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과 트럼프가 그 방에서 나눈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
지난 1월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의 한 보도가 워싱턴 정가는 물론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불과 4개월 전까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이 자신의 백악관 근무 경험을 토대로 한 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보도였다. 이미 완성된 초고를 입수한 NYT는 내용 일부를 밝히기도 했다. ‘The Room Where It Happened(그 일이 일어난 방)’란 제목부터가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이 책의 존재는 오는 11월3일 미 대선을 앞두고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백악관은 회고록 출판을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볼턴을 “미친 사람(wacko)”이라 칭하며, 회고록에 대해 “거짓말과 가짜 이야기들로 된 지루한 책”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출간이 확정되기도 전에 이 책은 미국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할 만큼 미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미국 법원은 6월20일(현지시간) 백악관의 출판금지 요청을 기각했다.
이 책에는 2018년 6월과 2019년 2월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갖가지 비화도 담겨 있어 국내에서도 그동안 큰 관심을 모았다.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여러 보도를 통해 책의 내용들이 일부분씩 간헐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시사저널은 《그 일이 일어난 방》의 한국어판을 9월24일 출간했다. 이를 계기로 볼턴이 자신의 시각에서 쓴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요약했다.
#1.“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은?” “50 대 50입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가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부터 꾸준히 새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요직의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그는 백악관 보좌관에 정식 임명된 2018년 4월 이전에도 자주 백악관을 드나들며 트럼프 대통령,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등과 주요 정세에 대해 토론했다. 트럼프는 2017년 12월7일 볼턴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북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취임 첫해인 2017년 트럼프가 한반도 전쟁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던 정황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나는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맞서 선제공격을 해야 하는 이유와 그게 어떻게 효과를 발휘할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DMZ 북쪽에서 서울을 위협하는 북한의 포병대를 상대로 대대적인 재래식 폭탄 공격을 감행해 사상자들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는지도 설명했다. 그리고 만약 중국이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방치하거나 무력을 사용할 경우를 가정했을 때 왜 미국이 양자택일을 해야 할 시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지도 설명했다.
그때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대안은 한국 주도로 한반도를 통일하는 방안을 모색하거나 북한 정권을 바꾸는 방법이 있었다. 이 둘 다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데 우린 중국에 그런 이야기를 아직 꺼내본 적도 없었다. 트럼프가 물었다.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요? 50 대 50?” 나는 다 중국에 달린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50 대 50일 거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켈리를 보며 말했다. “볼턴의 생각이 당신 생각과 일치하는군.”』
#2.“그러니까 의회에 있는 광대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보수 인사들 중에서도 강성 매파로 통하는 존 볼턴에 대해 미국 언론은 물론 의회에서도 그를 기피하는 분위기는 이 책에서도 자세히 엿볼 수 있다. 볼턴을 기용하기 위해 계속 기회를 엿보던 트럼프는 2018년 3월6일 그를 다시 백악관으로 불러 구체적인 자리에 대한 조율에 들어간다. 국무장관을 원했던 볼턴은 결국 의회의 부정적 기류 탓에 청문회가 필요 없는 백악관 보좌관으로 자리가 정해진다. 그것도 공화당 내의 반대를 염려해서.
『이란 핵협정에 대해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난 거기서 나올 거니까. 기존 지지자들이 그걸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말하긴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트럼프는 틸러슨(국무장관)을 해고하고 싶어 죽겠다는 이야기로 넘어가서 이런 말을 했다. “당신도 뭐가 잘못됐는지 잘 알잖아요. 당신을 그 자리에 앉히면 정말 좋겠는데.” 하지만 그는 이어서 상원 인준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당시 51 대 49로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힘들 거라고 했다. “랜드 폴 개자식은 당신에게 반대표를 던질 거고, (중략)
그 자리(국무장관) 말고 또 관심 있는 곳이 있어요?” 나는 대답했다. “국가안보보좌관요.” 그러자 켈리가 침묵을 깨고 그 자리는 상원의 인준이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트럼프가 만족해하며 물었다. “그러니까 의회에 있는 광대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자 켈리와 나 둘 다 대답했다. “맞습니다.”(중략)
켈리와 같이 집무실에서 나왔을 때 켈리가 물었다. “당신이 임명되면 언론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해 봤어요?” 나는 유엔 대사로 임명되었을 때 이미 충분히 겪어봤다고 대답했다. 켈리가 말했다. “맞아요, 그때도 난리가 아니었죠. 하지만 어쨌든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 대통령님은 지금 진지하시니까.” 나는 다년간 언론에 너무나 많이 시달렸기 때문에 그들의 반응이 어떨지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그때쯤에는 내가 입은 마음의 상처에 생긴 흉터 위에 또 다른 흉터가 생길 정도였으니까. 웰링턴 공작이 했던 말처럼(출처는 분명하지 않지만) 언론에 대한 내 태도는 대략 이렇다. “다들 기사 쓰고 지옥에나 가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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