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주류로”  美 정가 주목받는 한인 정치인들
  • 김재현 미주시사저널 편집국장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2 10:00
  • 호수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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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미국’ 주역 한인들, 주 상·하원에 16명 입성

미국은 2년마다 짝수 해에 연방과 주, 카운티, 시 등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치른다. 그리고 한 번 걸러 4년째엔 대통령선거가 있다. 예비선거(primary)에 나온 여러 후보자 가운데서 뽑힌 상위 후보 두 명이 본선거(general election)에서 최종적으로 승자를 정한다.

전에 없이 특별했던 대통령선거로 인해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올해에도 연방과 각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와 단체장을 비롯해 판사, 검사장, 교육위원 등 수많은 선출직 선거가 있었다. 이번 선거는 특히 미주 한인 역사에 길이 남을 선거였다.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이 앤디 김 한 명에서, 최초의 한국계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갖게 된 메릴린 스트릭랜드, 영 김, 미셸 박 스틸 당선인까지 모두 4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한국 언론에선 세 여성 의원의 한국 이름인 순자, 영옥, 은주 등을 거론하며 많은 기대를 거는 것 같다.

하지만 사용하지도 않는 추억의 이름을 소환한다고 미국 정치인이 한국 정치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한국적인 정서로 한국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지한파 정치인 이상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한·미 관계를 놓고 본다면 한국계 연방 상원의원이 없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과 관련된 국방과 외교 문제는 연방 상원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11월3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의 한 고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미국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
11월3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의 한 고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미국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

주 상원의원 2명, 주 하원의원 14명 당선 

한편 주 상원과 하원의원은 어떤가.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는 주의원이 연방의원보다 실생활에 더 밀접하다. 한국 지자체와의 교류가 주로 주(州) 차원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이들이 앞으로 연방 의회에 진출할 한인 정치의 자산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에서도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미주시사저널(시사저널 미주판)에서 미 전역의 한국계 주 상·하원 후보자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예비선거를 통과하고 주 상원과 하원의원에 도전한 한국계 후보는 모두 18명(현직 10명 포함)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2명의 주 상원의원과 11명의 주 하원의원이 당선됐고, 5명은 고배를 마셨다. 여기에 선거 시기가 다른 3명의 현직 의원까지 포함하면 이제 한국계 주 상원의원은 2명, 주 하원의원은 모두 14명이 됐다.

한국계로는 42년 만에 캘리포니아 주 상원에 진출하는 데이브 민(Dave Min) 당선인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과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검사(Enforcement Attorney)로 일했다. 민 당선인은 엔론과 월드컴 회계 부정 사건을 보면서 불공정하고 부정한 금융 시스템을 정비하고 시니어 은퇴연금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민간 법률회사의 높은 연봉을 마다하고 증권거래위원회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척 슈머 민주당 연방 상원 원내대표의 경제·금융정책 보좌관을 역임했고, 현재는 UC 어바인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8년 선거에서는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했으나 예비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금융과 주택정책 전문가로 전국적인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는 민 당선인은 특히 의료보험과 교육, 기후변화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른 한 명의 주 상원의원 당선인은 하와이 주 상원의 도나 김(Donna Mercado Kim) 의원이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하와이 주 상원의장을 지낸 바 있는 김 의원은 1982년 하와이 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호놀룰루 시의원을 거쳐 2000년부터 주 상원의원을 연임하고 있는 원로 정치인이다. 김 의원 외에도 하와이 주 하원에서는 실비아 루크(Sylvia Luke), 샤론 하(Sharon Har) 두 현직 주 하원의원이 연임에 성공했다. 하와이 주 상·하원의 한국계 의원들은 이미 8월에 치러진 예비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됐다. 이들은 현직에서만 길게는 22년, 짧게는 15년의 주 의회 경력을 가진 다선 정치인으로 결선까지 나설 경쟁 후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 3선에 성공한 최석호(Steven Choi) 의원은 1944년에 나주에서 태어나 경희대를 졸업하고, 1968년 미 국무부 산하 평화봉사단의 한국어 강사로 미국에 왔다. 피츠버그대에서 도서정보학 박사학위를 받고, USC(남가주대)와 UC 어바인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98년 어바인시 교육위원, 시의원, 시장을 거쳐 2016년에 주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최 의원은 이민 1세대답게 주 하원에서 도산 안창호의 날(11월9일) 제정과 입양아 보호 법안 등 미주 한인 관련 법 제정에 앞장섰다.

11월3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의 한 고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미국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
11월3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의 한 고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미국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

샘 박, 조지아주 최초 성소수자 의원

이번 선거에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한국계 주 하원의원이 있다. 8월에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떠오르는 차세대 주자 17인(Rising 17)에 선정돼 바이든 후보 지지연설을 한 조지아 주 하원의 샘 박(Samuel Park) 의원이다.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피난민이라는 박 의원은 조지아에서 태어난 한인 2세다.

이번에 바이든 당선인이 간발의 차이로 승리하긴 했지만 조지아주는 공화당 색깔이 확연한 보수적 지역이다. 올해 나이 35세로 3선에 성공한 박 의원은 조지아 주 의회 최초의 성소수자 의원이다. 이곳에서 한국계, 성소수자, 민주당 소속이라는 그의 정체성에도 3선에 성공한 것, 특히 초선보다 재선, 재선보다 3선 선거의 득표율이 더 높다는 사실은 그가 왜 ‘라이징 17’에 선정됐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주 의회에 처음 입성하는 당선인들은 지역 한인 언론에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이다. 미주리 주 하원의 에밀리 웨버(Emily Weber) 당선인은 한국에서 태어나 어려서 입양돼 캔자스시 인근 농촌에서 자랐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웨버 당선인은 여성운동에 참여해 오다가 이번 선거에서 89%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위스콘신 주 하원의 홍윤정(Francesca Hong) 당선인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Mom, Service Industry Worker, Community Organizer.(어머니, 서비스산업 노동자, 커뮤니티 설립자)” 현재 식당을 운영하는 셰프며, 역시 88%의 높은 득표율로 상대를 제압했다.

텍사스 주 하원의 제이시 제튼(Jacey Jetton) 당선인은 어머니가 한인이다. 지역에서 ‘바비큐의 왕(King of Barbecue)’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는 베테랑(제대 군인) 이슈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반면 2018년 25세의 나이로 인디애나 주 하원에 진출해 큰 화제가 되었던 크리스 정(Chris Chyung) 후보는 이번엔 경쟁 상대와의 리턴매치에서 고배를 마셔 현역 프리미엄을 놓치는 아쉬움을 남겼다.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한국계 주 상·하원 의원 가운데는 30~40대에 이미 다선의 경력을 가진 젊은 정치인이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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