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회고록] 김정은 수교 원했지만, 트럼프는 청문회만 관심
  • 감명국·송창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0.09.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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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그 일이 일어난 방》 한국어판 출간 (下)

 

지난 1월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의 한 보도가 워싱턴 정가는 물론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불과 4개월 전까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이 자신의 백악관 근무 경험을 토대로 한 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보도였다. 이미 완성된 초고를 입수한 NYT는 내용 일부를 밝히기도 했다. ‘The Room Where It Happened(그 일이 일어난 방)’란 제목부터가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이 책의 존재는 오는 11월3일 미 대선을 앞두고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백악관은 회고록 출판을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볼턴을 “미친 사람(wacko)”이라 칭하며, 회고록에 대해 “거짓말과 가짜 이야기들로 된 지루한 책”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출간이 확정되기도 전에 이 책은 미국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할 만큼 미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미국 법원은 6월20일(현지시간) 백악관의 출판금지 요청을 기각했다.

이 책에는 2018년 6월과 2019년 2월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갖가지 비화도 담겨 있어 국내에서도 그동안 큰 관심을 모았다.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여러 보도를 통해 책의 내용들이 일부분씩 간헐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시사저널은  《그 일이 일어난 방》의 한국어판을 9월24일 출간했다. 이를 계기로 볼턴이 자신의 시각에서 쓴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요약했다.

 

마두로 대통령 지지자들이 2018년 2월4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고 차베스 대통령이 주도한 1992년 쿠데타 실패 기념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AP 연합
마두로 대통령 지지자들이 2018년 2월4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고 차베스 대통령이 주도한 1992년 쿠데타 실패 기념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AP 연합

#5.  트럼프, 베네수엘라 마두로 암살 지시?

2018년 8월4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베네수엘라 국가방위군 창설 81주년 행사. 베네수엘라는 석유산업 국유화로 전임 우고 차베스 대통령 때부터 미국을 비롯해 서방세계와 마찰을 빚고 있었다. 행사에 참석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연설을 시작하자 정체불명의 드론(무인기) 두 대가 연단 근처로 날아와 공중에서 폭발했다.

사고를 조사한 베네수엘라 내무부는 “2대의 드론에는 각각 1kg의 폭발물이 탑재됐다”면서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와 미국 마이애미에서 활동하는 세력과 연계된 베네수엘라 극우 집단이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 후 일각에선 암살 사건의 배후에 미국, 더 자세히 말하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당시 볼턴 보좌관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백악관은 해당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책에서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두로 암살에 암묵적으로 동의했음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드론 공격 사건 직후인 8월15일, 전혀 다른 주제의 회의 도중에 베네수엘라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트럼프가 나를 향해 단호한 어조로 “그 일을 끝내자고”라고 말했다. 마두로 정권을 제거하라는 뜻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이번이 내가 다섯 번째로 지시하는 걸세”라고 말했다. 나는 켈리와 나밖에 남지 않은 회의에서 우리가 구상하는 계획을 설명했지만,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옵션을 고집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미국의 진정한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대통령이 군사적 선택지에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것에 처음에는 놀랐지만,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트럼프가 거의 1년 전인 2017년 8월 11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서 한 언론의 질문에 답하며 그런 뜻을 내비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베네수엘라에 대해 여러 가지 선택지를 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군사 옵션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말 베네수엘라에 여러 방안을 취할 수 있어요. 이 나라는 우리 이웃입니다.(중략)

이 나라는 말이에요. 우리는 전 세계에 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방방곡곡에 우리 군대가 있지요. 베네수엘라는 그리 먼 곳도 아닌데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심지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에 대해서는 여러 선택지가 있어요. 필요하다면 군사 옵션도 가능합니다.”』

 

#6.  트럼프에게 동맹은 없다, 비즈니스만 있을 뿐

볼턴은 책에서 대중(對中) 무역협상에서도 트럼프의 좌충우돌 방식이 큰 혼선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내가 백악관에 합류했을 때는 이미 대중국 무역에 관한 모든 논의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트럼프는 무역과 무역적자 문제를 마치 기업의 재무제표를 대하듯이 접근했다. 무역적자는 곧 손해고, 흑자는 곧 돈을 버는 것이라는 식이었다. 관세를 올리면 무역 수입은 줄어들지만 정부 수입은 늘어나니까 그 반대의 경우보다 낫다는 것이었다. 사실 자유무역론자들은 그런 식의 논리에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나 역시 트럼프 정부에 들어오기 전, 그 기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누구 못지않게 자유무역론자였다.』

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협상에서 트럼프의 무책임한 생각이 일을 그르쳤다고 밝혔다.

