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팀이 아닌 코로나19와 싸워야 했던 축구 국가대표팀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0 15:00
  • 호수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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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A매치 치른 벤투호, 멕시코·카타르 상대로 경기력 아쉬움만 노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이 우여곡절 끝에 1년여 만에 치른 A매치 2연전을 마무리했다. 유럽의 중심부인 오스트리아에서 멕시코와 카타르를 상대한 이번 일정은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이후 첫 A매치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축구는 국제 교류전이 멈춤 상태였다. 국내에서는 입국자의 2주 자가격리 의무로 인해 상대팀을 초청할 수 없는 제약이 있었다. 정식 A매치를 치를 수 없던 A대표팀은 올 10월 김학범 감독의 23세 이하 대표팀과 스페셜 매치로 간신히 실전 감각을 유지했다. 내년에 재개될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을 대비한 모의고사와 2020년 들어 홍보 효과가 제로였던 스폰서 노출을 위해 대한축구협회는 유럽 원정을 감행했다.

손흥민·황의조·황희찬·이강인을 위시한 유럽파를 소집한 벤투호는 멕시코에 2대3으로 패하고, 카타르에는 2대1로 승리했다. 모처럼 풀전력을 가동하며 경기력을 확인한 점은 소득이지만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일도 겪었다. 첫 경기였던 멕시코전을 앞두고 선수단 내 코로나19 양성 반응자가 나오며 경기 준비는 둘째가 되고, 바이러스 검사와 확진자 보호가 우선이 됐다.

지난 11월13일 실시한 코로나19 1차 검사에서 권창훈, 이동준, 조현우, 황인범 등 4명의 선수와 스태프 1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다음 날 선수단 전원이 재검사를 받은 결과 김문환과 나상호가 추가 양성 반응을 보였다. 경기 파트너인 멕시코 축구협회, 카타르 축구협회, 경기 개최를 승인하는 오스트리아 축구협회와의 논의를 통해 경기는 정상 진행됐지만 6명의 선수와 2명의 스태프는 경기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카타르전을 치른 17일 추가 검사에서 황희찬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11월15일(한국 시간) 오스트리아 빈 남부 비너 노이슈타트 슈타디온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 파울루 벤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우려대로 선수단 내 코로나 확진자 발생

결과론적으로 축구협회는 위험한 유럽 원정을 추진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달 일정이 최종 결정될 당시에는 코로나19 확산세가 한풀 꺾인 흐름이었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다른 국가보다 확진자가 적고 방역 체계가 잘 갖춰졌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11월부터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5000명대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카타르전을 앞두고는 확진자가 1만 명에 육박하자 2차 봉쇄에 돌입했다.

축구협회는 “멕시코, 카타르뿐 아니라 일본, 파나마 등도 같은 선택을 했다. 유럽 각국도 9월부터 A매치를 진행 중인 상황”이라고 항변했다. 지난 10월 A매치 소집 기간 동안 포르투갈의 간판 스타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해당 선수를 제외하고 정상적으로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이미 전 세계의 많은 감염병 전문가가 이번 겨울 2차 팬데믹을 경고한 상황에서 의무분과위원회의 조언만 듣고 유럽으로 나간 지나치게 낙관적인 결정, 현지 일반인들이 쉽게 드나들었던 훈련장 관리 등 방역을 소홀히 한 부분은 분명 실책이다.

해외 팀과의 접촉뿐만 아니라, 우리 A대표팀조차 유럽 내 다양한 국가에서 소집되는 상황에서 방역 관리는 이론처럼 쉽지 않았다. 결국 확진자 발생으로 경기를 준비하던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흔들렸다. 그들이 훈련과 경기에서 제외되며 나머지 선수들의 체력 관리도 난관으로 작용했다. 코로나19 시대에 A매치를 치르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배운 축구협회는 내년 3월부터 재개되는 월드컵 예선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후속 조치가 빠르게 진행된 부분은 다행이다. 축구협회는 카타르전을 마친 뒤 선수들이 각자의 소속팀으로 이동하는 문제와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들의 귀국 문제 등에 대해 우리 정부, 오스트리아 방역 당국과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았다. 확진자 수송을 위해서는 전세기를 투입할 계획이다. 러시아, 중국 영공을 지나기 위한 항로 허가에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부 협조를 통해 조속히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현지 호텔에서 격리 중인 인원들을 위해 축구협회 직원과 주치의, 조리사가 잔류하기로 했다.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11월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오스트리아 원정 평가전을 위해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득보다 실이 많았던 유럽 원정

