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 던진 윤석열 "국민과 함께 광야에서 뛰겠다"
  • 조해수·유지만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5 10:00
  • 호수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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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의 최종 목표는 차기 대통령 당선
TK·중도 표심 의식한 주도면밀한 정치 스케줄

윤석열의 주사위가 던져졌다. 루비콘강을 건넜다. 회군은 없다. ‘검찰총장’ 윤석열은 사라지고 ‘정치인’ 윤석열이 탄생했다. 그의 검찰총장 사퇴의 변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권의 조국 초대 민정수석은 현행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내려 했다. 정치인 윤석열의 첫마디가 자유를 지키겠다는 선언이었으니 이 정권과 대비가 선연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겐 검찰주의자라는 꼬리표가 있다. 이 때문인지 윤 전 총장은 사퇴의 변에서 검찰 대신 국민이라는 언어를 선택했다. 그는 자유와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인상을 추구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월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총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월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총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자유'와 '국민' 사랑하는 정치인像 추구 

윤 전 총장의 3월4일 사퇴 발언을 되돌아보자.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 즉,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검찰총장직을 내던진다는 것이다. 

사퇴하기 전날인 3월3일 윤 전 총장은 대구지검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중수청 신설에 따른) ‘검수완박(검찰 수사의 완전한 박탈)’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치게 하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문 대통령의 호칭을 벗어던졌다. 윤 전 총장은 “'윤석열 찍어내기'로 변질된 검찰 개혁이 이제 '검찰 폐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윤 전 총장의 사퇴로 내년 3월9일 치러지는 대선 판도는 벌써부터 출렁거리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최종 목표가 ‘차기 대통령 당선’이라는 것은 검찰 안팎에서 두루 확인되는 사실이다. 윤 전 총장은 이미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부터 야권·보수진영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검찰 장악’으로 인한 ‘순교자’ 이미지가 더해질 경우, 보수진영을 넘어 중도의 표심까지 끌어모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결별 분명히 해

윤 전 총장 사퇴의 여파는 신현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날아들었다. 문 대통령은 윤 전 총장의 사의를 수용한 직후 신 전 수석의 사표도 함께 수리했다. 신 전 수석은 검찰과의 소통 내지는 관계 개선을 위해 문 대통령이 영입한 ‘검찰 출신’ 첫 민정수석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의 인사 갈등으로 “대통령에게 거취를 일임하겠다”고 밝혔던 신 전 수석은 '카운터파트'였던 윤 전 총장이 사퇴하면서 같은 운명을 나누게 됐다. 

윤 전 총장과 신 전 수석의 사퇴는 문재인 정부 말기에 친정부 검찰 수뇌부의 등장을 예고한다. 벌써부터 검찰 내부에서는 윤 전 총장과 동기 기수인 23기들이 전원 자진 사퇴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23기 중엔 윤석열 총장 초기에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냈던 배성범 법무연수원장, 대검 차장을 지낸 구본선 광주고검장 등이 있다. 심지어 24기 이하 검사장급 후배 기수에서도 줄사표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전 총장 사퇴 이후 후폭풍이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으로 형사사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직에 오를 경우 이에 반발하는 평검사의 줄사표, 이른바 ‘검란’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윤 전 총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당일, 윤 전 총장과 오랜 세월 교류해 온 A씨를 접촉했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윤석열의 전격 사퇴를 그 전날부터 알고 있었다. A씨는 “윤석열 총장이 ‘더 이상 검찰에 있으면서 할 일이 없다’고 했다. 자신이 검찰 조직과 함께 있으면 서로 부담이 되는 상황이 됐다는 말이다. 윤 전 총장이 ‘이제 국민과 함께 광야에서 뛰겠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윤 총장은 주도면밀한 사람이다. 감정적으로 (사퇴를) 결정한 것이 아니다. 사퇴 시기를 비롯해 마지막 인터뷰를 할 언론매체(국민일보), 마지막으로 방문할 장소(대구) 등을 모두 고려하지 않았나 싶다. 오래전부터 여러 상황을 준비해 왔을 것이다”면서 “국민일보는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도 아니고 ‘한겨레(신문)·경향(신문)’이라는 진보지도 아니다. 인터뷰가 정치적으로 오해될 소지를 차단하고자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전 총장이 실제로 사퇴 이후를 미리 준비해 온 정황도 포착됐다. 윤 전 총장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강진구 전 서울고검 사무국장이 꼽힌다. 윤 전 총장은 2013년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사건 수사를 하다가 이른바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대구고검으로 좌천됐다. 이때 대구고검 총무과장으로 있던 강 전 국장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윤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하자 강 전 국장도 중앙지검 사무국장으로 함께 영전했다.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에 올랐을 때도 강 전 국장을 대검 사무국장에 추천했다. 그러나 당시 ‘조국 사태’로 법무부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강 전 국장은 서울고검 사무국장에 만족해야 했다. 검찰 관계자 B씨는 “윤 전 총장과 강 전 국장은 말 그대로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사이”라면서 “강 전 국장은 지난해 말 정년퇴임했다. 로펌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했을 텐데, 어디에도 가지 않고 야인 생활을 하고 있어서 의아했다”고 말했다.

