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평평하지 않다 [김현수의 메트로폴리스2030]
  • 김현수 단국대 교수(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2 12:00
  • 호수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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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은 고도화, 형태는 고층·고밀화…용도지역제 등 적극 도입 필요

도시에는 중심지가 있고 주변 지역이 있다. 주택보다는 백화점이나 오피스가, 저층보다는 고층건물이 빽빽한 지역이 있다. 서울로 보면 강남, 광화문, 여의도 같은 도심이나 잠실, 용산 등 부도심 지역이다. 주거지역 중에도 지하철 환승역과 가깝고 간선도로에 면한 지역엔 고밀도 아파트가 들어선다. 남산을 뒤로하고 한강에 가까운 데는 단독주택만 허용되는 지역도 있다.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밀도를 높이면 환경이 훼손될 수 있다. 그 땅과 인접한 도로의 폭, 지하철역과의 거리, 학교나 공원 접근성 등 기반시설 여건과 주변 토지 이용을 고려해 용적률을 높이고 종상향을 해야 한다. 주택 가격이 오르면 청년들이나 노인들,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다. 취약계층이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가 함께 따라야 한다.

서울은 런던이나 뉴욕보다 밀도가 높다. 사진은 서울 종로 일대 ⓒ연합뉴스
서울은 런던이나 뉴욕보다 밀도가 높다. 사진은 서울 종로 일대 ⓒ연합뉴스

쾌적한 주거-효율적 상업활동 위한 제도

용도지역제는 그 땅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용도와 밀도, 형태를 규정하는 장치다. 주거는 쾌적하게, 상업활동은 효율적으로 유지되도록 용도지역이 부여돼야 한다. 인접 지역의 용도와 경관, 그리고 도시 전체의 스카이라인과 도시기본계획상의 공간구조를 고려하는 용도지역 관리가 돼야 한다. 건축물의 용도와 높이는 이용자의 편리함, 소유자의 재산권을 고려함과 동시에 주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땅이 상업지역이 될 수 없으며, 모든 주거지역이 고층의 아파트 단지가 될 수는 없다. 입지 조건과 기반시설 용량, 주변 토지 이용 여건, 그리고 장래의 수요가 이를 결정한다. 서울플랜의 공간구조란 이런 골격과 질서를 그려둔 틀이다.

600년 전 서울은 4대문 안 20만 인구의 한양도성이었다. 근대화·산업화에 따라 도시는 확장되고 상업·업무 등 비주거 기능이 성장한다. 주거는 외곽으로 확산되고 도심 인구는 줄어든다. 한때 한양도성의 중심이던 중구와 종로구는 인구 10만 명이 조금 넘는 ‘미니 구(區)’다. 그러나 활동인구가 가장 많은 도심이기도 하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도시기본계획상의 도심에는 고층·고밀의 상업·업무·금융 기능이 집적되고 지하철 등 교통망이 촘촘하게 연결된다. 도심에 도로를 개설하는 것은 어려우나 땅밑의 지하철 노선은 지난 40년간 놀라우리만큼 확대됐다. 최근에는 KTX·GTX 환승역세권까지 등장하면서 도심, 부도심 등의 중심지는 더욱 기능적으로 고도화되고 형태적으로 고층·고밀화하고 있다.

오래된 국내 대도시의 중구(中區)는 대개 역사도심이다. 거기에는 관아지나 궁궐이 있고 역사문화유적이 도처에 있다. 런던의 시티오브런던(City of London)이나 파리의 시테(Sitte), 도쿄의 마르노우치() 등은 대표적인 역사도심으로서 ‘칼로 두부 자른 듯한’ 고도제한이 이루어진다. 이 지역들은 당해 도시의 도심이자 관광 명소이며, 그 나라의 국격을 상징하는 역사적 장소로서,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는다.

경제활동을 집적화·고도화하기 위해, 또 역사도심을 보전하기 위해 런던의 도크랜드, 파리의 라데팡스, 도쿄의 신주쿠, 뉴욕의 배터리파크시티 등은 다국적기업들이 초고층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구글 검색창에 도시 이름을 쳐보면 차분한 역사도심과 함께 마천루의 경제도심이 나온다. 그만큼 수도의 도심은 그 도시, 그 나라의 상징으로 엄격하게 관리된다.

