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된 與와의 갈등…사퇴 수순 밟을지 ‘촉각’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당이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홍 부총리를 향해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강하게 질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상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여당과 홍 부총리를 필두로 한 기재부의 '돈 씨름'은 더욱 격화하는 양상이다. 여당 대표의 작심 발언 속에 1년 내내 끊이지 않던 홍 부총리의 사퇴 가능성도 또 다시 고개를 들게 됐다.
십자포화 홍남기, 급기야 '정말 나쁜 사람' 낙인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 14일 비공개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홍 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향해 "당신들은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쏘아붙였다. 이 대표는 "국민의 고통 앞에 겸손해야 한다"며 "지금 소상공인들이 저렇게 힘든데 재정 걱정을 하고 있다"고 두 사람을 향해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이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싸고 기재부가 재정 건전성 등을 이유로 선별지급 방식을 고수하자 당정이 정면충돌하던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이후 '선별지급 우선'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홍 부총리가 당을 상대로 힘겨운 '1승'을 올렸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동안 재난금을 비롯해 각종 정책을 두고 번번이 당의 기세에 밀리던 홍 부총리가 드디어 의지를 관철하게 됐다며 양측 갈등이 표면적으로는 잦아드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비공개 회의에서 이 대표가 홍 부총리를 향해 "정말 나쁜 사람"이라는 쎈 수위의 공세를 펼치면서 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이 됐다. 정치권에서는 당과의 갈등 속에 이미 공개적으로 사표 의사를 밝힌 경험이 있는 홍 부총리가 자의든 타의든 다음 개각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누적된 여당과의 갈등…결국 '사퇴' 수순 밟나
'곳간지기'인 기재부 수장과 청와대, 여당 간 갈등은 역대 정부에서도 계속 있어왔다. 그러나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그로 인한 경제적 충격, 끝을 알 수 없는 국민들의 희생과 고통이 이어지면서 해법을 두고도 극심한 혼란이 이어졌다.
홍 부총리 역시 계속되는 안팎의 '격정적 상황'을 마주하며 여러차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대표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저격 당하기 1년 전인 지난해 3월 초 홍 부총리는 코로나19 대응 추경 편성을 위한 자리에서 "추경 예산안을 최대한 빨리 국회에 제출해 초스피드로 진행하겠다"며 신속 집행을 거듭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홍 부총리는 코로나19 확진자들과 전염병 사태로 신음하는 국민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당시에도 기재부는 '소득 하위 70% 지급'을 주장했지만,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해찬 당시 대표는 '해임'을 거론하며 홍 부총리를 압박했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기재부와 민주당의 간극은 좁혀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1년 내내 추경과 재난지원금 지급을 놓고 갈등 상황이 반복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늘 민주당 앞에서 힘을 못쓰며 '홍두사미'라는 혹평을 받아야 했던 홍 부총리는 최근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지지지지(知止止止)·그침을 알아 그칠 곳에서 그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과 선별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여당의 압박에 맞섰다.
지난 3일 여당과 전면전을 벌이던 홍 부총리는 또 한번 울먹이며 곤혹스런 입장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전날인 2일 이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선별·보편 지원 동시 협의론'을 꺼내들었는데, 홍 부총리가 4시간 만에 SNS를 통해 반박문을 냈고 이후 여당 의원들의 성토와 십자포화가 이어졌다. 직접적으로 '사퇴'를 거론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이후 홍 부총리는 여당의 이같은 공세에 대한 질문에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재정당국 입장을 절제된 표현으로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여당과의 누적된 갈등이 해결 실마리는 커녕 골이 더 깊어지면서 홍 부총리의 거취에도 조만간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홍 부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줄곧 '정체성'에 대한 견제구를 받으며 사퇴 갈림길에 선 상황이었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대주주 양도세 과세 확대가 보류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반려하면서 원점이 됐다. 홍 부총리는 당시 주식 대주주 기준을 기존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하향 조정하는 것을 추진하다가 두 달동안 여론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백기를 들었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도 의지를 관철하지 못했다. 금융투자 소득세 신설에도 진통이 따랐고, 지난해 7월 꺼내든 그린벨트 해제 검토 방안도 여당의 집중 견제를 받았다. 홍 부총리가 더는 버티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여당에서는 이미 '홍 부총리는 우리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청와대는 기재부와 민주당 간 파열음에 한 발 비켜선 입장이었지만, 문 대통령이 더 이상 개입을 미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는 4월 보궐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기재부와 여당의 대치가 심화하면 정권에도 타격이 클 수 있는 만큼 조치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