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일방적 이스라엘 지지에 멀어지는 ‘중동 평화’
  •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2 07:00
  • 호수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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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어 바이든도 이스라엘에 힘 실어
팔레스타인 강경단체 하마스 자극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기고]

수백 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하는 등 5월10일부터 다시 불붙기 시작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중동이 화염에 휩싸였다. 다행히 양측이 20일(현지시간) 휴전에 돌입하기로 합의함으로써 11일간 이어졌던 전쟁은 일단 멈췄지만, 중동의 긴장 상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7년 만에 다시 격화된 이번 분쟁은 이스라엘 경찰이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이슬람사원의 기도를 알리는 확성기 전원을 무단으로 끊어버린 사건이 발단이 됐다.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알아크사 사원 밑에 있는 유대교 성지 ‘통곡의 벽’에서 연설하는데, 이슬람사원의 기도 소리가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확성기에서 아예 소리가 못 나가도록 차단해 버렸던 것이다. 알아크사 사원은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다.

이 사건은 라마단 축일을 기념하고자 했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물론이고, 무슬림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쫓아내고 유대인 도시로 만들려 하는 데 불만을 가지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스라엘 당국이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일부 시민에게 강제 퇴거를 요구하며 위협했던 사건과 맞물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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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6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심 도시 가자시티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구해 낸 딸을 안아 옮기고 있다.ⓒEAP연합

이-팔 내부 정치적 갈등과 역학관계도 원인

한편으로는 부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고자 분쟁을 격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5월 뇌물·사기·배임 등의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을 위기에 있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재판을 연기한 바 있다. 총리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스라엘 극우파들의 지지를 얻고자 분쟁을 암묵적으로 조장하고 내각 구성을 일부러 좌초시키기도 했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내부 정치상황 역시 분쟁의 촉발과 무관하지 않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선거에서 질 것을 우려해 지난 4월 총선을 취소해 버리자 경쟁 상대인 가자지구 하마스가 예루살렘을 수호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결국 알아크사 사원에서 발생한 사건을 로켓포 발사로 강력 대응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마스는 서구에서 테러단체로 규정된 팔레스타인 내 과격 이슬람 단체다. 하마스는 아랍어로 ‘알라를 따르는 힘과 열정’을 뜻하기도 하는데, ‘이슬람 저항운동’을 뜻하는 아랍어의 약자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한다. 아예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데 헌신한다는 내용을 헌장에 명시하고 있을 정도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전에 이스라엘과 맺은 협정들에 서명하는 것을 저지해 왔고,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적법성을 인정하고 폭력을 중단하려는 움직임에도 강력하게 저항해 왔다.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한 것을 계기로 하마스는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이 이끄는 파타 정권을 축출하고 가자지구에서 본격적으로 권력기반을 구축했다.

이렇듯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부의 정치적 갈등과 역학관계 속에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에서는 결국 로켓포가 발사되었고,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대응과 방어를 구실로 무차별 공습과 폭격을 퍼부었던 것이다.

문제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이스라엘이 폭격을 멈출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무차별 민간인 폭격으로 열흘 만에 이미 200명이 넘은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뿐만 아니라 가지지구 봉쇄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물·전기 공급도 원활하지 않을뿐더러 구호물자도 지원받을 수 없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무고한 민간인의 생명이 무차별 희생당하고 있는 상황에도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지지했다. 미국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지지 발언이 문제가 되자 최근 휴전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슬그머니 입장을 선회했다. 독일·프랑스·영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역시 이스라엘의 방어권은 인정하면서도 네타냐후 총리에게 속히 공습을 중단하고 휴전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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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예루살렘에서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왼쪽)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악수하고 있다ⓒAP연합

이스라엘에 힘의 논리 쏠리며 아랍권 침묵

가장 씁쓸한 부분은 아랍권의 침묵이다.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국가는 고작 터키와 이란뿐이다.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무차별 민간인 폭격에 대해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러시아와 이란, 프란치스코 교황 등에게 이스라엘의 공습 중단을 요청하는 전화외교를 벌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제사회에서 터키나 이란의 역량은 매우 제한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맺었던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해 바레인·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들은 사태가 전면전으로 접어들었음에도 아무런 성명도 발표하지 않았다. 이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의 국교 정상화로 변화하기 시작한 중동의 새로운 동맹 패러다임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었다.

한편 미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것을 필두로 이스라엘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이 국제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바이든 대통령 또한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지지하면서 이번에도 이스라엘에 힘을 실어주는 데 급급했다. 이는 앞으로도 중동의 평화 정착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아랍권의 침묵과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오히려 하마스를 비롯한 이슬람 무장단체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하마스의 출연 배경과 활약상만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마스는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 강경한 입장이며, 사태가 불리하면 할수록 저항 수위 또한 극단적으로 높여왔다. 1993년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했을 당시 하마스는 이 협정에 극렬하게 반대하고자 ‘자살테러’ 등 온갖 극단적 방법을 써가며 거부권을 행사해 협정을 무효화시켰다.

하마스는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리더십 부재에 좌절하는 팔레스타인인을 위해 진료소와 학교를 세워가며 환심을 샀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하마스의 연쇄 자살공격을 ‘순교’로 받아들였다. 급기야 2007년 유혈사태가 발생하자 당시 팔레스타인의 마흐무드 압바스에 충성하는 군대를 축출하고 가자지구 통제권을 빼앗았다. 2008년과 2012년 군사력이 절대 열세였던 두 차례 분쟁에서도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새로운 지지 기반을 확보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에도 유엔의 중재로 휴전하고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았을 뿐이지 전쟁에 가까운 폭력사태는 2014년부터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때마다 하마스의 기반은 강화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봉쇄 압력에도 오히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권력을 유지하며 로켓 무기를 계속 개선해 왔다.

이렇듯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오직 힘의 논리에 입각한 채 이스라엘을 싸고 돌면서 중동에 평화를 안착시킬 수 있으리란 기대는 거꾸로 ‘자살테러’와 유혈사태로 다가왔다. 과거에도 그래 왔듯이 전쟁의 발단이 무엇이었든 휴전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입장에 달려 있다. 인권과 민주적 가치를 주장하고 있는 미국의 세계 리더십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도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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