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리턴 유럽파들에겐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6 12:00
  • 호수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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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시절 성폭력 폭로 나온 기성용, 유소년 시절 합의서 위반한 백승호·박정빈, 그라운드 안 아닌 밖에서 싸우는 중

K리그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5월에야 개막했던 지난 시즌과 달리 2021 시즌은 예년과 같은 2월말에 출발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로 최대 30% 관중까지 입장한 K리그는 1라운드부터 명승부가 쏟아지며 화제를 모았다. 울산 현대 사령탑에 부임하며 5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홍명보 감독은 강원FC에 5대0 대승을 거뒀다. 김상식 감독 체제로 새롭게 출범한 ‘최강’ 전북 현대도 FC서울을 2대0으로 꺾으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K리그 최고 스타였던 이동국이 지난 시즌 은퇴했지만, 송민규(포항)·이동준·원두재(이상 울산) 등 젊은 스타들의 활약이 눈길을 모았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은 그라운드 밖으로 더 많이 향하고 있다. 자극적인 이슈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K리그 흥행의 촉매제로 기대했던 돌아온 유럽파들이 그라운드에서의 활약이 아닌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문제들로 주춤하고 있다. 2월27일 전주에서 열린 전북과 서울의  K리그1 공식 개막전이 끝난 뒤 기성용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프로축구연맹은 선수단과 취재진이 만나는 믹스트존 운영을 중단하고 있다. 통상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는 양 팀 감독과 승리팀 수훈 선수가 참석한다. 그런데 팀이 패한 데다 전반전 도중 몸 상태 이상으로 교체된 기성용이 기자회견을 하고 싶다며 스스로 나선 것이다.

2월27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전북 현대와 FC서울의 개막전. 선발 출전한 기성용이 전반에 교체된 뒤 벤치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2월27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전북 현대와 FC서울의 개막전. 선발 출전한 기성용이 전반에 교체된 뒤 벤치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기성용, 사실무근 주장하며 법정 공방 예고

기성용은 K리그 개막을 불과 사흘 앞둔 2월24일 초등학교 시절 축구부 내에서 벌어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최근 스포츠계와 연예계에서 이어지는 학교폭력 폭로의 연장선이었다. 법무법인 현의 박지훈 변호사는 국가대표 출신 축구선수이자 최근 수도권 모 구단에 입단한 유명 선수 A가 현재 모 대학 외래교수인 전직 선수 출신 B와 함께 지난 2000년 전남의 한 지역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후배 C와 D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하는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보도자료로 알린 것. 보도자료에는 당시 학교 소재지와 가해자의 출신지·나이 등을 통해 가해자를 유추할 수 있는 정황이 나열돼 있었고, 네티즌들은 기성용이 A선수임을 어렵지 않게 추리했다. 

하루 만에 기성용은 매니지먼트사 C2글로벌을 통해 사실무근이라며 반박했다. 자신의 SNS를 통해서도 “결코 그러한 일이 없었다. 축구 인생을 걸고 말씀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박 변호사가 2월26일 2차 보도자료를 통해 재반박에 나섰다. “이틀 전 밝힌 내용은 모두 사실이며, (피해자는) 충분하고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힌 그는 “기성용 선수 측의 비도덕 행태가 계속된다면 부득이 (증거를) 공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사건이 진실공방으로 치닫자 기성용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2월27일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기성용은 “나와 무관한 일이며, 절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면서 “(피해자를 자처하는 쪽의) 모든 주장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증거가 있으면 빨리 내놓기를 바란다. 왜 딴소리하며 여론몰이를 하는지 알 수 없다. 사건과 무관한 나는 이미 성폭행범으로 낙인찍혔다. 자비 없이 끝까지 간다”며 강경하게 맞섰다.