경기력에 대한 평가도 아쉬움이 남은 벤투호였다. 유럽파가 합류하며 제대로 된 전력을 1년 만에 꾸릴 수 있었던 소집과 경기 그 자체로 의미는 있었지만 벤투 감독 부임 후 2년이 지난 현재도 방향성만 보일 뿐 시원한 플레이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11월15일 열린 멕시코전에서는 손흥민과 황의조가 합작한 선제골에도 시종일관 밀리는 경기를 하다 후반 5분 사이에 3실점을 하며 수비가 무너졌다. 이강인의 코너킥을 권경원이 득점으로 연결해 1골 차까지 쫓아갔지만 드러난 스코어 이상으로 격차가 큰 내용이었다. 물론 멕시코는 FIFA랭킹 11위의 강호고, 이틀 뒤 열린 경기에서는 일본을 압도하며 2대0 승리를 거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절대적 기준에서 벤투 감독은 그동안 잘 쓰지 않았던 스리백 전술을 가동했음에도 멕시코의 강력한 압박을 헤쳐 나오지 못했다. 부임 이후 줄곧 강조한 후방 빌드업의 효용성이 부족한 경기였다. 소득이라면 손흥민을 활용한 빠른 템포의 역습으로 선제골을 뽑고, 찬스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경기를 지배하며 우리가 의도한 플레이로 공격을 완성한다’는 벤투 감독의 철학이 월드컵 본선에서 맞붙을 수준의 상대에게는 통하기 어렵다는 것이 확인된 멕시코전이다. 감독이 추구하는 소신과 방향성은 존중해야 하지만 결과물을 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지지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멕시코전의 경우 스리백 가동에 소속팀과 23세 이하 대표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는 원두재의 센터백 기용 등 너무 많은 변화와 실험으로 힘든 경기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카타르전은 멕시코전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선호하는 4-1-4-1 포메이션으로 돌아온 벤투 감독은 황의조, 손흥민, 황희찬의 공격 삼각편대를 내세워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경기 시작 16초 만에 황의조의 적극적인 압박이 찬스를 만들며 황희찬의 선제골로 이어졌다. 수비가 또 흔들리며 뒷공간을 내줘 전반 10분 만에 동점골을 허용했지만, 전반 중반부터 벤투 감독이 원하는 높은 볼 점유와 경기 지배가 이뤄졌다. 결국 전반 36분 이재성, 손흥민, 황의조로 이어지는, 멕시코전 선제골과 같은 양상의 공격 루트로 결승골이 나왔다. 후반에는 그동안 보여주던 짧은 패스 중심의 후방 빌드업에서 벗어나 직선적이고 빠른 패스로 카타르를 괴롭히며 흐름을 주도했다. 이 승리로 1948년 시작된 A매치에서 한국은 통산 500승(228무 201패)을 달성하며 이정표를 세웠다.

A대표팀은 올 시즌 부진에 빠진 황의조, 황희찬이 골 맛을 본 부분과 ‘에이스’ 손흥민이 2도움을 올리는 등 공격력에서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반면 김영권과 김민재가 소집되지 못한 점을 고려해도 수비라인이 보여준 불안감은 숙제로 남았다. 멕시코전에서는 상대의 강한 전방 압박에 허둥거렸고, 카타르전에서는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상대 선수를 잡지 못해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다. 멕시코전에는 20분, 카타르전에서는 15분가량만 기용된 이강인 활용법도 물음표로 남았다. 짧은 시간에도 번뜩이는 패스와 킥 능력을 자랑한 이강인을 공격적인 콘셉트의 경기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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