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컨트롤타워 청와대가 헛도는 세 가지 이유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6 14:00
  • 호수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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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된 文의 침묵, 갈등만 키우고 신뢰는 훼손
‘김은경 트라우마’로 결정 미루고, ‘홍남기 때리기’로 책임 떠넘겨

국정 난맥. 난맥은 ‘이리저리 흩어져서 질서나 체계가 서지 아니한 일의 양상’을 뜻한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정 난맥상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단 되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당장 지금의 국정 기조는 무엇인지, 최우선 국정 과제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다. 집권 5년 차의 임기 말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을 필두로 한 여러 사업의 성과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국정사업의 결실은 찾기 어렵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어디를 향해 뛰고 있을까. 

반면 드러난 국정 난맥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문 대통령 지지율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부동산 시장 불안정은 국민에게 큰 허탈감을 안겼다. 최근 다소 진정된 모습이지만 문 대통령의 말처럼 급등한 집값을 어떻게 다시 집권 초 수준으로 되돌릴 것인지에 대해선 그 누구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라를 둘로 쪼개 놓은 듯 극심한 혼란을 빚게 한 법무부와 검찰의 전면전 갈등 양상도 쉬이 해결될 기미가 없다. 2019년 조국 사태, 2020년 추미애-윤석열 갈등 양상은 올해 ‘신현수 파동’으로 옮겨 붙으며 다시 한번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코로나19 장기전으로 인한 고용 참사 상황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다행히 백신 수급 파동 이후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걸로 지금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셈이다. 

ⓒ시사저널 박정훈
ⓒ시사저널 박정훈

청와대, 갈등 조정 역할 제대로 못 해

국정 난맥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당연히 최종 책임은 문 대통령에게 있다. 그렇다면 국정 난맥의 핵심 원인은 무엇일까. 청와대가 제 역할을 다 못 하고 헛돌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많다. 국정의 컨트롤타워로서 국정의 중심을 잡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충분히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의도 국회는 물론 청와대 안팎에서도 흘러나오는 목소리다. “임기 초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킨 이후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성과는 무엇이고, 지금은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침묵을 지키는 청와대 관계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청와대는 왜 헛돌고 있을까. 일단 청와대 참모진들의 피로도가 매우 높아졌다. 신체적 피로감뿐만 아니라 심리적 피로도도 상당한 수준이다. 살인적 업무강도를 견뎌내고 있지만 원하는 만큼의 성과가 어느 순간부터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배·민형배·윤건영·정태호 의원 등 대통령의 복심들이 국회로 자리를 옮긴 것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다 보니 일부 핵심 참모진에게 과도한 업무량이 쏠리고 있다. 이에 최근 청와대는 정무와 기획 파트 등을 별도로 분리해 강화하는 조직개편을 검토했다. 무산되긴 했지만 뒤집어서 보면 지금 청와대의 정무와 기획 등에 아쉬움이 있다는 의견이 청와대 내부에서도 솔솔 나오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까지의 분석은 평면적이다. 이 문제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해결 가능하다. 최근 국정 난맥상의 원인은 좀 더 근본적이다. 병이 깊다. 문제 해결은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중요한 점은 현재 국정 난맥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세 가지 포인트를 짚었다. 바로 국정 운영의 최종 책임자인 문 대통령의 ‘선택적 침묵’과 청와대의 ‘김은경 트라우마’ 그리고 ‘홍남기 때리기’다. 각각의 사례는 지금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갈등을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책임을 미루고 있다는 상징적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이 얘기는 현 집권세력의 능력과 태도, 전략에 대한 분석이 된다. 

 

①‘침묵’ 택한 文 대통령, 나라는 두 동강

2017년 5월10일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 취임선서를 하고 취임사를 낭독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그 핵심 방법론으로 ‘소통’을 제시했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는 다짐,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끝내겠다’는 선언 등을 모두 소통으로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밝혔다. 야당과는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로부터 1400여 일(약 3년10개월)이 지났다.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문 대통령은 약속한 것처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됐을까. 박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는 많이 잡아도 한 자릿수에 그친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늘렸다고 하지만 큰 의미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정치의 본령은 사회 갈등을 조정하는 데 있다. 그 책임의 꼭짓점에 위치한 이가 바로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갈등 조정자로서 충분한 역할을 했을까? 

