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도시 재생 사업의 너무 늦은 교훈
  •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8 17:00
  • 호수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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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말에 서울시가 발표한 ‘주거정비 지수제 폐지’는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주거정비 지수제는 낡은 동네를 재개발하기 위한 조건을 좀 더 까다롭게 만든 규제였는데 그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

이 제도는 좀 낡은 동네라고 해서 무조건 밀고 아파트를 짓는 건 좋은 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주민들이 스스로 합의를 해서 아파트를 지어 올릴 것 같으니 그 조건을 더 까다롭게 만들자는 취지였다. 이 제도가 도입된 2015년 당시 서울시를 책임지고 있던 박원순 시장은 낡은 주택이 가득한 마을은 페인트칠도 좀 하고 뚝딱뚝딱 고쳐서 쓰면서 원래 모양을 유지하는 도시 재생 방식이 서울의 주택환경을 위해 더 좋은 방향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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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26일 재개발 관련 6대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연합뉴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의로 가득 찬 이 생각은 여러 가지 문제를 낳았다. 2015년 이 제도가 도입된 후 서울의 재개발지구 신규 지정은 모두 스톱됐다. 재미있는 건 그럼에도 서울 시민 중 누구도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2015년 이전에 지정된 재개발지구에서 열심히 아파트를 지어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재개발지구로 지정되고 나서 아파트를 지어 입주할 때까지는 대략 10년 정도 걸린다. 2015년부터는 재개발지구 지정이 없었으니 2025년부터는 서울에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2022년부터 다시 재개발지구 지정을 서두른다 해도 잃어버린 7년은 되돌릴 수 없다. 2025년 무렵부터는 서울 부동산 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찔하다.

사실 2025년은 주택 공급물량이 꽤 될 거라고 예상되던 시기였다. 주택임대사업자들의 의무임대 기간이 얼추 끝나가는 시기와 맞물리는데, 그동안 의무임대 기간 때문에 집을 못 팔던 임대사업자들이 물량을 꽤 내놓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물량을 지금 당장 내놓게 하려고 정부와 여당은 임대사업을 강제로 중단하게 하고 중단된 임대사업용 주택은 6개월 안에 팔도록 강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2025년부터 나올 물량이 먼저 나오고 나면 정작 그 시기에는 매물 찾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주택 정책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서울이 뾰족한 고층 아파트로 뒤덮이는 풍경이 좋아 보이는 사람도 있고 고즈넉한 단독주택촌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택 정책은 그런 개인의 호불호에 의해 정해지면 안 된다. 주택 정책은 바꾸면 당장 주택 수급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10년 후, 15년 후의 주택 공급량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차라리 당장 달라진다면 부작용도 당장 나타날 테니 수정도 변화도 쉽지만, 그 결과가 10년 후에 나타나기 때문에 주택 정책의 부작용은 당대에 판단하기 매우 어렵게 되고 정책을 수정할 기회도 잃게 되기 쉽다.

서울에 아파트가 부족해진 것은 박원순 시장 임기에 추진했던 도시 재생 정책 때문이지만 정작 박 시장 임기 중에는 아파트가 끊임없이 공급됐다. 전임 시장 임기에 추진됐던 재개발·재건축 단지가 시차를 두고 완공됐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도시 재생에 치우친 주택 정책의 결점을 발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도무지 단점이 없어 보이는,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벽화마을 만들기는 계속 추진됐을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나서야 우리는 도시 재생 사업의 문제점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늦었다. 교훈으로 안고 가야 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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