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외압 없었다”…이용구 사건 풀리지 않는 의혹 넷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06.1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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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일 수사, 경찰관 1명만 송치…‘꼬리 자르기’ 수사 비판도
강일구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일구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의 ‘봐주기 수사 및 외압 의혹’을 약 4개월 동안 조사한 경찰이 ‘외압은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관련 의혹들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말단 경찰만 검찰에 송치해 ‘꼬리 자르기’식 수사란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10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진상조사단은 이 전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관련 조사 결과 해당 사건을 담당한 A경사를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A경사는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조직적인 은폐가 아니라 일부 경찰관들의 잘못과 제도적 허점이 원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이 전 차관의 수사 외압은 없었다고 결론내렸다. 진상조사단은 이 전 차관을 비롯해 A경사의 상급자였던 당시 서초서장과 형사과장, 형사팀장 등 총 91명을 조사했다. 이들의 통화내역 8000건을 분석했으며, 휴대전화·사무실 PC 디지털포렌식, 폐쇄회로(CC)TV 등을 확인했지만 의심할 만한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건 보고 과정이 부적절했지만, 윗선 개입이나 외압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한때 경찰 상층부로 확대되는 듯했던 의혹은 말단 수사관의 ‘개인적 일탈’로 마무리되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번 진상조사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여전히 석연치 않은 의혹들이 여럿 있어서다.

우선 경찰이 이 전 차관의 폭행사건을 내사종결 처리했다는 사실은 지난해 12월 언론보도로 알려졌다. 당시 논란의 쟁점은 서초서가 왜 이 전 차관에게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이 아닌 형법상 단순폭행 혐의를 적용했느냐는 것이었다.

통상 정차 중인 운전자를 폭행할 경우 특가법이 적용되고,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을 받는다. 반면 단순폭행 혐의 적용 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내사 종결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전 차관 사건을 경찰이 내사종결 처리하기 위해 일부러 특가법이 아닌 폭행 혐의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애초에 서초서 경찰들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경찰은 ‘블랙박스 영상이 없어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담당수사관인 A경사가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블랙박스에는 이 전 차관이 정차 중 운전석에 앉은 기사에게 욕설하고 멱살을 잡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연합뉴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연합뉴스

담당 사건 지휘부 조직적인 거짓말…증거 인멸 의혹도

경찰의 봐주기 수사 논란이 확산할 때 서초서 관계자들이 왜 ‘이 전 차관의 신분을 몰랐었다’고 해명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진상 조사 결과, 사건 총 책임자인 서초경찰서장을 포함한 서초서 지휘 라인 전원이 당시 이 전 차관이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차관의 신분이 정말 사건 처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누구인지 알았지만 절차에 맞게 처리했다’고 밝히면 될 일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초서장 등 사건 관련자들이 모두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삭제한 정황이 있는 점을 두고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특히 형사팀장은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데이터를 덮어씌우고 삭제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흔적을 없애는 ‘안티포렌식’ 앱을 설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압·청탁이 없었다는 결론도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경찰을 조사한 ‘셀프 조사’의 한계점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외압·청탁은 없었더라도 당시 공수처장으로 거론되는 이 전 차관에 대해 ‘알아서 봐주기’를 한 것 아닌지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사가 지연되면서 증거 인멸의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공을 넘겨받을 검찰은 우선 지난해 말부터 벌여온 폭행 사건 자체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 할 계획이다. 이후 이 전 차관을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로 조만간 재판에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A경사의 사건 처리 과정을 비롯해 이 전 차관과 택시기사의 증거인멸 관련 혐의 등 사건 전반을 다시 확인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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