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허위 신청도 프리패스, ‘85만 가맹점’ 제로페이의 실체
  • 오종탁·조유빈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04.30 10:00
  • 호수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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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자료 분석 결과 52%가 결제 0건 빈껍데기
가입 없이 가짜 정보로 신청해도 ‘실시간 승인’

제로페이 가맹점 85만여 개 중 절반 이상이 결제 실적 ‘제로(0)’의 빈껍데기인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가맹점 신청 절차가 허위 정보를 입력해도 통과될 만큼 엉터리인 사실도 처음으로 드러났다. 각계의 비판을 무릅쓰고 소상공인 간편결제 시스템 제로페이를 출범시킨 정부와 서울시는 그간 막대한 세금을 들여 가맹점 늘리기에 사활을 걸어왔다. 법적·절차적 정당성은 무시한 채 오로지 제로페이 띄우기 내지 지키기에만 급급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시사저널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실의 협조를 얻어 단독 입수한 제로페이 유관기관(한국간편결제진흥원, 금융결제원) 내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제로페이 전국 가맹점 85만3609개 가운데 결제가 한 번이라도 발생한 곳은 40만8101곳(47.8%)에 불과했다. 나머지 44만5508곳(52.2%)은 이름만 걸어놓은 빈껍데기 제로페이 가맹점이란 말이다. 

실(實)결제를 기록했다고 다 정상적인 가맹점인 것도 아니었다. 우선 결제가 딱 한 번 일어난 가맹점이 6만6017곳에 이르렀다. ‘시범 결제’만 한 뒤 제로페이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은 곳들로 추정된다. 총 결제액이 5000원 이상인 곳은 35만3417개밖에 되지 않았다. 이 밖에 결제액이 단 ‘1원’ 혹은 ‘100원’인 가맹점도 수두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관악구 한 자영업점에 제로페이 가맹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관악구 한 자영업점에 제로페이 가맹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시사저널 박정훈

결제 실적 ‘제로’인 가맹점 44만 곳 넘어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 등 지자체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제로페이 가맹점은 2019년 10월 30여만 개에서 2020년 10월 65여만 개로, 2021년 4월 90만 개에 육박하며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제로페이를 운영하는 재단법인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은 가맹점 수 증가세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신청을 독려해 왔다. 정작 실결제가 일어난 가맹점 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데, 세 불리기에만 급급한 형국이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의 결제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혈세가 투입되는 지원사업이니만큼 자격 요건에 맞는 가맹점을 선정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러나 가맹점 수 증가 드라이브에서 자격 검증 절차는 깡그리 무시됐다. 가맹점 수를 늘리려고 도입한 ‘실시간 승인’ 방식 때문이다. 그간 실시간 승인 방식으로 승인된 가맹점 수는 11만7667곳에 달한다. 

관련 제보를 받고 직접 제로페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회원가입과 로그인을 한 후 가맹점 신청란에서 ‘개인사업자’를 선택해 절차를 시작했다. 10자리 사업자등록번호는 임의로 입력했다. 처음에 ‘사업자등록번호가 유효하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떠서 마지막 자리 숫자만 바꿔봤더니 그대로 통과됐다. 

이어 서비스 이용과 가맹점 약관, 신용정보 취급 항목 등에 동의하고 상호, 사업장 소재지 주소, 업태, 업종코드, 상시근로자 수, 직전 사업연도 매출액 등 정보를 제멋대로 작성했다. 증빙서류로 첨부하라고 돼 있는 사업자등록증은 인터넷에 떠도는 샘플을 다운받아 올렸다. 그래도 가맹점 신청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실제로는 어떤 자격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지만, 순식간에 제로페이 가맹사업자가 된 것이다. 안내에 따라 제로페이 가맹점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자 사업자용 QR코드를 바로 이용할 수 있었다. 제로페이를 사용하는 지인이 해당 QR코드를 스캔해 1000원을 결제하니 정상적으로 승인됐다. 곧바로 가맹점 앱에선 매출로 잡히고 거래번호가 떴다. 그리고 이틀 뒤 가맹점 신청 당시 등록한 계좌로 돈이 들어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회원가입 없이도 가맹점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회원가입을 하지 않으면 본인 인증도 거치지 않는다. 역시 사업자등록번호와 대표자 이름, 상호를 허위로 입력하고, 아무 내용도 기재되지 않은 사업자등록증 샘플을 첨부했더니 가맹점 가입이 바로 승인됐다. 

