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10대들이 군부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고 있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6 10:00
  • 호수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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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위 참여 중인 미얀마 시민 A씨가 전하는 참상 2탄
“다시 군부독재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지금은 국민이 참고 있지만, 우리가 반격하면 군부도 큰 피해 볼 것”

미얀마의 참상은 어디까지 가야 멈추게 될까. 시민들은 군부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총탄 앞에서도 참고 또 참으며 비폭력시위로 맞서고 있다. 하지만 3월3일 미얀마는 하루에만 38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유혈 사태를 또 빚었다.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2월28일 18명의 사망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심지어 어린아이 4명도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된 것만 이 정도일 뿐, 실종됐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은 훨씬 더 많다.

시사저널은 지난 2월말 미얀마 시위에 참여 중인 시민 A씨의 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했다. 군경의 엄혹한 감시 속에서도 A씨는 현지의 실상을 해외에 정확히 알리고자 위험을 감수하고 본지 인터뷰에 응했다. 2월16일과 23·24일 세 차례에 걸친 인터뷰에서 A씨는 “유례없는 유혈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유엔과 미국 등의 압박으로 군부의 진압이 다소 주춤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28일 미얀마는 피로 얼룩졌다.

시사저널은 3월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A씨의 목소리를 다시 전달받았다. 본지의 질문을 SNS로 보내면 그에 대한 답을 녹음해 다시 본지에 전하는 방식이었다. 현지의 인터넷 상황이 더욱 안 좋아져 음성 녹음파일을 가까스로 전달받을 수 있었다. 그나마 사진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A씨의 목소리는 아직 차분했지만, 전주에 비해 한결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AP 연합 EPA 연합
3월1일 양곤에서 벌어진 반(反)쿠데타 시위 도중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군경이 최루탄을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EPA 연합

3월2일

미얀마 군과 경찰의 시위 진압이 점차 강경해지고 있다. 외신 보도에 의하면, 지금 많은 미얀마 시민은 이번 시위가 지난 1988년 시위 상황과 비슷하게 전개될까 우려한다고 하는데, 1988년 시위의 교훈은 무엇인가.

“지난 1988년 때는 군부가 죄수들을 풀어 시위대가 먹는 물에 독극물을 타거나 폭력시위를 유도해서, 해외에다 이런 폭력 시위 때문에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진압한다는 식으로 변명해 왔다. 현재도 그런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죄수들을 풀어 마을에 불을 지르라 시키고, 군부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위를 만들어 일반 시민들과 충돌하게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리 인터넷이 있다. SNS를 통해 국민들이 정보 공유하면서 (군부의) 폭력시위 유도에 말려들지 않고 아직은 참고 있다. 만약 우리가 폭력시위를 하게 되면 군부나 경찰서도 만만찮은 피해를 당할 수 있다.”

당신이 지난주 얘기한 대로 결국 지난 일요일(2월28일) 최악의 유혈 사태가 빚어졌다. 앞으로 이보다 더한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보나.

“이제는 국민들이 다시 군사독재 밑에선 살 수 없다.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다. 죽더라도 끝까지, 민간정부가 다시 나올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게 국민 대다수의 생각이다. 아마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서, 또 유엔이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르지만 이제 국민들은 군부나 경찰에 대한 신뢰가 아예 없다. 국민들은 물러설 의향이 전혀 없다. 아마 군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이런 (무차별 사격) 행동을 하고 있는 거다.”

미국·유럽·유엔 등 전 세계에서 미얀마 군부를 향해 압박을 가하고 있고,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도 왜 군부는 더 강경한 진압을 하는 건가. 세계 비판 여론과 제재도 군부에게는 안 먹히는 건가.

