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대권 의지’] 대권행보 두드러진 몇 가지 신호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3 10:00
  • 호수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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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 내 특보·자문위원 위촉하며 보폭 넓혀
측근들 모여 바이든 당선 연구에 몰두

정세균 국무총리의 대권 출마설은 이제 더 이상 ‘아니 땐 굴뚝’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국정 수행에서 활동 영역이 넓은 총리의 행보를 전부 출마 준비로 해석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출마 가능성에 손사래를 치며 측근 단속에 나서던 임기 초와 달리, 최근 정 총리는 대권 준비로 해석될 만한 과감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정 총리의 당 안팎 측근들 역시 현직 총리니만큼 언급을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향후 그의 대권 도전에 대해선 기정사실로 인정했다. 다만 여전히 심각한 코로나19 확산이나 연말·연초 개각 등을 고려해 총리직 퇴임을 서두르진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2심 실형으로 친문 세력이 대체자에 대해 골몰하는 지금, 대권 주자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있던 정 총리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 총리의 이니셜을 딴 ‘SK계’ 의원들의 면면과 이들의 동향에도 의미가 실리고 있다. 이낙연-이재명 2강 구도에 밀려 현재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러 있지만, 머지않아 정 총리가 대권 구도에 미칠 영향력은 현 지지율 이상일 거란 관측이 나온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1월11일 부산시 개금골목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 

‘합법적’ 선 안에서의 ‘적극적’ 대선 준비

최근 정 총리 행보 가운데 가장 다양한 해석이 나왔던 지점은 총리실 내 특별보좌관과 자문위원을 위촉한 일이다. 11월6일 정 총리는 총리 산하에 보건의료·그린뉴딜·국민소통 세 분야에 대한 특보·자문단을 구성하고 총 9명을 임명했다. 정 총리가 향후 대선 주자로서 가장 어필하고자 하는 방역·국민통합 과제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한국판 뉴딜의 계승까지 적절히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총리 시절 주로 측근들에게 특보 자리를 맡겼던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달리, 정 총리는 각계 전문가들을 특보로 임명했다. 향후 이들이 대선 가도에서 그의 정책자문단이 될 수 있을 거란 시각도 있다.

정 총리는 특보·자문단 설치를 1월 취임 직후부터 준비했다. 분야별로 총리가 주재하는 위원회는 여럿 되지만, 가까이서 꾸준히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이를 추진한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4월 비서실 직제 개편이 이뤄지면서 특보·자문단 설치가 가능해졌으나 코로나 대응에 밀려 곧장 구성하진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총리 측근에 의하면, 그동안 자문단 구성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살지 모른다는 고민이 있었으나 이젠 때가 됐다고 판단해 추진하게 됐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특보·자문단 위촉이 김경수 경남지사 2심 판결 당일 이뤄져 여러 추측을 낳았지만, 이에 대해 정 총리 측은 “결코 의도한 바가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4월부터 이어가고 있는 ‘목요 대화’ 또한 정 총리의 ‘합법적 대선 준비’ 창구라고도 불리며 주목받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매주 목요일 각계각층과 대담을 나누는 자리인데, 정 총리는 지난 9월 모임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도 출간했다. 총 25차례 진행되는 동안 주제와 초청 인사의 영역을 점차 넓혀왔다. 지난 25차례의 목요 대화 주제와 초청 대상을 살펴본 결과, 코로나와 관련해 의료계 인사들을 주로 초청했던 초반과 달리 중반 이후부터는 노동계·교육계·소상공인·종교계·농업인·예술가 등과 차례로 만남을 가졌다. 2030세대와 4050세대를 나눠 대국민담화를 갖기도 했다. 최근 국회 여야 정무위 소속 의원들을 총리공관에 초대해 만찬을 가졌으며,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자리 또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부쩍 선명해진 정 총리의 ‘메시지’에서도 그의 대의가 엿보인다. 연일 부딪치는 추미애-윤석열 둘 모두를 향해 “자중하라”며 강도 높은 비판에 나선 것 역시 자신의 존재감과 국정 장악력을 키우기 위함으로 읽힌다. 동시에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기 힘든 문제에 총리가 나서면서 당내 핵심 세력인 친문과의 끈을 좀 더 탄탄히 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있다. 추-윤 갈등과 더불어 최근 동남권 신공항 문제 역시 총리실에서 논의를 주도하면서 가덕도 신공항 쪽으로 비교적 명확한 목소리를 내왔다. 정 총리로선 갈 곳 잃은 친문세력, 특히 PK(부산·경남)권의 세(勢)를 끌어올 기회인 것이다. 실제 정 총리는 최근 한 달 사이 부산을 두 차례 방문했다. 11월11일 두 번째 부산 방문에선 김경수 지사를 만나 판결에 대해 위로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의 공식 SNS에서도 이전보다 정치적 의미로 풀이될 만한 문구들이 발견된다. 포항을 방문했을 당시 자신을 ‘포항의 사위’로 칭하는가 하면, 지난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법원 판결 이후엔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기도 했다. 취재에 따르면 측근 참모들의 경우, 정 총리가 대선 의지를 좀 더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서서히 군불을 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오해를 살 메시지나 행동을 극도로 절제하던 정 총리 역시 최근 들어 조금씩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0월26일 ‘광화문포럼’이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최혜영 민주당 의원 sns

광화문포럼 “정 총리에게 호감 있는 의원 모임일 뿐”

민주당 내 분위기는 어떨까. 최근 정 총리 이름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당내 모임이 하나 있다. 현역 의원 40~50명이 참여하고 있는 ‘광화문포럼’이다. 지난 7월과 10월 두 차례 모였을 뿐인데, 정가에선 대선까지 정 총리에게 힘을 실어줄 ‘SK계’ 모임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포럼은 정 총리가 의원 시절 만든 공부 모임 ‘서강포럼’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 광화문포럼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들 역시 이원욱·김영주·안호영 의원 등 대표적으로 정 총리와 가까운 의원들이다.

