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역사 품은 건물 어떻게 보존해야 할까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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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원에서 대전차방호시설로…도봉의 평화문화진지
역사 가치와 현재 가치 공존하는 공간 재생 이뤄야

서울 도봉구에는 1970년에 만든 대전차방호시설이 있었다. 대전차(anti-tank), 즉 탱크의 공격에 대비하는 군사시설이다. 이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침략로였다고 한다.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에 자리 잡은 형세로부터 도봉구 일대가 서울 도심으로 향하는 길목 중 하나임을 알아챌 수 있다. 길목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남과 북이 물리적으로 대치하던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방어기지가 가장 어울리는 쓰임새였을 것이다.

이 지역의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로 가면, 여행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인 ‘다락원’이 등장한다. 길목의 또 다른 역사다. 지금은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 상상으로만 짐작해볼 뿐이다. 근처에 있는 다락원 체육공원의 이름에서나마 겨우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

대전차방호시설은 군부대의 관사로 사용되던 아파트 건물을 포함하고 있었다 한다. 유사시에는 폭파시켜 적군의 침투를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이후에는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일반 시민들에게 분양되기도 했다. 다락원에서 북한의 남침로로, 대전차방호시설로, 다시 시민아파트로 변화한 이 공간의 현재 모습은 ‘평화문화진지’란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있다.

서울 도봉구의 옛 대전차방호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킨 ‘평화문화진지’ ⓒ김지나
서울 도봉구의 옛 대전차방호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킨 ‘평화문화진지’ ⓒ김지나

평화 옷 입은 옛 군사시설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의 기억을 지우고 생겨난 건물들이 많았다. 이제는 그러한 근대시설을 ‘문화유산’으로 인정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문화시설로 전환하는 시도들도 낯설지 않다. 특히 군사시설을 새로운 용도로 재활용한 사례는 서울 안에서만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군부독재의 산물인 국군 기무사령부 건물이었고, 최근 시민에게 개방되기 시작한 용산 미군기지는 공원으로 다시 태어날 준비 중이다.

군사시설을 문화시설로 바꾸는 이슈는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근현대사와 맞물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곤 한다. 군사시설의 ‘문화적’인 리모델링은 슬픈 과거를 지우고 희망찬 새 출발을 기원하는 메타포가 됐다. 도봉구의 평화문화진지에도 베를린 장벽과 탱크 따위를 전시해두고 ‘평화의 전초’가 되길 기원한다는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그런 한편, 이러한 공간 재생은 그 터가 겪어온 지난 모든 역사들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평화문화진지가 만들어지며 전설 같았던 다락원에 대한 이야기도 전시관 한 켠에 함께 소개되기 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자리는 조선시대 규장각, 종친부, 사간원 등 왕실 기관들이 있던 장소였는데, 미술관 연혁에서 아주 간략하게나마 언급되고 있다. 한 세기가 넘도록 외국 군대에 점유됐었던 용산기지의 시간은 용산공원의 ‘역사자원’으로 재해석된다. ‘군사시설’이란 사실 자체보다는 그런 시설이 들어서게 됐던 땅의 맥락들이 드러나며, 우리가 사는 도시를 한층 깊게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한편, 군사시설은 아니지만 과거 청산이란 비슷한 맥락을 가지면서 정반대의 결말을 맞은 공간도 있었다. 경복궁을 가로 막고 서 있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당시에도 물론 총독부 건물을 사료로 간주하고 ‘새로운 미래’의 단초로 보자는 시각이 있었지만, 철거에 찬성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조선의 정궁을 가린 채 민족의 정기를 끊어 놓은 조선총독부 건물은 없어져야 할 잔재였다.

평화문화진지는 공간재생사업을 통해 군사시설을 ‘평화의 상징’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지나
평화문화진지는 공간재생사업을 통해 군사시설을 ‘평화의 상징’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지나

철거돼야 할 건물, 남겨야 할 건물

어떤 건물은 철거돼야 마땅하고, 어떤 건물은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지 정답이 있을까. 그것은 시대의 가치관과 감성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당연한 것 같은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도 50년이란 시간이 걸렸듯이 말이다. 그보다는 그 장소의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그것은 물리적인 공간을 보존한다고 되는 것도, 없앤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재생 공간들이 앞으로 실현될 것으로 기대되는 어떤 ‘미래적 가치’에만 몰두하고 있는 인상을 준다. 옛 건물을 활용했으니 역사성은 당연히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평화문화진지에서는 다락원 시절의 풍경도 그려볼 수 있어야 하고, 시민아파트 시절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지나간 역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조사와 기록이 바탕이 됨으로써 가능한 일일 것이다. 비단 평화문화진지 뿐이 아니다. 조선총독부가 사라진 광화문 광장에서도, 어떤 건물을 남길지 설왕설래하는 용산 미군기지에서도 이 ‘기본’은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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