“군부는 해외 여론이나 비판은 크게 신경 안 쓴다. 창피한 마음이 없으니까. 아무 무기도 없는 시민한테 총 쏘는 걸 봐라. 나도 한국에 있을 때 한국 집회 현장도 가봤다. 한국에선 폭력시위 때 진압하는 건 있지만, 평화시위 때 진압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여기는 길거리 동물처럼 시민들을 마구 대하고, 이들이 진짜 미친 사람이 아니면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사복을 입은 군과 경찰이 점점 더 늘어난다고 하는데, 시민들은 어디를 가도 총격의 공포에 시달릴 듯하다.

“군부도 경찰복과 사복 입고 시민들을 때리고 하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해군·공군도 데리고 왔다고 들었다. 국민들은 지금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암흑시대가 오기 때문에 용감하게 맞서고 있다. 특히 10대들의 용기가 많은 국민들로부터 큰 칭찬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그들은 인터넷 게임만 하고, 나라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태로 군부와 용감히 맞서서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놀라운 10대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큰 용기를 얻고 있다.”

주변 아세안 국가들이 미얀마 군부와 대화에 나서며 중재에 나서는 듯한데, 거기에 기대할 수 있을까.

“아세안 국가는 기대할 만한 게 없다. 그들 대부분은 중국 눈치를 보기 때문에 신뢰가 안 간다. 어제 인도네시아가 (미얀마의) 내부 사정이다 해서 간섭 않겠다고 발표했다고 들었다. 1950~60년대만 해도 미얀마가 아세안에선 제법 잘사는 나라였다. 지금은 미얀마가 잘 안되면, 오히려 그들이 우리나라 자원을 싼값에 얻을 수 있다. 솔직히 미얀마가 잘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 같다는 걸 우리 미얀마인들도 다 안다. 중국이나 태국이나 인도네시아나 주변에선 아주 싼값에 우리 자원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걸 누리는 거고, 중국도 그걸 뺏기기 싫은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얀마 시민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가 2월28일 현재까지 시위 진압으로 인해 미얀마 국민 30명이 사망하고 1132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는데, 그게 실제 정확하다고 보는가. 아니면 더 있다고 보는가.

“요즘은 보도가 어느 정도 해외에서나 내부에서 SNS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1988년 시위 때와 비하면 빨리 전달되는 편이다. 하지만 시위가 양곤 등 대도시뿐 아니라 소도시에서도 다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숫자 오차는 있을 수 있다. 좀 더 늘어날 수는 있다고 본다.”

미얀마 군부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에 대해 선동 혐의 등을 추가했다고 한다. 수치 고문에 대한 미얀마 국민들의 지지세는 어떠한가. 수치의 존재와 역할이 앞으로 시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수치 여사의 지지도는 예전보다 더 높아졌다. 신뢰가 가는 정치인이 지금 수치 외엔 없고, 해외에서도 파워가 있는 사람이 수치뿐이라 집회에서도 계속 수치 석방하라 요구하고 있다.”

수치 여사는 현재 어떤 상태에 있나. 시민들 사이에 수치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나.

“며칠 전 법정에 불렀다고 했는데…군부는 나오는 대로 법을 막 만들어서 수치에게 죄를 하고 싶은 대로 다 덮어씌운다. 이건 뭐가 불법이고 이런 식으로, 계속 떠든다. 건강하게 있다고는 주변 지인 통해서 말하는데 아직 정확한 상황은 잘 모르고 있다. 미얀마는 수치뿐만 아니라 계속 잡혀가는 사람들의 행방을 모르는 상황이 많다. 지금 미얀마 전체에서 인권이란 단어조차 없는 상황이다.”

ⓒAP 연합 EPA 연합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3월3일(현지시간) 시민들이 군부 쿠데타에 항거하는 시위 도중 진압경찰이 최루가스를 살포하자 몸을 피하고 있다.ⓒAP 연합

3월3일

현재 미얀마는 외국인들의 입국을 모두 막았다고 하는데, 공항이 폐쇄된 건가. 미얀마 내에서의 이동은 자유롭나.

