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의 시론] 트럼프 시대의 종말: 미국 대선 이후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13 17:00
  • 호수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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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드디어 트럼프의 패배로 미국의 사이코패스 심리 테스트도 끝났다. 투표장에서 ‘샤이 트럼프’가 여론조사를 뒤엎을 것이라는 추측은 물거품이 됐다. 호황이 지속되는 시기에 현직 대통령이 유리하다는 예측도 빗나갔다. 오히려 ‘반(反)트럼프’ 기치를 내건 흑인들과 청년 세대가 투표장에 나와 분노를 표출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타격을 받은 일부 저소득층도 등을 돌렸다. 그러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점친 바이든의 압도적 우세와는 달리 개표는 초박빙을 유지했다. 트럼프는 패배했을지라도 ‘트럼프 현상’은 좀비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 A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 AP연합

2016년 힐러리를 꺾은 트럼프는 미국의 ‘거대한 후퇴’를 보여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튼우즈 체제를 만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약화되고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국가주의가 부상했다. 1980년대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혁명은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주도한 반면, 21세기 트럼프는 보호무역, 이민 반대, 반세계화로 역주했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며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운 트럼프의 행보는 1930년대 아돌프 히틀러의 선동을 연상시킨다. 콧수염 없는 트럼프의 포퓰리즘은 제조업의 몰락과 무역 적자에서 비롯된 미국의 쇠퇴와 관련이 있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이민 통제로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극우적 주장에 열광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현상’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구조적 결과로 봐야 한다.

1992년 미국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소련이 패배하고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당시 많은 학자가 이데올로기 시대가 종식되고 미국의 헤게모니가 장기적으로 지속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후쿠야마의 환상과 달리, 이라크 전쟁과 2007년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의 국제적 지위는 눈에 띄게 약화됐다. 한편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철강·자동차 등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경제적 활력도 둔화됐다. 대신 정보통신과 인터넷 산업이 급성장했지만,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게 악화됐다. 월가 및 실리콘밸리의 엘리트와 평범한 대중의 간격은 극단적으로 벌어졌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상습적 거짓말쟁이, 자기애적 정신질환자, 사이코패스라고 비난했지만, 노동자들은 월가의 지원을 받는 힐러리보다 트럼프를 지지했다.

19세기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의 평등주의와 자발적 문화에 감탄하고, 미국이 미래를 주도하는 국가가 될 것으로 예견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지니계수로 볼 때 인도네시아와 탄자니아보다 더 불평등한 사회로 변했고, 세계를 이끄는 리더십도 눈에 띄게 약화됐다. 상위 1퍼센트는 전체 소득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반면, 노동자의 임금은 30년 동안 정체됐다. 세습주의와 학벌주의로 인해 사회 이동의 기회를 약속한 ‘아메리칸 드림’이 사라졌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는 국익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세계무역기구와 세계보건기구를 무시하며 독불장군처럼 행세했다. 한국의 일부 분별 없는 언론인이 북·미 대화의 변덕스러운 주역인 트럼프의 당선을 기대했지만, 일방주의 외교로 세계는 더욱 불확실하고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태에 빠졌다.

2020년 선거에서 승리한 바이든 당선인의 어깨가 무겁다. 코로나 위기와 국가 부채 증가에 직면한 미국의 앞날이 밝지 않다. 그래도 나는 바이든이 일방적 국가주의 대신 협력적 세계주의를 추구하면서 지구적 불평등, 기후위기, 한반도의 긴장에 대응하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한다. 또한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미국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고 포용의 정치를 추구하길 바란다. 전 세계 많은 사람이 바이든이 대통령으로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아!) 트럼프만 제외하고.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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