9일 페이스북에 “5월5일 이후 2주 경과를 보고 생활방역으로 넘어갔으면 했다”고 썼다. ‘2주’는 코로나19의 최장 잠복기로 알려져 있다. 그의 주장은 언론을 타고 퍼졌다. 뒤이어 의협도 5월11일 “거리 두기 완화는 원칙에 따라 단계적·선택적으로 적용돼야 한다”며 “근거 없는 낙관만으로 강행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우려했다. 그사이 클럽발 누적 확진자는 6월초까지 277명이 됐다. 7월말에는 사랑제일교회가 코로나19 전파의 축으로 지목됐다. 단 생활방역 단계의 조정은 없었다.

8월13일.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이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거리 두기 상향 조치가 불가피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거리 두기 1단계(생활방역)로 전환한 지 딱 100일 만이다. 이틀 뒤 열린 광화문 집회는 불을 댕겼다. 정부가 8월16일 서울·경기 지역부터 거리 두기 2단계를 적용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8월27일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441명을 기록했다.

정부가 뒷북 대응 반복하는 이유는?

정부는 왜 자꾸 뒷북 대응을 반복하는 걸까. 우선 경제와 방역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갈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경제 살리기를 의식하다가 방역에 소홀해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3단계 격상을 망설이는 것도 그럴 경우 닥칠 경제적 후폭풍을 염려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당장 의사들의 권고대로 거리 두기가 3단계로 올라가면 10인 이상 모임이 금지된다. 또 주점, 헬스장, 종교시설 등 중위험 시설도 문을 닫아야 한다. 민간의 대규모 피해가 예상되는 지점이다.

실제 거리 두기가 한창이던 지난 4월 유학원, 노래방, 헬스장 등 소상공인 26개 업종의 매출이 지난해 4월보다 줄어들었다. 경영컨설팅 기관인 세종경영자문이 개인 신용카드 소비액을 분석한 결과다. KB증권은 “수도권에서 거리 두기 3단계가 2주 시행되면 연간 성장률이 최대 0.4%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3단계 격상 시) 막대한 경제 타격을 감내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도 이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다. 종교계와 소상공인의 반발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경제적 영향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다. 유럽 비즈니스스쿨 ESCP는 7월28일 “코로나19에 관한 수많은 통계를 분석한 결과, 고강도의 빠른 거리 두기 조치는 확진자 수와 경제적 손실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는 논문을 냈다. 린다 선스톰 워싱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4월 “거리 두기로 정상화된 사람들이 갖다줄 혜택이 미국 경제가 입을 손해보다 훨씬 크다”고 예측했다. 한발 앞선 거리 두기 조치가 장기적으로는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의사들이 “철저한 방역이 단기적으로 경제를 얼어붙게 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전문성이 부족한 관료집단이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컨트롤타워는 보건복지부였다. 그 수장인 박능후 장관은 학계(사회복지학과 교수) 출신이다. 이 때문에 보건의료 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시각은 2017년 청문회 때부터 불거졌다. 의협은 올 2월 방역 실패의 책임을 박 장관에게 돌리며 즉각 경질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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