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변종업소 나쁘지만 자영업자도 먹고살아야…”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5 14:00
  • 호수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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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에 놓인 ‘일반음식점’, 한숨만 느는 자영업자들
변종업소 ‘꼼수 영업’에도 불만 커

또다시 이태원발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소재의 주점에서 코로나19 확진자 11명이 나왔다.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1명이 11월30일부터 12월3일까지 이태원 주점 웨스턴라운지·투페어·다이스·KMGM·젠틀레빗 등 총 5곳을 다녀갔다. 역학조사 결과 최초 확진자를 포함해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3일까지 이태원 소재 주점 등을 방문했다. 일부 확진자는 동선이 겹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 확진자가 발생한 후 연이어 추가 감염자가 나오면서 누적 확진자는 19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방문자는 13명, 종사자는 1명, 방문자 가족은 5명이다. 용산구는 확진자가 다녀간 주점에서 작성된 출입명부를 토대로 방문자 379명에게 검사를 안내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들에 대한 검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12월8일 유흥업소 관련 신종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골목의 주점과 라운지바 등의 문이 닫혀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 없음 ⓒ시사저널 최준필

또다시 이태원발 코로나19 확산 위기

곽진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환자관리팀장은 “현재 5개 업소를 방문한 사람에 대해 방문자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확진자 중 주점 다섯 곳 모두 방문한 사람도 있다”며 “업소 내 방역수칙 준수 여부나 위험 요인에 대해서는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확진자들이 방문한 업소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홀덤펍’으로 불리는 주점이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집합금지 명령이 시행됐다. 이 때문에 클럽과 룸살롱 등 각종 유흥주점은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일반음식점은 영업이 오후 9시까지로 제한됐다.

하지만 홀덤펍은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되면서 집합금지 대상에서 빠졌다. 홀덤펍은 카드게임이나 각종 오락 등을 즐기며, 술을 마시는 곳이다. 서울시 역학조사 결과 해당 시설 등 업소 이용자들은 대부분 4~7시간씩 장시간 머물렀고, 술을 마셨으며, 여러 곳을 다니며 게임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용객들은 하루 평균 2~3곳의 홀덤펍을 방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초 확진자가 방문한 홀덤펍 4곳을 다녀간 사람이 또 다른 홀덤펍인 ‘젠틀레빗’을 이용하면서 확진자가 다녀간 홀덤펍은 총 5곳으로 파악됐다.

이번 이태원발 집단감염으로 홀덤펍이 집중단속 대상이 됐지만, 그 못지않은 변종업소가 또 있다. 바로 ‘라운지바’다. 여기도 집단감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상 클럽과 마찬가지여서다. 유흥주점 운영이 금지되자 사람들이 클럽과 비슷하게 운영되는 라운지바로 모였다. 특히 서울 강남에 신장개업한 라운지바들이 청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시사저널은 라운지바의 영업과 단속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 강남 유흥가를 찾아가 봤다.

청담동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클럽이 문을 닫자 라운지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이태원·청담·신사·압구정 등에 있는 라운지바들이 클럽 분위기를 내려고, 내부를 클럽처럼 개조했다. 또 클럽 DJ들까지 섭외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클럽 문 닫고, 변종 ‘라운지바’ 열어

서울 신사역에 있는 C라운지바가 대표적인 예다. 이 라운지바는 금요일 5시부터 10시, 토요일 5시부터 11시, 16시부터 21시, 일요일 5시부터 11시, 16시부터 21시까지 영업한다. 정부에서 지정한 영업시간은 지켰으나, 규제 당국의 방역 대책을 무색하게 하는 영업 방식인 셈이다.

12월4일 C라운지바를 다녀온 한아무개씨에 따르면 새벽 시간임에도 입장을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라고 한다. 입장할 때는 카메라로 내부 촬영을 하지 못하게 핸드폰 카메라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꼼꼼함도 보였다. 

C라운지바 내부는 조명과 음악 등이 클럽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DJ 부스 근처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 술을 마시며 춤까지 췄다고 한다. 내부 곳곳에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유지’라는 팻말이 있지만 턱마스크를 한 채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이 많았고, 심지어 담배를 피울 수도 있었다고 C라운지바를 다녀온 한씨가 설명했다. 강남 학동에 있는 B라운지바는 최근까지 새벽 장사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B라운지바 홍보글에 따르면 주중에는 18시부터 3시까지, 금요일과 토요일은 새벽 5시까지 운영했다.

