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눈물짓던 홍남기, 어쩌다 ‘정말 나쁜 사람’이 됐나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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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재난지원금’ 공방에 “나쁜 사람” 맹공
누적된 與와의 갈등…사퇴 수순 밟을지 ‘촉각’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월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월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당이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홍 부총리를 향해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강하게 질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상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여당과 홍 부총리를 필두로 한 기재부의 '돈 씨름'은 더욱 격화하는 양상이다. 여당 대표의 작심 발언 속에 1년 내내 끊이지 않던 홍 부총리의 사퇴 가능성도 또 다시 고개를 들게 됐다. 

 

십자포화 홍남기, 급기야 '정말 나쁜 사람' 낙인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 14일 비공개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홍 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향해 "당신들은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쏘아붙였다. 이 대표는 "국민의 고통 앞에 겸손해야 한다"며 "지금 소상공인들이 저렇게 힘든데 재정 걱정을 하고 있다"고 두 사람을 향해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이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싸고 기재부가 재정 건전성 등을 이유로 선별지급 방식을 고수하자 당정이 정면충돌하던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이후 '선별지급 우선'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홍 부총리가 당을 상대로 힘겨운 '1승'을 올렸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동안 재난금을 비롯해 각종 정책을 두고 번번이 당의 기세에 밀리던 홍 부총리가 드디어 의지를 관철하게 됐다며 양측 갈등이 표면적으로는 잦아드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비공개 회의에서 이 대표가 홍 부총리를 향해 "정말 나쁜 사람"이라는 쎈 수위의 공세를 펼치면서 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이 됐다. 정치권에서는 당과의 갈등 속에 이미 공개적으로 사표 의사를 밝힌 경험이 있는 홍 부총리가 자의든 타의든 다음 개각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운데)와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이 9월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와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이 지난해 9월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누적된 여당과의 갈등…결국 '사퇴' 수순 밟나

'곳간지기'인 기재부 수장과 청와대, 여당 간 갈등은 역대 정부에서도 계속 있어왔다. 그러나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그로 인한 경제적 충격, 끝을 알 수 없는 국민들의 희생과 고통이 이어지면서 해법을 두고도 극심한 혼란이 이어졌다. 

홍 부총리 역시 계속되는 안팎의 '격정적 상황'을 마주하며 여러차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대표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저격 당하기 1년 전인 지난해 3월 초 홍 부총리는 코로나19 대응 추경 편성을 위한 자리에서 "추경 예산안을 최대한 빨리 국회에 제출해 초스피드로 진행하겠다"며 신속 집행을 거듭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홍 부총리는 코로나19 확진자들과 전염병 사태로 신음하는 국민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당시에도 기재부는 '소득 하위 70% 지급'을 주장했지만,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해찬 당시 대표는 '해임'을 거론하며 홍 부총리를 압박했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기재부와 민주당의 간극은 좁혀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1년 내내 추경과 재난지원금 지급을 놓고 갈등 상황이 반복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늘 민주당 앞에서 힘을 못쓰며 '홍두사미'라는 혹평을 받아야 했던 홍 부총리는 최근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지지지지(知止止止)·그침을 알아 그칠 곳에서 그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과 선별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여당의 압박에 맞섰다. 

지난 3일 여당과 전면전을 벌이던 홍 부총리는 또 한번 울먹이며 곤혹스런 입장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전날인 2일 이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선별·보편 지원 동시 협의론'을 꺼내들었는데, 홍 부총리가 4시간 만에 SNS를 통해 반박문을 냈고 이후 여당 의원들의 성토와 십자포화가 이어졌다. 직접적으로 '사퇴'를 거론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이후 홍 부총리는 여당의 이같은 공세에 대한 질문에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재정당국 입장을 절제된 표현으로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여당과의 누적된 갈등이 해결 실마리는 커녕 골이 더 깊어지면서 홍 부총리의 거취에도 조만간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홍 부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줄곧 '정체성'에 대한 견제구를 받으며 사퇴 갈림길에 선 상황이었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대주주 양도세 과세 확대가 보류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반려하면서 원점이 됐다. 홍 부총리는 당시 주식 대주주 기준을 기존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하향 조정하는 것을 추진하다가 두 달동안 여론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백기를 들었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도 의지를 관철하지 못했다. 금융투자 소득세 신설에도 진통이 따랐고, 지난해 7월 꺼내든 그린벨트 해제 검토 방안도 여당의 집중 견제를 받았다. 홍 부총리가 더는 버티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여당에서는 이미 '홍 부총리는 우리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청와대는 기재부와 민주당 간 파열음에 한 발 비켜선 입장이었지만, 문 대통령이 더 이상 개입을 미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는 4월 보궐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기재부와 여당의 대치가 심화하면 정권에도 타격이 클 수 있는 만큼 조치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11월3일 오전 국무회의 직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지만 반려됐다. 사진은 지난 6월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참석하는 문 대통령과 홍 부총리의 모습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해 11월3일 국무회의 직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지만 반려됐다. 사진은 지난 6월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참석하는 문 대통령과 홍 부총리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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