강 전 국장은 그동안 윤 전 총장의 퇴임 후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 B씨는 “강 전 국장이 사무실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 사무실은 윤 전 총장의 퇴임 후 준비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검찰 관계자 C씨는 “강 전 국장이 후배들을 스카우팅하면서 (윤 전 총장의) 정계 진출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강 전 국장은 이와 관련한 시사저널의 인터뷰 요청에 “다음에 얘기하자”며 즉답을 피했다.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3월9일 시한 ‘윤석열 출마 방지법’ 피하려 한 듯

윤 전 총장의 사퇴 발표 시점이 대선 출마 의지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2월10일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검사가 퇴직 후 90일이 지나면 공직 후보자로 출마할 수 있었던 것을 1년으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른바 ‘윤석열 출마 방지법’이다. 이 법안대로라면 21대 대선이 내년 3월9일이기 때문에 공직자는 올해 3월9일 이전에 사퇴해야 한다. 물론 이 법안은 아직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법안은 퇴직 중인 검사에게도 소급 적용하도록 했다. 따라서 이 법안이 내년 대선 전에 통과된다면 윤 전 총장도 적용 대상이 된다. 검찰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사표를 내더라도 문 대통령이 바로 수리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갖고자 (3월9일 이전인) 오늘(3월4일) 사의를 표명한 것 아니겠느냐”면서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윤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윤 전 총장이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야당 성향 및 보수세가 강한 대구를 방문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윤 전 총장은 “(대구는) 27년 전 늦깎이 검사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초임지다. 몇 년 전 어려웠던 시기에 1년간 저를 따듯하게 품어줬던 곳인데, 5년 만에 오니 감회가 특별하고 ‘고향’에 온 것 같다”며 대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충청도 출신인 자신의 지역성을 고려할 때, 대구·경북(TK) 지역과 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현 정권의 지역 기반이 호남+부산·경남(PK)인 점과 대비된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윤 전 총장에 대한 지지율을 지역으로 따져봤을 때 TK 지역이 가장 높다. TK는 반정부 정서 자체가 워낙 강하다. 보수진영 대선후보는 TK에 반드시 기반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으로 치면 호남만큼이나 중요한 곳이다. 대구 방문 때 권영진 대구시장과 조우한 것 등으로 봤을 때, 윤 전 총장이 TK 정서의 뇌관을 건드렸다고 봐야 한다”면서 “윤 전 총장의 중도층과 보수층에 대한 영향력은 무시하기 어렵다. 4·7 보궐선거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성윤 차기 검찰총장’ 예고에 검란 일어날지 촉각

윤 전 총장이 “중수청 반대”를 외치며 사퇴했지만, 검찰 개혁 강경파들의 득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신현수 전 민정수석의 사퇴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검찰 관계자는 “신 전 수석은 검찰을 알고, 검찰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검찰 출신 인물”이라면서 “후임 민정수석으로 온 김진국 감사위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 출신으로 전형적인 친문재인 사람이다. 김진국 신임 민정수석이 민주당 강경파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수청-공소청 신설, 검찰청 해체 법안을 올린 더불어민주당 김용민·김남국·황운하 의원과 최강욱 대표 등은 대표적인 대(對)검찰 강경파들이다. 여기에 서울시장 출마를 이유로 의원직을 내려놓은 김진애 전 의원을 대신해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국회에 입성했다. 강경파들은 윤 전 총장이 물러난 지금이 ‘그들의’ 검찰 개혁을 추진할 적기로 보고 있다. 최 대표는 윤 전 총장 사퇴 직후 “정치행위를 일삼던 공무원의 사직, 유체이탈로 일관한 정치검사의 퇴장, 무모한 야심의 정치인 출현”이라면서 “설마 제가 발의했지만 아직 통과되지도 않은 ‘판검사 출마제한법’ 때문에 오늘을 택한 건 아니겠지요?”라고 비꼬기도 했다.

차기 검찰총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이 지검장은 검찰 내 대표적인 친정권 검사다. 검찰 관계자는 “조남관 대검 차장은 지난해 윤 전 총장 징계 국면에서 윤 전 총장의 편에 섰다. 검찰총장은 물 건너간 셈”이라면서 “문재인 정부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이성윤 지검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수사에서 이 지검장이 피의자로 전환된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만약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이 사건을 1호 수사로 삼는다면, 문재인 정부도 차마 이 지검장을 차기 검찰총장에 앉힐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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