과거 대선후보 중에서도 이러한 측근들의 공부 모임이 캠프의 정책 싱크탱크로 발전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2012년 대선 패배 후 학자들과 함께 만든 정책 공부 모임 ‘심천회’가 향후 대선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으로 발전했다. 물론 지금의 광화문포럼을 이와 빗대어 보기엔 무리가 있다. 포럼에 참여하는 의원들 역시 ‘매우 느슨한 모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포럼 운영위원장인 이원욱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단순한 공부 모임이라고 계속 얘기하는데도 믿지 않는다. 모임에 함께하는 이들 중엔 이재명계 등 타 계파 의원도 많다”며 “정 총리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의원들의 공부 모임 정도로만 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당 포럼에 대한 정 총리의 반응에 대해선 “7월에 출범했을 때도 비슷한 해석들이 나오니까 총리께서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하느냐’고 하시긴 했다”고 전했다. 당내 헤게모니상, 총리와 가까운 현역 의원들은 자신들이 벌써부터 정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듯한 모습으로 비치는 데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정 총리가 퇴임 후 좀 더 확실한 의사를 내보인 후에야 움직이려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포럼이 계속 SK계 모임처럼 비칠 경우, 현재 함께하고 있는 다른 계파 의원들이 부담을 느껴 탈퇴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정 총리의 한 오랜 측근은 “신분상 총리가 직접 함께하진 못하지만 포럼의 구심점인 건 분명하다. 향후 유의미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은 있다”고 밝혔다. 아직 공개적인 대권 행보에 나설 수 없는 총리를 대신해 그의 오랜 지인들과 지지세력을 주축으로 총리의 퇴임 후를 준비하는 정황 또한 확인된다. 취재에 따르면 2011년경 대선을 위해 출범시킨 싱크탱크 ‘국민시대’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광화문 인근 사무실에 모여 조심스럽게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을 비롯해 정 총리의 대선을 돕는 측근들은 최근 미국 대선 이후 조 바이든 당선인과 정 총리 간 여러 공통점을 비교하며 바이든 당선인에 대해 연구·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호남 민심은 어디로 향할까. 정세균 총리(왼쪽)가 대권 가도를 본격화하지 않은 지금, 호남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로 대동단결한 상태다. ⓒ연합뉴스

코로나 방역 성과와 親文 진영의 서포트

겉으로 나타나는 정 총리 지지율은 아직 미미하지만, 향후 정 총리와 대선가도를 함께 뛸 측근들은 본격적으로 대선 행보에 나서면 판세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만 어느 정도 성공시킨 후 총리직에서 물러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특정한 사퇴 타이밍을 잡고 서두르기보다는, 코로나 방역 성과를 강조할 수 있는 시점에 맞춰 직을 내려놓는 게 낫다고 보고 있다.

호남 지역의 전반적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정 총리의 정치적 연고지인 전북의 경우 말할 것도 없이 긍정적이다. 현재 전북에서는 또 다른 호남 정치인인 이낙연 대표 지지세가 굳건하지만, 정 총리 행보가 본격화되면 판세는 기울 가능성이 크다. 정 총리 참모 출신의 한 관계자는 “아직은 지역에서도 정 총리가 대선에 정말 제대로 뛰려는 건지 긴가민가하는 사람이 많은데, 본인 목소리로 의지를 밝히며 움직이게 되면 여론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지금 과반이 훌쩍 넘는 이낙연 대표의 호남 전역 지지율은 ‘임시 정류장’일 수 있다. 그만큼 유동성이 크다는 의미”라며 “결국 이곳의 지지율은 ‘친문의 뜻’에 따라 언제든 이동이 가능하다. 정 총리도 이미지가 좋지만, 더욱 부상하기 위해선 결국 당 안팎 친문의 지지가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직까지 이른바 ‘문심(文心)’의 향방은 미지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정 총리에게 문심이 향할 거란 관측은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례에 비춰봤을 때 정권이 재창출되더라도 핵심 계파가 바뀌면 국정 철학이 그대로 계승되지 않고 심지어 인사 보복이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 친문 입장에선 이를 최소화할 차기 대통령감으로 당내 정통성을 갖춘 ‘범친문’의 정 총리가 제격인 셈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확실히 지금 친문 쪽에서 정 총리에게 관심을 크게 갖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이낙연 대표가 당 대표를 하며 사실상 크게 보여준 게 없었다는 점도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정 총리의 비교적 낮은 대중적 지지도도 양정철·최재성 등 친문 쪽 핵심 인사들이 합류해 힘을 실어주면 빠르게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전부터 ‘정세균계’로 자주 언급되며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오랜 기간 굳어 있는 당내 대선 경쟁 판도를 후발주자인 정 총리가 뒤집기 위해선, 코로나19 방역 성과와 더불어 친문의 확실한 결단이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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