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부수 띄운 윤석열…왜 ‘여론전’ 카드 내밀었나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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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 걸겠다”며 ‘검수완박’ 추진 여권 작심 비판
‘국민·여론 지지’ 거듭 호소…파장 이어질 듯
윤석열 검찰총장이&nbsp;10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nbsp;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nbsp;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nbsp;언쟁을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br>
윤석열 검찰총장 ⓒ시사저널 박은숙

여권의 검찰개혁 압박 속에 침묵을 이어오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여론전'에 나섰다.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움직임에 '국민적 관심'을 호소하며 퇴임 전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여론전 포문을 열어 젖히며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윤 총장의 행보는 남은 임기 4개월 동안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지난해 유력 대선주자 지지율 1위에까지 올라섰다가 반등하지 못하고 있는 윤 총장의 향후 정치적 행보에도 상당 부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여론에 호소하며 "직 걸겠다" 배수진

윤 총장은 2일 공개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권의 검찰개혁 방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중대범죄수사청(가칭) 신설을 골자로 한 '검수완박' 입법 움직임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 총장은 "단순히 검찰 조직이 아니라 70여 년 형사사법 시스템을 파괴하는 졸속 입법"이라며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또 "지금 추진되는 입법은 검찰 해체다.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며,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여권을 향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추미애 전 장관과의 갈등과 징계 과정에서도 '자진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했던 윤 총장이 배수진을 치고 나오면서 수사청 설치 저지를 위한 검찰 조직의 집단 반발이 현실화 할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윤 총장이 여권의 검수완박 속도전에 공개적으로 강경 입장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공감하지만 방법적인 부분에서 이견을 드러낸 것과는 확연히 다른 수위다.

특히 윤 총장은 이전과는 다르게 '국민의 관심'과 '여론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판을 한층 키웠다.

윤 총장은 최근의 검찰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원칙대로 길을 계속 뚜벅뚜벅 걸었더니, 아예 포크레인을 끌어와 길을 파내 없애려 한다"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꾸준히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우리 사회가 퇴보하고 헌법 가치가 부정되는 위기 상황에 서 있다. 국민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전국의 검사들이 분노하며 걱정하고 있다"면서 "국민들께서 검찰 관련 이슈가 부각되는 것이 피로할 지경이다. 다만 국민들께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거듭 관심을 호소했다. 윤 총장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관계되는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어이없는 졸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도록, 학계 법조계 등 전문가들의 심도 깊은 논의, 올바른 여론의 형성만을 기다릴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 총장, 여권과의 정면 충돌 불가피할 듯

윤 총장을 필두로 한 검찰 조직과 문재인 정부 간 갈등이 여론의 중심에 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부터 추미애 전 장관, 현 박범계 장관으로 이어지는 동안 늘 이슈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윤 총장이 전·현직 법무부 장관과 파열음을 내고, 급기야 징계 국면으로까지 전개된 일련의 상황으로 문재인 정부와 여당 지지율이 크게 흔들리는 등 사실상 다른 이슈들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윤 총장 스스로 여론전 포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르다. 윤 총장은 임기 말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이 감지되고 있는 점, 야권의 입법 저지에 한계가 있는 점, 자신의 임기 역시 4개월 밖에 남지 않은 점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직접 여론전에 뛰어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검찰 이슈가 정국을 흔들때 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크게 흔들렸던 점도 작심 발언을 하는 데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이 "검찰이 밉고 검찰총장이 미워서 추진되는 일을 무슨 재주로 대응하겠나. 검찰이 필요하다면 국회에 가서 설명을 하기도 하지만 국회와 접촉면을 넓힌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라고 토로한 점도 이같은 점을 뒷받침한다. 

윤 총장 본인의 임기가 4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의 압박 수위는 연일 상승하는 반면, 야권에서는 보궐선거 등으로 검찰개혁 관련 이슈에 집중하기 어려운 현실적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의 '급발진'으로 여권과의 정면 충돌은 불가피해졌다. 동시에 차기 대선을 향한 윤 총장의 대권 행보가 가속화 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특히 3일 대구고검·지검을 격려 방문한 자리에서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메시지를 낼 경우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윤 총장의 발언을 지렛대 삼아 여권을 향한 공세를 퍼부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수사청 설립 등에 대해 "헌법상 삼권분립 파괴일 뿐 아니라 완전한 독재국가, 완전한 부패국가로 가는 앞잡이 기구"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수사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하니까 (중략) 검찰을 폐지하고 수사청을 만들어 자기들이 원하는 사람을 모아 수사의 칼날을 쥐여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준영 대변인도 '헌법 가치가 부정되는 위기 상황',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 100번이라도 걸겠다'는 등 윤 총장의 인터뷰 내용을 거론하면서 "정권과 검찰의 갈등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조짐"이라고 평가했다. 

윤 총장이 정치적 포석을 깔아 둔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하면서 향후 대선주자 지지율 흐름에도 변화가 감지될 지에도 촉각이 쏠린다. 지난 1일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 발표(지난달 22~26일 실시)에서, 윤 총장은 15.5%의 지지율로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공동 2위를 기록했다. 리얼미터 조사 기준, 지난해 추 전 장관과의 대립으로 수직상승하며 지지율이 25%까지 치솟으며 1위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할 때 큰 폭으로 뒷걸음질 친 수치다. 윤 총장은 올 들어 2개월 동안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정권과 대치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지지율이 상승했던 점에 비춰볼 때, 윤 총장의 이번 발언이 다시 한번 지지율 반등을 이뤄낼 촉매제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앞서 언급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1.9%다.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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