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차기 총수에 사실상 낙점됐다.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으로부터 경영권 지분을 넘겨받으면서다.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돼 온 조 회장의 장남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을 제치고 그룹의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그러나 마냥 축배를 들 수도 없는 상황이다.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당장 횡령 등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가족 간 경영권 분쟁까지 불거졌다. 그러잖아도 골치가 아픈 와중에 비리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장남 조현식·장녀 조희경과 경영권 분쟁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비교적 최근까지만 해도 누가 그룹 경영권을 넘겨받을지 미지수였다. 조 회장은 2013년부터 두 아들에게 그룹 경영을 맡겨왔다. 조 부회장이 지주사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당시 한국타이어월드)을 맡아 인수·합병을 통해 신사업을 발굴하고, 조 사장은 한국타이어를 맡아 타이어 사업에 집중하는 구도였다. 조 회장은 2015년 형제에게 담당 영역을 서로 바꾸는 ‘교차 경영’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는 두 아들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됐다.
최근까지 두 형제의 보유 지분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올 1분기 기준 장남과 차남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율은 각각 19.32%와 19.31%였다. 다만 업계에서는 조 부회장이 차기 총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동안 재벌가에선 장자승계가 지켜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공식을 깨고 대권은 조 사장에게 넘어갔다. 조 사장이 올해 6월26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조 회장이 보유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전량(23.59%)을 인수하며 최대주주(42.9%)에 오른 것이다.
이런 지분 이동은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졌다. 조 부회장과 조 회장의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반기를 들었다. 특히 조 이사장은 올해 7월30일 조 회장의 성년후견을 신청하기도 했다. 후견인 제도는 노령이나 장애, 질병 등으로 의사 결정이 어려운 성인에게 후견인을 선임해 돕는 제도다. 고령인 조 회장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건강 상태에서 지분 양도가 이뤄졌다는 게 조 이사장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조 회장은 회사를 통해 건강 상태에 이상이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조 부회장도 조 회장의 건강 상태에 대한 검증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또 성년후견심판 절차에 가족의 일원으로 참여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만일 심판 결과 조 이사장의 성년후견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조 회장의 지분 양도 결정은 법적 효력을 상실할 수 있다. 조 사장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총수의 지위가 단숨에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조 사장은 횡령 등의 혐의와 관련해 재판도 받고 있다. 그는 하청업체로부터 납품 대가로 매달 수백만원씩 약 6억원을 챙기고, 계열사 자금 2억원가량을 정기적으로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 기소됐다. 조 사장은 이렇게 횡령한 자금을 유흥비로 지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3월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온 조 사장은 올해 4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 사장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에서 사임했다.
조 사장은 오는 11월20일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엔 알짜 계열사를 헐값에 매각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문제의 회사는 자동차부품 관련 비상장 계열사이던 프릭사다. 이 회사는 2015년 알비케이홀딩스에 매각됐다. 매각 당시 연매출이 153억원 수준이었음에도 65억원가량에 거래돼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다. 거래 당시 알비케이홀딩스는 자본금 1억원으로 설립된 지 1년도 안 된 페이퍼컴퍼니였다.
특히 알비케이홀딩스의 실소유주는 조현범 사장과 과거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한국도자기 3세 김영집씨였다. 또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프릭사를 매각한 뒤에도 알비케이홀딩스에 50억원을 대여하는 등 금전거래를 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두고 일각에서는 조 사장이 김씨에게 프릭사를 위장 매각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5년의 거래가 최근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건 코스닥 상장사 한류타임즈 소액주주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서다. 한류타임즈는 2018년 프릭사 인수에 나섰다가 35억원의 이행보증금을 지급한 뒤 이를 포기했다. 이로 인해 한류타임즈가 지급한 35억원의 이행보증금은 모두 알비케이홀딩스의 몫이 됐다. 또 한류타임즈는 알비케이홀딩스와 함께 중고차 거래업체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대여한 뒤 모든 투자를 손실 처리하기도 했다.
재판과 별도로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도
이와 관련해 한류타임즈 소액주주들은 이락범 회장 등 경영진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알비케이홀딩스와의 유착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와 함께 소액주주들은 조 사장에 대한 진정도 제기했다. 한류타임즈에 대한 수사가 조 사장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횡령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 사장으로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업 과정에서 돌발 변수도 불거졌다. 한국타이어 서비스 전문점인 티스테이션 가맹점에서 고객 차량의 휠을 고의로 망가뜨리고 교체를 유도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일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국민의 공분을 샀다. 그러잖아도 계속된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이번 논란으로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하나하나가 간단치 않은 논란들이 조 사장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최대주주에 등극한 지 불과 넉 달여 만에 벌어졌다는 점이다. 모든 논란은 조 사장의 리더십에 중대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다. 향후 조 사장에게 험로가 예상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