지난 3년10개월간 한국 사회를 둘로 쪼개 놓을 만큼 극심한 갈등을 불러온 일들이 있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 윤미향 사태, 월성 1호기 청와대 개입 의혹, 김해 신공항 백지화 논란 등이 그랬다. ‘조국 사태’와 ‘추미애·윤석열 갈등’으로 대표되는 법무부와 검찰의 대립은 그야말로 혼돈의 절정이었다. 나라가 사실상 내전 상태로 두 동강 났던 시기였다.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국민과 언론은 대통령의 입을 바라봤다. 단호한 리더십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사태를 진정시킬 대안을 마련해 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민은 대통령의 입장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때마다 문 대통령의 선택은 ‘침묵’이었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논란이 한창 ‘뜨거운 감자’일 때는 언급을 피하다가 논란이 식을 때쯤 입장을 내는 일을 반복했다. 뒤늦게 내는 입장도 우회적일 때가 많았다. 물론 정치인의 침묵도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다. 문제는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 무언(無言)의 신호를 각 진영이 서로 다르게 해석해 오히려 갈등을 키웠다는 데 있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은 대통령의 침묵을 “우리 진영을 사수하라”는 메시지로 해석했다. 반면 반대 세력은 지도자의 침묵을 직무유기이자 책임방기로 풀이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침묵은 갈등을 더 키우고 각 진영의 이분법 논리를 더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사태는 문 대통령이 불리한 이슈일 때만 침묵한다는 ‘선택적 침묵’ 프레임에 갇히면서 더 악화됐다. 위기를 모면하는 방편으로 침묵을 택한다는 오해를 살 여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국정 책임자’로서의 신뢰와 권위가 점점 훼손됐다는 데 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문 대통령의 침묵을 ‘실력 없음’으로 분석했다. 윤 실장은 “문 대통령의 침묵은 구체적 사안에서 본인이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그 상(像)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문 대통령이 침묵한 상당수 사안의 본질이 ‘민주주의’와 맞닿아 있었다는 데 있다. 추-윤 갈등이나 월성 원전 논란, 가덕도 신공항 논란 등은 문재인 정부가 절차적 정당성을 건너뛰거나 무시하면서 불거진 사안들이다. 이와 관련해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저서 《싸가지 없는 정치》에서 “문재인 정권이 절차적 정당성에 둔감한 정도를 넘어 그걸 아예 무시해도 괜찮다는 생각에 중독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걸 잘 보여준 게 바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경제성 조작 혐의 사건”이라면서 “(대선 공약으로) 전체 사회 구성원이 어떤 대원칙에 합의했더라도 실천의 절차적 정당성을 갖춰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라면서 “과정과 절차는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②‘김은경 트라우마’에 얼어붙은 靑

지난 2월9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은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사표를 받아내고, 그 자리에 청와대와 정부의 내정자가 임명되도록 채용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게 청와대가 헛도는 것과 무슨 상관일까. 청와대는 물론 관가에서는 이를 공공연히 ‘김은경 트라우마’라고 부르며 몸서리를 친다. 왜 그럴까. 1심 판결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공공기관 인사 행태에 사법부가 실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정치권 밖에서는 그저 수많은 뉴스 중 하나로 넘겨버리지만, 실제 안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에게는 그 정치적 파장이 작지 않다. 그동안 해 오던 대로 일을 집행했는데, 그걸로 처벌을 받게 생겼기 때문이다. 

청와대 실무진과 부처 공무원들의 ‘김은경 트라우마’에 대한 두려움은 상상 이상이다. 특히 검찰의 기소 이후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던 담당 실무진들이 체감한 감정은 공포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혐의로 검찰 수사가 이어지고 있는 점도 이런 흐름에 불을 붙였다. 통치 행위로 인식하고 진행한 일들로 인해 사후에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청와대 관계자는 “검찰의 기소 후 동료들이 조사를 받는 걸 보면서 일을 되게 하기보다는 절차상 문제가 없는지를 따지고 또 따지는 분위기가 생겨난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개혁과제라는 게 마음먹고 온힘을 다해 밀어붙여도 부처의 협조 없이는 결과를 내기 어려운데 ‘김은경 트라우마’ 이후 늘공(늘 공무원)들의 자세가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사실상 제동을 건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토부는 사업비가 부산시에서 주장하는 7조원이 아닌 28조원이 넘을 수 있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국토부는 ‘공무원의 법적 의무’도 제시했다. 국토부는 “절차상 문제를 인지한 상황에서 가덕 신공항 특별법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고, 성실 의무 위반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③‘홍남기 때리기’로 책임 떠넘기기

코로나19라는 재난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국민에게 던졌다. 방역을 통해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손실 보상 등을 통해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구제하는 것까지 국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정의 역할’은 주목받게 됐다. 정부 방역 지침에 따라 발생한 손실을 보상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재정 건전성 역시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애매모호한 기준 제시에서 불거졌다. 문 대통령은 ‘더 많이’라는 당의 입장과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기재부의 주장 사이에서 애매한 태도를 취해 왔다. 이번에도 문 대통령은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는 전제로 기재부 의견을 존중하는 동시에 “과감하게, 실기하지 않고, 충분한”이라는 말로 선거를 앞둔 여당 입장도 살폈다. 말은 좋지만 이래선 대통령이 말하는 재정 범위가 대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 국정 책임자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 논란을 줄이면 좋겠지만 대통령은 계속 논점을 피해 갔다. 

그 사이 직격탄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맞았다. 정부가 지금까지 3차에 걸쳐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사실상 생색내기 수준이다. 1년 가까이 소득이 끊기고 매출이 급감했음에도 지원은 일회성이다. 그나마도 100만~300만원이 고작이다. 하루 6만 엔(약 60만원)과 월 5만 유로(약 6700만원)의 재정을 각각 지원하는 일본, 독일과는 국가 경제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너무 큰 차이가 난다. 정부는 곧 4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예정이지만 지금 같은 식이라면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당연히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 불만의 화살을 계속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돌렸다. 자신들은 충분한 재정을 지원하고 싶은데, 홍 부총리와 기재부가 발목을 잡는다는 레퍼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홍남기 때리기’는 지난 1년간 유행처럼 잊을 만하면 계속 반복됐다. 당·정 간에 갈등이 생기면 이건 누가 어떻게 풀어야 할까.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수면 아래서 조율을 해야지 계속 잡음이 나오면 국민 불안감은 커지게 된다”며 “결국 정치력의 문제다. 특히 당·청의 소통과 협상의 기술이 세련되지 못함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당·정·청 협의에서 당·청이 증세처럼 구체적 대안을 갖고 재정 문제도 일정하게 해결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해야 한다”며 “‘돈은 기재부가 알아서 만들어 오라’고 하며 윽박지르기만 하는 것은 스스로 수권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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