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 화려한 여성편력, 가톨릭 ‘이혼 논쟁’으로 번지다
  • 방승민 영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17 12:00
  • 호수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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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존슨 총리의 이혼만 문제 삼지 않는 가톨릭교회의 이중 잣대” 비판 목소리 커져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5월29일 토요일 세 번째 화촉을 밝혔다. 결혼하지 않은 채 2019년부터 총리관저에서 연인 캐리 시먼즈와 함께 생활해 오던 존슨은 영국 총리로서 재임 기간 중 결혼식을 올린 첫 사례가 됐다. 캐리 시먼즈는 이번 혼인을 통해 존슨 총리의 성을 따라 캐리 존슨으로 개명했다. 둘은 2020년 약혼 사실과 함께 캐리 존슨의 임신 사실을 발표한 바 있다. 캐리는 지난해 4월, 약혼 기간 중 존슨 총리의 아들 윌프레드 존슨을 출산했다.

결혼식 전까지 총리관저인 다우닝 스트리트 10번가는 총리의 결혼과 관련해 일절 함구해 왔다. 그러나 결혼식 다음 날인 5월30일 일요일, 대변인을 통해 존슨 총리와 그의 약혼녀 캐리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존슨 총리 부부는 런던의 가톨릭 성당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최소한의 인원인 30명의 친지만 초대해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다. 또한 이들은 2022년 7월30일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 다시 한번 결혼을 축하할 계획이며, 신혼여행도 이때까지 미뤄둘 것이라고 알려졌다.

존슨 총리의 결혼 소식에 영국 정계 인사들의 축하 인사가 줄을 이었다. 현 영국 내무부 장관 프리티 파텔과 존슨 총리 정부의 전 재무부 장관이었던 사지드 자비드는 각자의 공식 트위터를 통해 그의 결혼을 축복하는 축하 인사를 남겼다.

재임 중 결혼식을 올린 최초의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과 그의 연인 캐리 시먼즈ⓒAP 연합

‘알 권리 존중’ 판결에 따라 혼외자 공개돼

존슨 총리의 결혼생활은 줄곧 영국 언론의 관심을 받아왔다. 그는 1987년 알레그라 모스틴-오웬과 결혼한 후 1993년 이혼했다. 이어 같은 해 두 번째 부인인 마리나 윌러와 결혼했고 혼인 후 5주 만에 첫아이를 얻었다. 영국 왕실 고문 변호사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윌러는 존슨 총리와 1993년 결혼해 25년간 결혼생활을 이어오며 슬하에 두 딸과 두 아들을 두었다. 그러나 이들은 2018년부터 별거하기 시작해 2020년 합의이혼을 하며 긴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존슨 총리는 재임 기간 중 자신의 사생활 관련 의혹이나 루머 등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는 자세로 일관해 왔다. 존슨 총리를 포함해 영국에서 정치인들의 사생활이나 가정사 관련 정보가 공개되는 일은 드물다. 다만 이례적으로 2013년 대중의 ‘알 권리’를 내세운 법원 판결에 따라, 존슨 총리가 과거 런던 시장 재임 중 혼외자가 생겼다는 사실이 공개된 바 있다. 존슨 총리는 화려한 여성편력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004년, 두 번째 부인인 마리나 윌러와 혼인한 지 1년 만에 기자 페트로넬라 와이트와의 불륜설로 인해 문예부 장관직에서 경질된 전력도 있다.

이번에 세 번째 결혼 소식이 전해진 직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이브닝스탠더드·메트로 등은 앞다퉈 존슨 총리의 전 부인인 윌러가 지난 2019년 영국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굿 하우스키핑’과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해 그들의 과거 결혼생활을 재조명하는 기사를 냈다. 당시 그녀는 자신의 자궁경부암 발병과 관련한 인터뷰 도중 자신이 이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장본인이며, 존슨 총리와의 부부관계가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러 이혼 결정을 내렸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은 한국에 비해 가족의 형태가 상대적으로 다양하고 이혼과 재혼이 사회적으로도 용인되는 분위기라 총리의 재혼 소식은 크게 놀라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존슨 총리 결혼식과 관련해 영국 대중의 이목을 끈 것은 이혼 이력이 있는 존슨 총리의 결혼식이 가톨릭 성당에서 혼배 미사로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이는 가톨릭 신자인 약혼녀 캐리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으며 재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재혼할 경우 재혼 결혼식은 혼배 성사 형태로 진행할 수 없는 등 종교생활에 제약이 가해진다.

반면 영국 성공회는 신자의 이혼과 재혼을 인정하고 허락한다. 이는 16세기 영국 국왕 헨리 8세 집권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헨리 8세는 자신의 이혼과 재혼을 허락하지 않는 가톨릭교회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교황청과 틀어진 헨리 8세는 로마와 결별하고 영국 성공회를 국교로 정한 바 있다. 즉 영국 국교가 탄생하고 영국 종교사를 크게 변화시킨 주요 배경이자 원인이 이혼한 신자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태도였던 셈이다. 따라서 이번 존슨 총리의 가톨릭 성당에서의 혼인은 충분히 영국인들 사이에 화제에 오를 만한 이슈인 셈이다.

 

영국 종교사를 바꾼 건 ‘이혼’ 향한 인식차?

이미 두 차례 이혼한 존슨 총리의 이력은 표면적으로 보기에 가톨릭교회 법규에 따라 혼인이 불가한 조건에 해당한다. 실제로도 이 점에 대해 많은 영국 국민은 의문을 품어왔다. 그러다 존슨 총리가 본래 가톨릭 신자였으나 이튼 학교 재학 중 영국 성공회로 개종한 사실이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서전 작가이자 영국의 가톨릭 전문기자인 오스틴 아이버레이는 교회법을 토대로 가톨릭교회가 존슨 총리의 혼인을 승인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존슨 총리의 과거 두 배우자가 가톨릭 세례를 받은 적이 없었고, 결혼식 또한 혼배 미사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기에 과거 두 혼인은 교회법상 ‘사실혼’으로 간주될 뿐, 교회법에 따른 ‘혼인’의 형태로 볼 수 없다고 밝히며 이번 혼인이 교회법상 첫 혼인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와 관련해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담은 서신을 모아 온라인 기사로 게재했다. 한 독자는 “28년 전 나와 현재 아내는 내가 이혼했다는 이유로 가톨릭 성당에서 혼배 성사를 거절당했다. 내 첫 결혼은 일반 결혼식이었음에도 존슨 총리와 같은 예외는 적용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아니라 성직자들과 종교계의 목소리도 주목을 받았다. 영국 워링턴 지역 한 성당의 보좌신부 마크 드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이혼한 신자들은 성당에서 결혼식을 할 수 없다고 안내해 왔으며, 이번 존슨 총리의 결혼은 가톨릭교회가 특정인이나 상황에 대해 이중 잣대를 가진 것으로 비춰진다”며 우려를 표했다. 또한 가톨릭 매거진 로마 통신원 크리스토퍼 램브는 “이번 일을 계기로 가톨릭교회가 (이혼 이력이 있는) 존슨 총리를 환영한다면, 이혼 경력이 있는 다른 이들도 환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고려해 볼 때”라고 밝히며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유례없는 영국 총리의 재임 중 결혼이 때아닌 가톨릭의 ‘내로남불’ 논쟁과 시대착오적인 가톨릭교회를 향한 변화 요구로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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