라운지바나 일반주점에서 헌팅이나 합석 등이 불법은 아니지만, 업소 내에서 춤을 추는 행위 등을 할 경우 제재를 할 수 있다.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일반음식점에서는 조명시설을 설치하고 춤을 추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다시 말해 일반음식점인 라운지바에서 춤을 추는 건 불법이다. 유흥업소 관계자에 따르면 직원들이 춤을 추는 손님들을 제재하지만, 통제가 잘 이루어지진 않는다고 한다. 

방역 당국도 이런 주점들을 적발하는 건 쉽지 않다. 단속 공무원들이 업소에서 춤추는 현장을 직접 적발하지 않는 한 행정조치가 힘들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변종업소들을 일일이 단속하기 힘들다. 현재는 각 구청에서 자체적으로 단속을 하고 있다”며 “크리스마스나 신년 등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모이는 시기에 경찰과 합동단속반을 꾸려 대대적으로 집중단속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12월8일 저녁 7시쯤 학동에 있는 B라운지바를 찾았다. 가게 문이 열렸지만, 내부 조명은 다 꺼진 상태였다. B라운지바 직원은 “이번 주부터 코로나 때문에 영업을 안 한다”고 말했다. 이날 시사저널은 신사동 일대에 있는 라운지바 다섯 곳을 가 봤지만, 모두 문이 닫힌 상태였다. 또다시 이태원발 코로나 확진자가 대량 발생하자, 라운지바들이 집중단속 우려 탓에 영업을 중단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시사저널이 만난 한 업주는 “주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영업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며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 영업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600명대로 급증하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더 늘어났다. 이날 주점이 몰려 있는 이태원과 합정도 찾았다. 대부분 네온사인 간판을 끈 채 문을 닫은 식당이 많았다. 거리는 어두웠으며, 지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나마 순댓국집과 감자탕집에서 퇴근한 직장인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은 볼 수 있었다.

합정동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박아무개씨는 11월부터 가게 문을 닫았다고 한다. 박씨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 나서 저녁 9시까지 영업을 해 봤는데 오히려 손해다. 알바생들 인건비도 못 건진다”며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겠다 싶어, 아예 장사를 안 하고 있다. 직원과 아르바이트생 6명을 모두 무급휴가로 돌린 상태”라고 말했다. 박씨는 “가뜩이나 수익 감소로 속상한데, 변종업소들의 영업 행태로 코로나19 확산이 계속되는 걸 보면 더 화가 난다. 우리들처럼 대다수 자영업자들은 정부 방침을 따르고 있는데, 우리만 바보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박탈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게문을 열어야 하는 자영업자도 있다. 한 푼이라도 벌어 임대료라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태원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요즘 정말 힘들다. 하루 매출이 5만~10만원인 날이 허다하다. 장사가 안되지만 임대료는 내야 하니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12월8일 합정과 홍대 거리의 모습. 많은 상가들이 폐업해 상가 임대 광고가 많았다. 저녁 시간임에도 거리는 한산했다.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

“저녁 9시에 문 닫으라는 건 장사하지 말라는 거다”

합정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박아무개씨는 익명을 전제로 시사저널 인터뷰에 응했다. 박씨는 최근 코로나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정부 방역 대책에 아쉬움을 나타내며, 소상공인들에게 현실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힘들어 죽겠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격상되면서, 11월말부터 휴업했다. 금·토·일엔 장사가 되지 않을까 싶어 문을 열었는데, 사람들이 전혀 오지 않는다.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다 싶었다. 직원과 아르바이트생 6명도 무급휴가로 돌렸다. 합정 일대 술집 대다수가 비슷한 상황이다.”

변종업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정말 화가 난다. 대다수 자영업자는 정부 방역 대책에 따르는데, 이런 업소들 때문에 코로나19가 계속 확산하고 있다. 정부에서 더 강력하게 이런 업소들을 단속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간다. 아무리 정부에서 9시까지만 영업하라고 해도 어차피 술 마시고 놀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모이는 게 현실이다. 정부 방역 대책이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 방역 대책 중 어떤 부분이 아쉽나.

“정부의 방역 대책이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 결국 죽어나가는 건 소상공인이다. 밤 9시까지만 영업하라는 건 ‘장사를 하지 말라’는 소리와 마찬가지다. 당연히 코로나로 인한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어려운 결정을 한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소상공인은 임대료도 내야 하고, 대출이자도 갚아야 한다. 최근 청와대 청원에도 소상공인에 대한 임대료와 대출이자 상환을 멈춰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는데, 심히 공감하는 바다.”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마음으로 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19 방역에 힘쓰고 있는 정부에 감사를 표한다. 소상공인들은 이제 갈 데까지 갔다. 정말 힘들다. 소상공인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또 변종업소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내놓으면 좋겠다. 하루빨리 예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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