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회고록] “비핵화 협상 과정서 ‘문재인 제외’ 생각했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9.28 11:00
  • 호수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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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트럼프에 대한 반감도 적나라하게 표출…“입만 열면 거짓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서 지난해 9월 전격 해임된 존 볼턴이 퇴임 후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을 출간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감을 드러낸 이유는 이 책에 자신의 이율배반적인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서다. 볼턴 전 보좌관의 눈에 비친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인이라기보다 ‘장사꾼(Business Man)’에 가깝다.

중동의 화약고인 시리아 사태를 놓고 러시아와 갈등을 빚은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자국 내 화학무기 사용을 감행하자 참모들과 회의에 들어갔다. 겉으로는 아사드 정권에 물리적 타격을 입히겠다고 떠벌렸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된 공격을 감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볼턴 전 보좌관은 분통을 터트렸다. “트럼프는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릴까 생각했지만 좋은 공격 목표가 없어 취소했다고 했다. 그래도 ‘공격할 생각은’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릴 1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는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자신이 싱가포르 회담을 바라는지 아닌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을 안 하느니 차라리 하는 편을 택하겠어. 하지만 비핵화를 확보하지 않으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회담장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호감을 표시하자 그 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북한과 맺는 그 어떤 핵 협정이건 그에 대한 상원 승인을 받아보겠다’고 말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폼페이오(미 국무장관)가 내게 슬쩍 자기 노트를 디밀며 ‘입만 열면 거짓말이군’이라고 썼는데 나도 동의했다”고 밝혔다.

ⓒAP 연합

갈팡질팡하고 우유부단한 트럼프 행동 조롱

볼턴 전 보좌관은 자신의 회고록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메르켈 독일 총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등 각국 정상에 대한 느낌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에 대한 평가다.

미 정가에서 볼턴 전 보좌관이 지일파(知日派) 정치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갈등 관계에 놓인 한·일 양국을 바라보는 시선도 대단히 편향돼 있다. 사실상 일본 쪽 입장에 더 기울어져 있다.

“문재인은 1965년에 수립된 한·일 기본관계조약을 뒤집으려 하고 있었다. 그는 역사 문제를 이슈로 만드는 일본이 문제라고 말했지만 이 문제를 꺼내는 쪽은 일본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목적에 이용하려는 문재인이었다. 내가 보기에 문재인은 국내 문제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한·일 관계 이슈를 꺼내들어 그 어려움을 피하려고 했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 중에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볼턴의 주장은 사실상 일본 쪽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책에서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조현병 환자(Schizophrenic)’라고 평가해 추후 외교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뿐만 아니라 회고록 곳곳에서 볼턴 전 보좌관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펴가며 남북, 북·미 관계에 주도적으로 나선 우리 정부에 대해 적잖은 반감을 표시했다. “4월12일 시리아 사태 처리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나는 한국 측 파트너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만났다. 정(정 실장)은 애초에 김정은에게 트럼프를 초대해 보라는 제안을 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나중에 인정하는 말을 했다. 이 모든 외교적 댄스는 한국의 작품으로, 김정은이나 우리 측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의제와 관련이 있었다.”

그는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북한 비핵화라는 미국의 근본적인 국익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 같았다”고 평가했다.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볼턴은 “나는 원래 ‘종전선언’이 북한이 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그게 문재인 측에서 통일 의제를 지지하기 위해 나온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며 한국 측의 중재 노력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볼턴 전 보좌관의 불편한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평화회담’을 개최해 북한이 핵무기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면에서 위험한 국가가 아니라고 암시함으로써 우리가 가한 경제제재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그래서일까. 볼턴 전 보좌관은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문재인을 제외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AP 연합

“세계 정상들 중 트럼프와 가장 친한 사람은 아베”

반면에 일본에 대해선 후한 평가 일색이다. 정의용 실장에 대해 인색하게 평가했던 그였지만 일본 측 파트너인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국장과의 대화내용을 소개하면서는 북핵 비핵화 해법에 대해 “내 생각과 거의 같았다”고 평가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2017년 2월 트럼프 대통령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아베 전 총리가 회담 전에 자신을 향해 “‘(정부 관료로) 돌아온 걸 환영한다’며 나를 맞이했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도 15년이 넘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책에서 볼턴 전 보좌관은 “내가 보기에 전 세계 정상 중 트럼프와 가장 친한 사람은 바로 아베였다”고 기술했다. 일본이 한국을 향해 무역보복을 감행한 것도 배후에 볼턴 전 보좌관과 같은 네오콘(강경 보수주의자)들의 든든한 조력이 있기에 가능했음을 연상케 한다.

볼턴 전 보좌관의 눈을 통해 비춰진 아베 전 총리와 일본 정부는 한반도 통일의 훼방꾼이다. 북핵 문제에서는 네오콘보다 더 강경하다. 아베 전 총리의 부친이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을 상대로 싸운 가미카제 조종사였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가문이 굳센 품성을 지니고 있다”고 칭찬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밖에도 자신을 가리켜 미국우선주의자라고 밝힌 볼턴 전 보좌관은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영국 보수주의 경제학자), 사회학은 에드먼드 버크(영국 보수주의 정치가)와 비슷하며, 내가 생애 첫 선거운동에 참여한 것은 1964년 배리 골드워터 공화당 후보를 위한 선거운동이었다”고 밝혔다. 상원의원을 역임한 골드워터는 ‘힘의 외교’를 강조한 미국 공화당 내 강경 주전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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