“코로나 때문에 일단 해외에서 들어오는 건 막았던 건데, 그 사이에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공무원도 시위에 참여하니까 불안정한 상황 때문에 공항 운영이 제대로 안되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통행금지했었고, 쿠데타로 계속 통행금지는 하고 있다. 지역 간 이동은 버스로 다니는 건 어느 정도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이동을 아예 막는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이동이 자유롭다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어느 정도 이동은 할 수 있다.”

인터넷 상황은 어떤가. 아직도 불안정하거나 군부에서 차단하고 있나.

“인터넷은 아직까지 안 좋다. 2월28일 이후부터 안 좋고, 인터넷 통화는 어렵고, 영상통화는 더 어렵다. 군부가 아마 통제하는 것 같다. 인터넷은 속도가 너무 느려 볼 수가 없을 정도다. 시위 사진을 PDF 파일로 한국에 보내주는 것도, (사진을) 열 수조차 없어 지금 못 하고 있다. 군부가 새벽 1시부터 아침 9시 사이엔 인터넷을 못 쓰게 한다. 인터넷이 안 되는 게 우리 활동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3월3일 현재 보도에서도 시민 6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나왔다. 시민들의 희생이 계속 늘어나는데, 시민들이 언제까지 참을 수 있다고 보는가.

“어제 많은 지역에서 총격 사건이 있었다. 지방은 전기를 아예 차단해서 인터넷도 잘 사용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군부의 총격에 반격해서 내전이 일어나면 해외 지원이 어려울 수 있다 해서 일단은 국민들이 참고 있다. 하지만 만약 우리들 누군가가 반격하자 하는 순간 아주 큰 유혈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1988년 때는 군경이 지역에서 군복과 경찰복을 못 입었을 정도로 국민들의 반격이 컸다. 지금은 그때보다 (시위에) 더 많이 참여하는데도 군경은 군복과 경찰복을 입고 있다. 평화시위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국민들의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와 있어서, 참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국민이 반격하면 군부와 군부 가족들이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어제 보내준 답변에서 시민들이 이제는 다시 군부독재로 돌아갈 수 없어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고 했는데, 과거 군부독재 때와 수치 여사의 민간정부 때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

“해외에서 보는 미얀마 민주화가 사실 100% 민주화가 아니었다. 군부는 2008년 헌법을 만들면서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을 임명 못 하게 해 놨다. 군부는 자기들끼리 다 했다. 경찰청장, 국경안보부 장관, 법무부 장관은 군부가 임명할 수 있다. 군부는 국회에서 25% 의석도 자동으로 가진다. 정말 수치 여사가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그래도 (정치를) 잘해서 여러 역할을 많이 했다. 30년 군부독재에서 끽소리 못 하고 살아왔지만 민주화 맛을 알게 돼서 많은 사람의 요구가 엄청 쏟아졌지만, 수치 여사가 머리가 좋아서 그걸 그래도 잘 컨트롤한 거다. 군부는 나라 세금을 자기 재산처럼 쓴다. 군부와 수치 정부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국민들은 아예 이번 참에 2008년 헌법을 바꿔서 군부가 더 이상 이렇게 못 하게 새로운 헌법이 들어와야 한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이번이 새 헌법을 만들 기회라고도 볼 수 있다.”

외신을 보면 미얀마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평화시위를 한다고 한다. 혹시 한국의 촛불시위 영향을 받은 건가. 또 예전 수치 여사의 민주화 시위 때 한국의 민중가요(《임을 위한 행진곡》 등)가 미얀마어로 개사되어 불렸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그런 게 있나.

“미얀마 촛불시위는 한국의 대통령도 바꾼 (촛불시위의)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또 최근 경찰과 군인들이 총을 쏴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도회 등으로 촛불시위를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우리 고향에서도 노래패에 내가 전달했다. 이런 한국의 노래가 있다고. 앞으로 (시위 현장에서) 노래도 부르려고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지금 우리 상황과 너무 맞다. 사람들이 마음속에 새길 수 있는 가사여서 우리 고향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하고, 다른 여러 지역과 연계해서 전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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