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치인] “여성 의원은 깍두기로 껴주거나 아니면 말고”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0.11.30 15:00
  • 호수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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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여성 의원들이 토로하는 정치권에서의 여전한 차별과 한계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여성 의원은 57명(19%)으로 역대 최다로 기록됐다. 15대(1996~2000년) 국회 때까지만 해도 여성 의원이 10명을 넘은 적이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다. 그간 여성 당 대표 및 원내대표도 수차례 배출됐고, 여성 대통령도 선출된 바 있다. 대한민국 최대 도시인 서울·부산시장을 뽑는 내년 보궐선거 후보로도 여성 후보들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정치권도 외적으로는 확연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정치권 내부에선 여전히 여성 정치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이 상당하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과거부터 축적된 정치권의 남성 중심 문화와 여성 정치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그들의 활동 범위를 좁힌다는 지적이다.

시사저널은 현재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전·현직 여성 의원들에게 여성 정치인으로서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 물었다. 일부는 ‘특별히 겪게 되는 어려움은 없는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으나, 다수의 여성 정치인은 한목소리로 “정치활동 중 여성 정치인으로서 겪는 불편함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먼저 거론되는 장애물은 쉬이 벗겨지지 않는 남성 중심적 정치권의 문화다.

더불어민주당 다선 A의원은 “기본적으로 정치권은 남성적 문화를 갖는다”며 “술을 많이 마시며 어울리는 건데, 기본 문화가 이렇다 보니 여성 정치인으로서는 다양한 정치활동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민주당 재선 B의원도 “정치권이 남성들의 세상이다 보니 네트워크 자체가 남자 중심으로 이뤄진다. 여성은 깍두기로 껴주거나, 아니면 말고다”며 “정보나 여러 부분에서 여성들이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제21대 국회의원들이 7월16일 본회의장에서 열린 국회 개원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여성의 정치 참여를 자기 밥그릇 뺏는 것으로 인식”

남성 중심의 정치권 문화는 단순 관계나 친목 문제 이상으로 여성 정치인들의 실질적 정치활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3선까지 지낸 국민의힘 소속 C 전 의원은 “의사결정을 할 때 정치권은 대부분 비공식적으로 논의하는 언더테이블에서 이뤄지는데 여기엔 여성들이 대부분 배제돼 있다. 거기선 공천이나 선거와 관련해 ‘누구를 밀자’ 그런 결정이 많이 되기도 한다”며 “오랫동안 남성의 구역이었기에 이런 문화가 강하게 박혀 있다. 억지로 깨거나 변화시켜야 한다는 각오나 의지가 없으면 변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여성 정치인들이 또 마주하게 되는 커다란 벽은 여전히 빈약한 여성 정치인에 대한 동료 남성 정치인들의 인식과 편견이라고 했다. B의원은 “최근 지역구 공천에 여성을 30% 할당하는 권고사항을 의무사항으로 하는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 동료 의원들에게 도장을 받는데, ‘엘리트 여성들이 정치하려고 그런다’는 이야기를 들어 깜짝 놀랐다. 도전하는 여성 정치인들을 폄하하고 우습게 이야기하는, 완전히 잘못된 인식”이라며 “여성의 정치 참여를 ‘자기 밥그릇 뺏는다’는 식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민의힘 초선 D의원도 “가끔 여성 의원들에 대한 남성 의원들의 인식을 보면 참 한심할 때가 많다”며 “여성 의원들도 한 명 한 명이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인데 단순 여성으로 여기면서 하찮게 대하거나 차별을 느끼게 할 때가 정말 많다”고 토로했다. 민주당 다선 출신의 E 전 의원은 “‘여성들은 여성가족위원회나 맡으면 된다, 어떤 상임위는 여성들이 위원장을 해선 절대 안 된다, 여성은 협상을 못 해서 직책을 맡으면 안 된다’라며 여성 의원의 역할을 한정 짓거나 근거 없는 비하 발언으로 참담하게 하는 분들이 꼭 있다”며 “당장 가까운 국회 안에서부터 그런 편견과 잘못된 인식을 가진 분들이 정작 국민들을 위해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실제 여야 거대 정당의 주요 직책, 정무직 등을 맡는 건 대부분 남성 정치인들이다. 특히 원내에서 협상을 주도하는 원내수석부대표, 정책위의장 등은 여성 의원이 맡는 경우가 거의 없다. B의원은 “이번에 우리 당 정책위의장을 한정애 의원이 맡았는데 여성 의원으로서는 역대 두 번째다. 첫 번째가 아니라는 것에 놀라는 사람도 있는데, 당 역사 70년에 여성이 단 두 명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여성들이 주로 맡는 직책은 대변인 등으로 한정돼 있다. B의원은 이에 대해 “‘구색 맞추기’일 뿐”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위원회 구성에서 여전히 여성은 구색 맞추기용

최근엔 각 정당이 각종 위원회를 구성할 때 여성 의원 한두 명을 꼭 배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위원회 구성에 여성이나 청년 정치인 몫을 할당하려는 긍정적 움직임으로도 보이지만, 결국 구색 맞추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러 위원회에 배치됐던 민주당 재선 F의원은 “외적으로는 여성이 정치권의 여러 부분에 많이 진출한다고 하지만 정치권 내에서 아직 여성 정치인이 주류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구색만 맞추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혜택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이 연속성 있게 여성 정치에 기여했느냐고 묻는다면 과감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여성 정치인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더 커진다고 한다. 공천 등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겪는다는 것이다. 지역구에서 다선한 민주당의 G의원은 “지역구에선 여성 후보들이 출마하려고 하면 얕잡아보고 흔들려는 게 있다”며 “내부적으로도 남성 후보들이 있는 곳에선 경선이 없는 곳도 많지만, 여성은 다선이라고 해도 약하게 평가하거나 반드시 경선을 하려는 분위기가 있어 선거 때마다 여성 의원들이 굉장히 힘들어 한다”고 했다.

과거에 비해 정치권 내에서의 성평등 의식이 분명 나아지고 있다는 것엔 여성 의원들 다수가 공감했다. 다만 여전히 여성 의원이 소수이기 때문에 수십 년간 축적된 정치권의 남성 중심적 문화의 변화가 이뤄지기 어렵고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여성 할당제와 가산점제 등 적극적 평등 조치(Affirmative action)가 더 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소속 H 전 의원은 “오랫동안 고착화돼 온 불평등이 있을 땐 일견 불평등해 보이는 제도라도 일정 기간은 필요할 수 있다”며 “사회가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정치는 과거의 불평등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는 곳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정치인들이 평등한 정치 지형 속에서 국민을 위해 더 바르게, 잘 헌신할 수 있도록 뜻을 모아가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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