기자회견 이틀 후 폭로자 측을 대리하는 박 변호사는 다시 보도자료를 냈다. “소모적인 여론전을 멈추고 하루빨리 법정에서 진실을 가릴 것을 제안한다”는 내용이었다. 가해자로 낙인찍힌 기성용이 강경 대응을 거듭 밝히자 그 직후 “증거를 공개해 판을 키우겠다”며 호전적으로 나섰지만, 이틀 만에 폭로자의 인격권 보호를 위해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자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실체적 증거 자료도 법정 및 수사기관에 제시하겠다며 당초 입장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의혹 제기 후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폭로자들은 지난 2004년 벌어진 축구부 합숙소 내 성폭행과 학폭의 가해자임이 밝혀졌다. 거기다 기성용과 함께 초등학교 축구부 생활을 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기성용의 행위는 사실무근이며 오히려 폭로자들이 가해한 사실이 있다고 제보했다. 여론전에서 판이 뒤집어진 것이다. 현재로서는 폭로자 측이 관련자 증언, 사법기관 신고 내역, 상담기관 상담 내역 등 실체적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분위기를 뒤집을 유일한 방법인데, 이것을 소송 때에만 공개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폭로는 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민형사상 소송이 제기돼 법정에서 진실공방으로 갈 경우 기성용은 정신적·육체적 피로감을 부담해야 한다. 소송에 돌입해도 원고가 된 기성용 측이 피고의 행위에 대한 혐의 입증 책임을 갖게 된다. 연말에나 나올 1심 판결에서 기성용이 승소해도 폭로자 측에서 항소하며 장기전으로 갈 수 있다. 프로축구의 인기 스타이자 아내도 유명 연예인인 기성용은 대중에 계속 노출되며 진실이 가려지기 전까지 여론몰이와 주홍글씨를 감내해야 한다. 일각에선 이런 상황을 역이용해 폭로자와 변호사 측이 일종의 출구전략으로 증거 공개를 미루며 소송전을 제안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9년 10월7일 국가대표에 선발된 백승호 선수ⓒ뉴시스
2019년 10월7일 국가대표에 선발된 백승호 선수ⓒ뉴시스

백승호-박정빈 사례, 유스 시스템의 근간 흔든다는 지적

다른 유럽파들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2월28일 수원 삼성과 광주FC의 경기가 열린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경기 시작 전 관중석에 걸개가 내걸렸다. ‘은혜를 아는 개가 배은망덕한 사람보다 낫다’는 글귀는 최근 수원과 갈등의 골을 보인 백승호를 향한 것이었다. 

최근 소속팀인 독일 2부리그의 다름슈타트에서 출전 기회를 잃은 백승호는 전북 입단을 추진했다. 전북은 김상식 감독과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관심을 보였지만, 백승호가 지난 2010년 스페인의 명문 FC바르셀로나 유스팀 입단 당시 수원과 맺었던 합의서가 드러나며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수원은 스페인 유학 당시 백승호 측에 3년 동안 매년 1억원씩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귀국 후 수원 유스팀(매탄고) 입단을 약속하는 1차 합의서를 썼다. 하지만 백승호가 바르셀로나와 5년 장기계약을 맺으며 1차 합의서가 이행되지 않자 향후 국내로 돌아올 경우 수원 입단을 약속하는 2차 합의서를 쓴 것이다. 

수원은 백승호 측이 전북 이적을 추진하자 이 합의서를 공개했고, 전북은 협상을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백승호 측이 수원에 우선적으로 연락하거나 위약금 지불 의사를 밝히는 등 도의적 대처가 없었던 것이 알려지며 수원 팬들이 분노의 감정을 표출한 것이다. 백승호 측은 2월25일 수원 구단을 방문해 대화의 창구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계약위반으로 유학 지원금 반환과 손해배상 청구를 계획했던 수원은 “건설적 대화를 이어가겠다”며 조금은 누그러진 모습이다. 

또 다른 유럽파의 복귀도 논란거리다. 지난해 말 FC서울에 입단한 박정빈은 전남 드래곤즈 유스인 광양제철고 재학 시절 독일 무대로 떠났다. 볼프스부르크와 카를스루헤 등을 거쳐 덴마크·스위스 무대에서 뛴 그는 K리그로 돌아오며 서울 유니폼을 입었다. 문제는 박정빈이 이미 전남 유스 시절 무단으로 독일 클럽의 테스트를 받고 입단을 추진하며 법정 시비가 붙었다는 점이다. 전남이 승소했는데, 당시 선수가 독일로 떠나는 것을 허락하는 대신 향후 K리그 복귀 시 전남에 입단한다는 합의서를 남겼다. 박정빈의 서울행은 이 합의서를 무시한 처사였고, 전남에 미리 알리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북과 입단 협상 중이던 백승호와 달리 이미 타 팀 입단이 완료되며 전남으로선 위약금 1억5000만원을 박정빈 측에 요구한 상황이다.

백승호와 박정빈의 사례는 한국 축구와 K리그의 근간인 유스 시스템의 안착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풀고 가야 한다는 게 축구계의 공통된 생각이다. 합의서대로 이행하거나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을 받아야 향후 국내 유스 시스템에서 키운 선수들이 눈앞 이득을 위해 이기적 판단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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