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내몰린 2030, ‘코로나 우울’에 빠지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5 08:00
  • 호수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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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과 불평등의 충격, 청년들에게 더 심각
“심리 지원과 고용정책 방안 병행돼야”

재난이 닥쳤을 때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드러난다.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일자리와 격차의 문제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줄어든 일자리는 사회에 진출하려는 청년들의 발목을 잡았다.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 같은, 제대로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일에서도 내몰렸다. 첫 시작도, 다시 시작하는 길도 막혔다.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가장 많은 관계를 맺어나가야 할 시기에 단절과 고립이라는 어려움을 겪은 청년들은 그들을 가로막는 단단한 문을 뚫고 나갈 힘이 없다. 4명 중 1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고 말할 정도다. 청년들이 위기에, 우울에 빠졌다.

청년층의 ‘코로나 우울’은 풀리지 않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그 맥락을 같이하기에 더욱 심각하다. 단순히 ‘집콕’과 ‘거리 두기’ 때문에 우울한 것이 아니다. 심리뿐 아니라 생계가 침해당하는 또 하나의 재난 상황에 놓여 있다. 12월8일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가 주관한 청년보장포럼 ‘코로나19 속 청년, 더 이상 시간이 없다’에서는 위기에 처한 청년들의 상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먼저 ‘실업’이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19~34세 청년 2000여 명을 대상으로 10월 둘째 주부터 넷째 주까지 진행한 온라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지난 2월 이후 실업을 경험한 청년은 30%에 달했다. 지난 10월 전 연령 취업자를 대상으로 한 유사 조사의 실업 경험률은 15%. 청년층의 실업 경험률은 두 배 이상이었다.

ⓒfreepik

일자리를 잃은 청년들, 길을 잃은 청년들

실제 통계를 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기준 국내 실업률은 3.7%지만 청년(15~29세) 실업률은 8.3%에 달한다.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소득을 올리지 못하는 청년만 따진 것이다.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까지 포함한 청년체감실업률은 10월 기준 24.4%. 4명 중 1명이 직업을 잃은 셈이다. 격차도 드러났다. 학력이 낮을수록 실업률은 높았다.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프리랜서와 특수고용직이 일자리를 더 많이 잃었다. 임금 삭감, 무급휴직, 임금 연체·미지급 중 하나를 경험한 사례도 49.6%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정규직 일자리 자체가 없어지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에게도 직격타가 왔다. 올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742만6000명.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만5000명 줄어들었다. 특히 비정규직은 숙박업, 음식점업, 제조업 등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업종에서 주로 감소했다. 근로자 감소폭이 가장 큰 연령대는 20~30대 청년층이었다. 코로나19가 흔들어댄 노동시장의 구조 앞에서 청년들은 길을 잃었다. 채용 일정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면서 채용시장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고, 아르바이트나 단기 일자리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말한 청년들도 79%였다. 코로나19로 자격증 시험이 미뤄지면서 구직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년도 많았다. 안타깝지만 당연하게도, 청년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58%의 청년이 미래의 직업 전망이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구직과 미래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는 청년들의 직접적인 생활과 현재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삶의 터전을 옮긴 청년이 10명 중 1명이었다. 독립을 한 청년들이 부모와 주거를 합치거나(25.6%), 친척이나 친구와 함께 살기로 하거나(17.2%), 주거비 부담이 적은 곳으로 이사(36.6%)한 것이다. 월세나 관리비, 통신요금 등 생활비를 연체한 경험도 29.2%에 달했다. 이 중 70% 이상이 코로나19로 인한 결과라고 답해, 실제 코로나19가 청년들의 삶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57.7%의 청년이 우울감 시달려

