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정전 사태로 현실화된 재생 에너지 리스크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4 14:00
  • 호수 16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양광·풍력과 연결되는 전력 시스템 불안정성 커져…한국도 독자적인 시스템 구축 필요

최근 정부와 민간 발전사업자들이 공동으로 전라남도 신안군에 시설용량 기준으로 8.2GW에 이르는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건설에 착수했다. 그린뉴딜의 일환으로 2030년까지 투자액만 48조5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 사업비 중 대부분인 47조6000억원은 민간부문의 투자로 진행될 계획이다. 정부는 8.2GW 규모의 풍력발전시설 건설을 통해 연간 이산화탄소 1000만 톤 감축과 함께 직간접적으로 12만5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으로 대표되는 재생 에너지는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킬 수 있는 만큼, 저탄소 사회로 진입하는 데 핵심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과거 높은 비용으로 인해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돼 왔으나, 기술 발전과 함께 보급이 확대되면서 급격한 가격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화력 및 천연가스를 이용하는 것보다 전력 생산비용이 더 낮게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기상 여건에 따라 생산량이 급변하는 단점이 있다. 재생 에너지 발전시설 확대는 필연적으로 전력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 만큼 그에 따른 대비가 요구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미국 텍사스주의 대규모 정전 사태는 이러한 우려가 사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최악의 한파가 덮친 2월19일 미국 텍사스주 주민들이 식료품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연합뉴스

기상 여건 따라 재생 에너지 생산량 급변

미국 텍사스주의 경우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넓은 토지와 풍부한 풍력자원을 토대로 풍력발전 비중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2015년 11% 수준에서 2018년 19%로 대폭 상승했으며, 2021년 2월초에는 42%까지 올라갔다. 이에 따라 텍사스주 전력 생산량 기준으로 풍력발전은 천연가스발전(45%)에 이어 두 번째 위치를 점하게 됐고, 석탄화력발전의 경우 18%로 급감했다.

그런데 최근 북극에서 시작된 한랭전선이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텍사스까지 남하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평소 경험하지 못하던 대규모 눈폭풍과 혹한으로 난방을 위한 전력수요가 70GW를 초과했으나 대다수 풍력발전기의 터빈이 얼어붙어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따라 시설용량 34GW에 이르는 풍력발전이 한꺼번에 중단됐고, 200만 가구 이상에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텍사스주의 발전용량은 83GW에 이르지만 여름철에 전력수요가 집중된다. 겨울철에는 정비 등을 이유로 화력발전소들이 가동을 중단해 왔다. 풍력발전의 차질과 수요 폭증이 겹치면서 텍사스주의 전기요금은 도매요금 기준으로 MWh당 25달러 내외에서 9000달러로 폭등했다. 천연가스 생산시설 역시 혹한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전력공급 재개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풍력발전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면서 텍사스주가 다른 발전 방식의 의존도를 낮춘 게 원인이었다. 풍력발전의 경우 시설 설치 때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며, 판매에서도 청정 에너지 우선 원칙에 따라 급속하게 확대됐다. 제도적 지원에 따라 풍력발전은 월등한 가격 경쟁력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전력망 전체는 변동성이 큰 재생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전반적으로 취약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런 상태에서 기상이변이 발생하자 전체 전력망 붕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태양광 및 풍력과 같은 재생 에너지의 최대 약점은 변동성이다. 기존 발전 시스템은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기 위해 발전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전력망을 안정된 상태로 유지해 왔다. 기상 여건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변화하는 재생 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 전력망 유지가 어려워지고, 극단적인 경우 전력망 붕괴와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재생 에너지가 충분한 발전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한 예비 발전시설을 보유·운영해야 한다. 이 경우 대규모 유휴 발전 설비 유지에 따른 비용 상승과 비효율을 가져오게 된다.

유럽의 경우 이러한 문제를 대규모 전력망 연계와 통합을 통해 극복해 오고 있다. 일례로 독일의 태양광발전이 감소하게 되면 인접한 프랑스 및 폴란드의 원자력, 석탄화력발전소가 생산한 전력을 공급받는 방식으로 전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장거리 송전을 통한 재생 에너지의 저장과 수소 생산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풍력을 통해 과잉 생산되는 전력을 노르웨이로 송전하고 있다. 양수발전소를 가동하는 방식으로 전력을 저장한 후 필요시 활용하기 위해 북해를 가로지르는 북해전력망(North Sea Link)을 2021년 완공할 예정이다. 지형적으로 댐을 건설하기 좋은 노르웨이와 풍력발전이 용이한 영국의 상호 보완을 위한 협력인 셈이다.

ⓒ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해원리 해안에 완공된 국내 최대 풍력발전단지ⓒ

재생 에너지와 거대 석유기업의 동거, 왜?

최근에는 대규모 해상풍력에서 발생하는 전력을 이용해 물을 분해한 뒤 수소를 생산하는 프로젝트(NortH2)도 추진 중이다. 북해에 건설된 대규모 해상풍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네덜란드의 그로닝겐으로 보내 연간 80만 톤의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주변 국가에 파이프라인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그로닝겐은 오랫동안 천연가스를 생산하던 곳이어서 이곳을 중심으로 파이프라인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이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면 용이하게 수소를 운반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셸(Shell)과 노르웨이 국영 석유기업인 에퀴노르 등 대규모 에너지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재생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적인 흐름은 현재 크게 변화하고 있다. 대륙과 대양을 가로지르는 초장거리 송전, 수소 또는 암모니아로의 전환을 통한 운송 등 다양한 형태로 에너지를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생 에너지 비중 확대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어떻게 기존 시스템에 통합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지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집중형 발전소에 의존하던 전력망과 달리 재생 에너지는 다수의, 통제되지 않는 발전기가 작동하기 때문에 새로운 전력 시스템 도입과 관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가들의 협력을 통해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유럽과 달리 우리 혼자서 모든 리스크와 유휴 시설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유럽의 모델은 적용하기 곤란한 만큼 독자적인 시스템 구축과 접근이 필요하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