여기에 KTX·GTX의 환승역사가 생기는 지역들의 중심성은 더욱 커진다. 고속의 철도가 지하철과 환승하는 환승역사 중심으로 초고층의 오피스, 컨벤션, 호텔, 대형 유통점 등 고급 경제활동들이 모인다. 특히 최근 성장세가 빠른 플랫폼 기업들, 스타트업과 벤처투자회사들, 연구·개발회사들은 고속의 교통망, 매력적인 스트리트, 적절한 주택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선호한다. 도시계획이 계획적으로 입지를 정해 주고 지원해야 하는 새로운 활동들이다.

환승역세권의 발달은 대중교통 이용을 편리하게 하고, 승용차 이용을 줄여줄 것이다. 주위에 고밀주거를 집적하면, 이동거리와 이동 필요성을 낮추어 탄소 저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초환승역세권 중심의 콤팩트 시티는 넷제로(net zero) 시대 새로운 도시 형태로 등장한다. 도시기본계획상의 공간구조는 도심과 부도심, 지구 중심의 중심지 체계를 규정한다. 허용 용적률, 층고, 교통노선 등을 중심지에 집중하도록 해야 경쟁력 있는 도심산업을 육성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높일 수 있다. 콤팩트 도시, 기후변화 대응형 도시 공간구조를 만들어가는 일은 향후 가장 지속적인 도시 공간 정책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새로운 성장산업의 일자리가 강남 도심에서 늘어난다. 증가하는 기업활동은 새로운 주택 수요를 동반한다. 어느 곳에, 어떤 집을, 누가, 어떻게, 공급해야 주택 문제를 시원하게 풀 수 있을까. 집값, 통근, 일자리, 환경 문제는 한 덩어리다. 집값이 오른다고 빈 땅에 집만 고층으로 공급하면 통근 고통, 환경 문제, 과밀학급 문제가 발생한다. 서울은 런던, 도쿄, 뉴욕보다 밀도가 높다. 빈 땅이고 저이용되는 곳 중에서도 추가적인 기반시설 공급이 가능해야 한다. 즉, 도로, 지하철, 학교, 공원, 편익시설 등의 여건이 적절한 곳이어야 한다.

 

KTX·GTX가 불러오는 콤팩트 시티

그간 정체되었던 주택정비사업을 통해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촉진해야 한다. 강남에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 집을 얻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이 수요를 해결하지 못하면 집값 안정이 어렵지 않을까.

서울 시내에서 밀도를 올리는 안과 서울시 외곽으로 확장하는 대안을 함께 검토할 수 있다. GTX는 서울 반경 25km권을 통근권으로 확장해줄 것이다. 또 환승역에서 지하철과 버스로 갈아타는 일이 쉬워지면서 서울 통근권이 대폭 넓어진다. 3기 신도시는 통근이 가능한 서울대도시권 안에 있다.

GTX 환승역세권 주변에 주택을 공급하고, 서울로 모이는 일자리를 분산해 고밀주거와 일자리 중심의 환승역세권을 만들어주면 압축연계형(compact&network) 공간구조를 그려볼 수 있다. 도시계획학자들의 로망이던 다핵분산형(多核分散型) 공간구조를 그려볼 수 있는 기회다. 이는 코로나 시대, 이동거리를 줄일 수 있는 생활권 도시의 모형이기도 하다. 서울과 경기도를 하나의 생활권, 경제권으로 보고 주거, 일자리, 통근권, 생활권을 그려보자. 이동거리를 짧게 하는 다핵분산형, 콤팩트 시티를 가진 수도권 광역공간구조를 먼저 그린 후에 주택 공급의 적지를 찾아야 한다.

도시는 쉼 없이 변화한다. 용도는 바뀌고 밀도는 변화한다. 인구가 증가하고 번영하다가 쇠퇴하는 곳도 있다. 어떤 곳은 고색창연한 역사문화지구로 보전되고 어떤 곳은 고층고밀의 기업활동이, 또 다른 곳은 정온한 주거지역으로 유지되길 원한다. 인구가 증가하고 고속의 교통망이 연결되면 도시는 팽창한다. 도시의 확산도 동심원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고속교통축을 따라서 별 모양(star shape)으로 확산할 것이다. 서울로부터의 지리적 거리보다는 고용 중심지까지의 통근시간이 서울대도시권의 확장거리를 결정할 것이다. 속도는 지리적 거리를 극복하기 때문이다.

도시는 평평하지 않다. 높고 뾰족한, 기업활동이 집중된 도심도 있고 조용한 주거지도 있다. 각자 자기 소임을 잘할 수 있도록 용도지역지구제나 중심지 체계를 그려가야 한다. 주거지의 쾌적함, 역사도심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도심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넷제로 시대의 도시를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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