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걸 ‘민화협 사유화’ 논란, 다시 불거진 까닭은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6 10:00
  • 호수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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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협, 김 의원이 대표 때 내부 갈등 극심…지금도 정상화 요구 여전

통일운동 상설협의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내에서 최근 전임 대표 상임의장(이하 대표)이었던 김홍걸 무소속 의원의 단체 운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규탄문이 돌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규탄문은 민화협 임원이었던 모 인사가 작성한 것인데, 김 의원의 민화협 운영이 ‘사유화’ 행태를 보였으며, 앞으로의 민화협은 이러한 과거를 청산하고 본래의 취지인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적극 앞장서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그런데 취재 결과, 김 의원의 민화협 사유화 논란은 지난해 초에도 크게 불거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민화협 내부에선 꽤 갈등이 컸으나 외부적으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사유화 논란이 2년 가까이 지난 현재 다시 불거진 까닭은 무엇일까. 특히 민화협은 김 의원의 부친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설립된 단체다. 김 의원이 민화협을 이끌 당시 내부에서 어떤 문제들이 발생했던 걸까. 시사저널은 여러 민화협 관계자를 통해 김 의원 대표 시절 민화협 내부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9년 3월6일 김홍걸 당시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이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민화협 제21차 정기대의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로들이 주로 맡던 자리에 ‘파격’ 선출

민화협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직후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 당시 만들어졌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란 이름은 김 전 대통령이 직접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화협은 그간 남북 교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 등에 힘쓰며 남북 문제와 관련해 민관(民官)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 등을 해 왔다. 200여 개 회원단체로 구성되는 민화협엔 특정 진영에 국한되지 않고 진보·중도·보수 진영이 모두 참여한다.

대표 또한 진영에 갇히지 않고 집권 진영의 인사가 번갈아 맡아왔다. 주로 총리·장관·중진의원 출신 원로들이 대표를 맡아 왔다. 다수 진영이 속해 있지만, 남북 간 그리고 남남 간 화해를 최우선 목적으로 한 민화협 내부에서 정치적 갈등이 벌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다만 보수진영 집권 때 상대적으로 민화협 활동이 활력을 잃었다는 지적은 제기됐다.

김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2017년 12월 민화협 대표에 취임했다. 당시 민화협 내부에선 김 의원의 대표 취임이 꽤 파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국회의원도 아니었고, 원로급도 아닌 김 의원이 대표를 맡는 것에 대해 일각에선 ‘자격이 되느냐’는 반대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한편으론 민화협의 뿌리인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젊은 대표가 맡음으로써 보수정권 9년여 동안 침체됐던 민화협에 새로운 활력과 혁신을 기대하는 시선도 있었다고 한다. 김 의원도 대표 취임사에서 “아무래도 비교적 그분들(전임 대표들)보다는 젊고 부지런하게 뛸 수 있는 제가 나서서 다시 민화협을 살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며 “또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만드신 단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리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김 의원의 민화협 운영을 둘러싸고 내부 갈등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문제가 된 것은 인사였다. 김 의원이 취임한 이후 민화협 내 상당수 인사가 교체되거나 새로 들어왔는데, 현 여당에 관계되거나 김 의원과 사적인 관계가 있는 인사들이 대거 들어온 것에 대해 내부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민화협의 한 임원은 “어떤 조직이나 수장이 바뀌면 사람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지만, 김 의원이 올 때는 한쪽 진영에 편향돼 있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인사가 너무 많았다”고 전했다.

특히 사무처에 큰 진통이 있었다. 기존에 일하던 사무처 직원 대다수가 김 의원이 대표로 취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고 새롭게 교체됐다. 대다수가 길게는 십수 년에서 짧게는 수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이었다고 한다. 사무처장은 1년 새 4번이나 교체됐다. 그 과정에서 부당한 해고 또는 사퇴 압력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무처장 직무대행으로 일하다 지난해 12월 무렵 해고된 A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고 승소했다.

A씨는 “김홍걸 당시 대표로부터 사무처장직을 약속받고 채용됐지만, 직무대행으로 일하다 제대로 된 절차 없이 해고를 통보받았다”며 “해고가 채 이뤄지기도 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민주당 당직자 출신이 새 사무처장으로 왔다”고 했다. A씨는 노동위 결정으로 다시 복직했으나 한 달 만에 다시 해고됐다.

2019년 3월6일 민화협 제21차 정기 대의원회에서 임원 및 회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독단적 의사 결정, 민주적 절차 무시돼”

김 의원이 대표로 취임한 이후의 민화협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해 일부 임원과 원로들이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전에는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 대표를 중심으로 한 상임의장단 외에도 관련 단체 대표와 구성원 대표가 참여하는 공동의장단 회의에서 주요한 결정을 했지만, 김 의원이 대표일 땐 공동의장단이 논의 대부분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공동의장단엔 민화협 회원 단체 대표들을 비롯해 원로 등이 포함돼 있다.