본인 인증은 중복 가입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다. 본인 인증 절차가 없으면 중복 가입 혹은 임의의 사업자번호를 이용한 허위 가맹점 신청도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자동화 프로그램을 이용해 가맹점 신청을 대량으로 하거나 명의를 도용해 신청할 수 있다. 타인의 가맹점 정보를 조회하는 등 불법행위로 이어질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본인 인증 없는 가맹점 신청 과정은 개인정보가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제로페이는 가맹점 신청 과정에서 서비스 이용 동의, 가맹점 약관 동의,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한 사항 등에 필수 동의를 요구한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 수집 이용 등의 동의를 받는 경우에는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제로페이는 개인정보 수집 이용 약관에 동의한 후 타인의 이름이나 사업자등록번호로 신청을 하더라도 승인이 되는 구조다. 타인이 나의 개인정보를 사용했는지, 내 이름으로 정보 제공에 동의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한 사업자는 개인정보법에 따라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아울러 상시근로자 수와 직전 사업연도 매출액은 지원 범위, 즉 세금 투입량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정보다. 소상공인으로서 제로페이 가맹점사업자가 되려면 사업장 내 상시근로자 수가 광업·제조업·건설업·운수업의 경우 10명 미만, 그 외 업종은 5명 미만이어야 한다. 같은 소상공인이라도 연매출액에 따라 가맹점 수수료율이 달라진다. 연매출액 8억원 이하면 0%, 8억원 초과~12억원 이하면 0.3%, 12억원 초과면 0.5%다. 

한국간편결제진흥원 “검증 의무 없다” 

신청 과정에서 상시근로자 수, 직전 사업연도 매출액 등을 검증할 장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근로자는 4명, 연매출액은 8억원 이하라고 기입하니 곧바로 소상공인 가맹사업자로 인정받았다. 소상공인이 아니거나 매출액 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사업자가 검증 과정의 허점을 악용해 혜택을 가져갈 소지도 있다. 전체 제로페이 가맹사업자 중 매출액 8억원 이하 소상공인은 87.8%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측은 밝혔다. 

한편 제로페이 가맹점 약관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가맹점 등록을 한 경우 가맹점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애초에 회원가입이나 제대로 된 자료조차 요구하지 않는 실시간 승인에서 부정 등록이 걸러지고 있을 리 만무하다. 관련 질의에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측은 “가맹점 신청 시 기재 내역은 작성 내용 및 서류를 기준으로 검증한다”고 밝혔지만, 그동안 계좌번호와 예금주명 일치 여부 외에 이렇다 할 기재 내역 검증이 이뤄진 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은 ‘국세청 등 외부 기관을 통한 가맹점 신청 내역 검증 의무가 있는지’에 대해선 “검증 의무는 없고, 휴·폐업 상태 조회는 발생 사유가 있는 경우 검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아 익명을 요구한 전자결제 업계 관계자는 “요즘 소상공인 상당수가 회원가입·로그인을 하지 않고 제로페이 가맹점으로 신청해 실시간 승인을 받는 것 같다”면서 “가입자를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리스크가 큰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왜 국세청·근로복지공단 등 검증 기관과의 협업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시스템을 운영하는지 모르겠다”며 “법적으로 문제 될 소지가 다분하고 금융 사기에 악용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위태롭던 제로페이, 상품권 유통으로 지탱 

비효율성 논란에 더해 시스템 미비 문제까지 터져 나오는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제로페이 가맹점 증대 러시는 현재진행형이다. 윤완수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이사장은 4월27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올해 가맹점 120만 개, 누적 결제액 3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제로페이는 정부가 소상공인을 위해 정책 차원에서 만든 인프라 서비스로, 이를 믿고 지금이라도 가입하면 향후 사업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제로페이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무리한 방법까지 동원해 가맹자 수 늘리기에 집중하는 걸까. 이를 분석하기 위해선 제로페이의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제로페이는 2018년 12월 출범 후 한동안 암울한 시기를 겪었다. 기존 결제 수단인 신용카드와 비교해 별다른 경쟁력이 없는 세제 혜택, 이용 불편 등으로 소상공인과 소비자 모두에게 외면받았다. 금융권은 금융권대로 수입이 줄어 속앓이했다. 정부의 불필요하고 과도한 시장 개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며 ‘관(官)치페이’란 별칭까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흔들리던 제로페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사회생했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과 모바일 지역사랑상품권의 유통 수단으로 활용되면서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자료를 보면 2019년 767억원 수준이었던 제로페이 결제액은 2020년 1조787억원으로 폭증했다. 올해에도 1~4월(4월20일까지) 기준 5551억원으로 연도별 결제액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양적 성장은 상품권 결제 증가에 힘입은 착시 효과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기준 제로페이의 원래 기능인 직불결제액은 1787억원으로 2019년(648억원)에 비해 2.7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코로나19 확산 속 지난해 지자체별로 할인 판매한 상품권 결제액은 9000억원으로 7.6배 급증했다. 전체 결제액(1조78억원)의 83.4%를 차지한다. 

올 1~4월 제로페이의 비(非)상품권 결제액(470억원)도 상품권 결제액(5080억원)의 9.2%에 불과했다. 제로페이의 비효율성 논란이 여전하고 상품권 편중에 대한 부담도 커지는 가운데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은 가맹점 수 확대에 더욱 혈안이 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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