팍팍한 현실은 청년들을 ‘코로나 우울’에 빠져들게 했다. 센터가 우울증 자가진단(CES-D) 척도를 활용해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청년들의 평균 점수는 60점 만점에 20.46점이 나왔다. 17점 이상이면 경도 우울, 25점 이상이면 중증도 우울로 분류된다. 2019년 전체 청년을 대상으로 한 유사 연구 결과가 6.09점, 2018년 20대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가 16.7점이었던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응답자 중 57.7%가 우울 상태였다. 36.3%가 중증도 우울, 21.4%가 경도 우울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비율도 높았다. 2월 이후 한 번이라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청년이 26.8%에 달했다. 특히 구직활동의 어려움이나 노동 환경의 변화를 느낀 청년층, 생활에서 변화를 느끼고 있다고 응답한 청년일수록 비관적이었다. 코로나 우울을 치료하기 위한 정신적 상담도 중요하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단순히 정신건강 관련 정책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청년층의 월별 정신건강 동향에 대한 추적이 필요하다”면서 “또 원인이 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향후 노동시장에서의 청년들의 이행 과정과 경로를 추적하면서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청년도 급증했다. 특히 20대 여성의 우울이 가장 많이 늘어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여성 연령별 우울증 진료 인원 현황’을 보면, 20대 여성 우울증 진료는 같은 기간 12만4538건에서 17만2677건으로 38.7% 증가했다. 보건복지부의 ‘2019~2020년 상반기 자살 현황’에 따르면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률은 지난해 대비 43%나 늘었다.

청년 중에서도 여성이 코로나19로 인해 더 내몰리는 것일까.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의 분석은 다르다. 20대 여성 자살률의 증가는 ‘선행지표’라는 것이다. 서 대표는 “이 문제는 취업의 어려움과 사회의 어긋난 구조에 여성이 먼저 노출됨으로써 겪는 충격”이라고 분석했다. 20대 초반 남성의 상당수는 군대에 있고, 코로나19 발생 이후 노동시장 진입 단계에서 마주하는 충격에 아직 노출되기 전이다. 남성보다 여성이 장벽에 부딪히는 시기가 빠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코로나19로 인한 청년층의 우울은 젠더로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청년층이 모두 심각하게 겪고 있는 전반적인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코로나 세대’의 내상과 충격 우려”

문제는 청년층의 위기가 장기적일 것이라는 데 있다. 이미 청년층의 고용 충격이 장기화하면서 이들이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취업 시기를 놓친 청년들이 향후 오랫동안 막대한 임금과 경력 손실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청년 고용의 현황 및 정책 제언’ 보고서를 통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고용 위축이라는 충격은 길게는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나타나며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줄 것이라고 봤다. 1997년 외환위기에 따른 ‘IMF 세대’, 2008년 ‘금융위기 세대’에 이어, 2020년 ‘코로나 세대’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충격도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학 졸업 후 첫 취업이 1년 늦어지면 또래 근로자에 비해 직장생활 첫 10년간 임금이 연평균 4~8%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통상적으로 직장생활 초반에 임금이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이때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면 임금 손실은 지속적으로 누적될 수밖에 없다. 경기 악화를 이유로 눈높이를 낮춰 취업하면 향후 직장 선택에도 제약이 많아진다. 계속 낮은 임금을 받을 가능성도 커진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 충격 장기화에 대비한 특단의 한시적 청년 고용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노동시장의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도록 고용의 자격 요건을 완화해 청년의 일 경험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경력 공백이 장기화하면 그 부정적인 영향이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고 한다. 경력 공백을 줄이고 소득을 보전하는, 청년 일자리 수요가 높은 직종을 중심으로 한 공공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신속한 대응을 촉구한다. 서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해 비상한 대응을 해야 함에도 정부의 구직활동 지원은 작년과 대처가 다를 바 없다. 일자리 지원과 관련한 추가 고용장려금은 오히려 줄어들고, 일부 지자체는 청년 예산을 삭감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의 삶을 기준으로 정책 감수성을 빨리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청년 등록제를 통해 대학 일자리센터, 청년센터, 고용센터 등 가까운 곳에서 고등학교 졸업부터 5년간 취업 관련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정보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기존 고용 관련 기관들은 공공정책 DB를 구축해 정책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만의 잘못이 아니다.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사회가 알고 있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온라인 고민상담소 하이데어에 올라온 한 청년의 글처럼, 2020년 코로나19를 마주한 청년들의 우울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다. 최기홍 KU마음건강연구소장은 “청년들에 대한 심리지원 자체가 부족하다. 대학 학생상담센터의 대기 기간이 2~3개월이고, 사회 초년생이나 취업 준비생들도 병원을 찾지 않고서는 상담을 받기 어려운 구조 속에 있다. 전문적인 심리기관에 청년 심리지원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심리지원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회가 인프라를 구축해야만 청년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청년들이 ‘세상이 공정함을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고용 등 정책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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