논란은 민화협의 여러 현안으로도 확대됐다. 민화협은 2018년 11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민화협 상봉대회를 위해 방북했다. 당시 방북 인원 중 민화협이 초청할 수 있는 160여 명에 회원단체 다수가 배제되고 김 의원의 사적 지인들이 포함됐다는 내부 반발이 있었다. 또 김 의원의 대표 취임 이후 민화협은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봉환 사업에 착수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기존에 십수 년 이상 해당 사업을 해 왔던 다른 민간단체들로부터 반발이 일었다. 내부에서도 ‘민화협과는 맞지 않는 사업을 독단적으로 무리하게 진행했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대표의 출장비 내역 미보고 등 행사 및 사업과 관련한 예·결산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반복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의 불만들은 지난해 3월 민화협 제21차 정기 대의원회에서도 공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당시 대의원회에서도 오래된 정관을 손보는 등의 목적으로 마련된 혁신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로 했지만, 막상 안건에서 제외됐다. 당시 혁신안엔 주요 논의와 결정에 공동의장단도 참여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임원과 원로는 그 자리에서 그동안 제기된 논란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김 의원의 단체 운영을 ‘사유화’로 규정하며 “모든 민주적 절차가 무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 측이 그들의 발언을 막으려 하면서 고성과 몸싸움이 오가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당시 김 의원 측에 반발한 일부 임원이 임원직이 아닌 고문직으로 옮겨져 논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걸 측 “어느 조직이나 불만 있기 마련”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논란들과 관련해 김 의원을 규탄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지난 1년 동안 민화협은 김홍걸 대표와 그 주변인들의 전횡에 의해 심각한 사유화의 길로 가고 있다. 민화협을 정상화시켜 달라”며 △남북교류 사업에서 개인적 친소관계 중심 지원 △석연치 않은 비용 지출 △사업에서 특정 업체 특혜성 수의계약 체결 등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내부에서 나왔던 불만들을 종합하면 무엇보다 문제가 된 건 ‘민화협의 정치적 사유화’다. 다수의 민화협 관계자는 김 의원이 대표로 취임한 후 민화협이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외부적인 관심에 몰두했다고 지적했다. 호남 지역 지부 구성 등에서도 논란이 일었는데, ‘선거를 위해 민화협을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고 한다. 민화협 대표직에 있던 김 의원은 2020년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고, 대표직을 내려놨다.

논란들은 내부적으로 시끄러웠지만, 외부로 크게 표출되지는 않았다. 민화협 관계자들에 따르면, 반발하는 측도 갈등이 외부로 알려져 조직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꺼린 탓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는 이가 적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다시 규탄문이 돌고 지난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이번 기회에 내부 갈등 요인들을 완전히 해소하고 민화협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바라는 안팎의 분위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랫동안 민화협에 몸담은 한 인사는 “(김 의원 시절 논란들은) 참 가슴 아픈 얘기”라며 “이제라도 인사, 사업 등 여러 부분들이 정상화돼 민화협 본래 취지에 맞는 남북·남남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들을 하는 단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 측은 당시의 사유화 논란에 대해 시사저널에 “민화협은 조직 자체가 체계적으로 잘 구성돼 있어 대표라고 해서 마음대로 결정하거나 불의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며 “(김 의원은) 무보수로 고생하며 평양 방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유골 봉환 남북 합의와 10년 만의 금강산 남북 민화협 상봉 행사 등 한반도 평화와 화해 협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또 “어느 조직이나 불만은 있기 마련이다. 도덕적이든 법적이든 문제 될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는 민주당 5선 출신 중진인 이종걸 전 의원이 민화협 대표로 있다. 이 전 의원은 전임 대표인 김 의원의 사유화 논란과 관련해 “내 임기 때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아직 정리되지 못한 게 있으면 살펴볼 것”이라며 “그동안 위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또 남북이 가로막혀 있어 어려운 점도 있으니 그때마다 상처를 최소화하면서 가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4월8일 문재인 당시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선 선거 유세 도중 김홍걸 광주공동선대위원장과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직 대통령 의중 반영되는 민화협 대표 선임

비공식적이지만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 선임엔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중 정부 때의 한광옥·강만길·한완상·이돈명, 노무현 정부 때의 이수성·정세현, 이명박 정부 때의 김덕룡, 박근혜 정부 때의 홍사덕 전 대표 등 지금까지 대표를 맡았던 인사들은 대부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다.

김홍걸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17년 10월, 보수진영 원로인 고(故) 홍사덕 전 대표가 물러난 이후 공석 중이던 민화협 대표에 취임했다. 김 의원의 민화협 대표 선출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 정책에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기조를 이어받겠다는 뜻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왔다.

김 의원은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래 문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며 조력해 왔다. 그해 4월 20대 총선 때 문 대통령과 함께 호남 선거운동에 동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12월 김 의원의 민화협 대표 취임 때 서면 축사를 통해 “민화협이 남남 대화와 민족의 화해 협력을 위한 발걸음을 더 힘차게 내디딜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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