『그(시진핑 주석)의 모든 발언 내용은 회담을 위해 미리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우리는 시종일관 대통령의 즉흥 발언이 이어지는 통에 그 누구도 다음 순간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형편이었다. 정말 가관의 순간이 바로 뒤에 찾아왔다. 시진핑이 앞으로 6년 더 트럼프와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자, 트럼프가 자신을 위해 2년 간격의 임기 제한을 철폐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답변한 것이다. 내 귀에는 그의 말이 그저 허튼소리로만 들리지 않았다. 시진핑이 사실상 중국의 ‘평생 주석’ 자리에 올라 있음을 잘 아는 트럼프로서는 그와 한번 경쟁해 보고 싶은 심리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볼턴은 강경 네오콘이 주장하는 ‘대만을 통한 중국 견제’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대만에 대해서도 별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중국 본토에 투자해 돈 좀 번 월스트리트 금융업자들의 말을 너무 들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즐겨 쓰던 여러 가지 비유 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자신의 펜촉을 가리키며 “이게 대만이라면”이라고 한 다음, 대통령 집무실의 책상을 두고 “이건 중국이지”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민주주의 동맹국을 향한 미국의 헌신과 의무가 고작 그런 것이란 말인가. 대만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기를 학수고대했지만, 내가 아는 한 우리 측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은 우리 측 최고지도자의 이런 약점을 간파하고 내 재임 기간 내내 그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만찬 석상에서 시진핑은 우리를 향해 대만 문제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고, 트럼프는 이에 동의해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7.  김정은 수교 원했지만 트럼프 관심은 코헨 청문회뿐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노딜’로 끝났다. 직후 미국 언론을 비롯해 외신들은 “트럼프가 당시 청문회에 참석한 자신의 변호사 마이클 코헨에 정신이 팔려 노딜을 선언했다”고 분석했다. 볼턴은 당시 하노이에 온 트럼프 대통령의 심리 상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트럼프는 곧 다가올 그의 전 변호사 마이클 코헨의 청문회 증인 출석을 앞두고 다소 지쳐 있는 것 같았다. 그의 개인사가 국가안보 문제로까지 불거진 것은 매우 드문 경우였다. 하지만 워싱턴에서 했던 회의 내용이 여전히 최우선 고려 사항이며, 협상 파기 전략이 유효하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었다.(중략)

다음 날인 2월26일 아침이 밝았다.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전날 밤늦게까지 코헨의 증언 장면을 지켜본 트럼프는 준비 회의를 취소했다. 나는 그의 기질상 언론에서 코헨 청문회 건을 증발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되었다. 그러려면 뭔가 극적이고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회담 파기는 그런 목적에 딱 맞는 행동이었다.』

하노이 회담에 참석한 북한 협상팀은 어떤 입장이었을까. 볼턴은 책에서 북한의 진짜 속내는 미국과의 국교 수교를 통한 체제 보장에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정은은 영변을 ‘양보’하는 것이 북한에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 또 미국 언론이 그 점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는지 다시 한번 강조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제안에 더 추가할 내용이 없는지 재차 물었다. 예컨대 제재의 전면 해제보다는 일부 완화를 요청할 생각은 없느냐는 것이었다.(중략) 다행히 김정은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중략)

그는 싱가포르에서도 그랬듯이 북한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어떠한 법적 장치도 없다고 불평했다. 트럼프는 그러면 북한은 어떤 종류의 보장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김정은은 북·미 사이에는 외교관계도 없이 70년간 적대관계가 이어졌으며, 이제 서로 알게 된 지 8개월이 지났을 뿐이라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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