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불량·요통 원인 못 찾으면 췌장암 의심하라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6 08:30
  • 호수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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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당뇨병 생겨도 위험…초음파 검사보다 CT 검사로 확인해야

고(故)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은 2019년 10월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13차례에 걸친 항암치료 후 2020년 9월 MRI(자기공명영상) 검사에서 암세포가 거의 사라졌다는 소견이 나왔다. 가족과 여행을 떠나고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는 듯했으나, 올해 6월 50세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2011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 나이가 56세였고, 미국 영화배우 패트릭 스웨이지도 57세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췌장암은 70대가 32.1%로 가장 많으며, 60대부터 80대까지 합하면 76.7%에 이른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 50대에 췌장암에 걸리는 경우는 대부분 유전과 관련이 있다. 송시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50대 이하 췌장암 환자의 3분의 2에서 유전자 변이가 발견된다. 또 직계가족 중 2명 이상에서 췌장암이 있으면 가족성 췌장암, 즉 그 가족만의 유전자 변이가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비교적 젊은 나이에 췌장암에 걸리는 경우는 유전과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수명(83세)까지 생존할 때 암에 걸릴 확률은 37.4%다. 남자는 5명 중 2명(39.8%)에서, 여자는 3명 중 1명(34.2%)에서 암이 발생하는 셈이다. 한국인이 많이 걸리는 암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위암, 갑상선암, 폐암, 대장암, 유방암, 간암, 전립선암, 췌장암, 담낭·담도암, 신장암 순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췌장암 생존율, 20년 동안 최하위 

암은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사망한 사람 중 27.5%(약 8만1000여 명)가 암으로 사망했다. 이 가운데 폐암이 22.9%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간암(13.0%), 대장암(11.0%), 위암(9.4%), 췌장암(7.9%) 순이다. 

그나마 최근 20여 년 동안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크게 올랐다. 정부가 1996년 ‘제1기 암 정복 10개년 계획’에 돌입하면서 암 생존율은 1995년 42.9%에서 2018년 70.3%로 높아졌다. 2006년부터 시작한 ‘제2기 암 정복 10개년 계획’ 시기인 현재 암종별 생존율을 보면 갑상선암(100%), 전립선암(94.4%), 유방암(93.3%)이 높은 편이다. 특히 전립선암(35.2%P), 위암(33.2%P), 간암(25.2%P)의 생존율이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간암(37.0%), 폐암(32.4%), 담낭·담도암(28.8%), 췌장암(12.6%)은 상대적으로 낮은 생존율을 보인다. 특히 췌장암의 생존율은 모든 암 가운데 가장 낮으며 2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 그 이유는 원인, 진단, 치료 등 모든 부분에서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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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은 위의 뒤쪽에 있는 약 15cm 길이의 가늘고 긴 장기로 소화를 돕는 효소와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췌장에 암이 생기는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유전과 환경 요인이 작용할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예를 들면 췌장암 환자의 90% 이상에서 특정 유전자(KRAS) 변형이 발견된다. 환경 요인으로는 흡연, 비만, 당뇨, 만성 췌장염, 가족성 췌장암, 나이, 음주 등이 꼽힌다. 

원인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확립된 췌장암 예방 수칙도 없다. 현재로서는 환경 요인을 일상생활에서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위험도로 따지자면 흡연은 30%, 식사(고지방·고열량·알코올)가 20%, 유전이 10%다. 나머지 40%는 우리가 모르는 위험인자다. 물론 췌장암 가족력이 있거나 당뇨와 만성 췌장염이 있는 사람은 발병 소지가 크므로 정기적으로 진료받아야 한다.

증상이라도 뚜렷하면 조기에 발견하겠지만 췌장암은 특별한 증상도 없다. 다만 수많은 환자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복통과 요통, 황달, 체중 감소, 소화 장애, 당뇨병 등이다.

복통은 흔히 명치 부위에서 나타나며, 배 부위를 누를 때 통증이 온다. 암이 커지면서 척추 신경을 압박해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막연히 불편한 정도로 느끼다가 점차 강도가 심해지고 통증이 유지되는 시간도 길어진다. 결국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극심한 통증이 생긴다. 복통은 똑바로 천장을 보고 누울 때 더 심해지므로 많은 환자는 무릎을 배에 붙이고 새우잠을 잔다.

황달은 췌장암 환자에게 흔히 보이는 증상이다. 암이 담즙 배출 경로를 막아 황달이 생긴다. 눈동자의 흰 부분이나 피부가 노란색으로 변한다. 황달이 생기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황달과 함께 열이 나면 막힌 담도에 염증이 발생했다는 신호다. 

체중 감소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증상이다. 뚜렷한 원인 없이 최근 6개월 사이에 정상 체중의 5~10% 이상이 감소하면 반드시 병원을 방문해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췌장암이 있고 당뇨병까지 생기면 이차적으로 체중 감소가 올 수 있다. 따라서 50세 이상에서 갑작스러운 당뇨병이 발생하면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그나마 이런 증상들은 뒤늦게 나타난다. 또 췌장 자체가 몸속 깊은 곳에 있어 진단도 쉽지 않다. 그래서 췌장암을 의심하고 진단할 때 다양한 검사를 동원한다. 초음파검사, 복부 전산화단층촬영(CT), 내시경 초음파 검사(EUS), 자기공명영상(MRI),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ERCP), 양성자방출 단층촬영(PET), 혈청 종양표지자검사 등 다양하다. 

초음파 검사 결과는 초음파 기기의 해상도와 검사자의 경험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초음파 검사에서 이상이 없을 때도 복부 CT 검사가 필요하다. EUS는 내시경 끝부분에 장착된 고주파로 소화관과 주변 장기의 병변을 진단하는 방법이다. 내시경을 위장 뒤에 위치한 췌장에 바짝 근접시키기 때문에 고해상도 영상을 얻을 수 있다. MRI와 ERCP는 췌관 또는 담관을 관찰하는 데 효과적이다. 

PET는 일반적인 진단법으로 발견되지 않는 병변을 찾거나 췌장 이외 장기로의 전이 여부 등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혈액 검사로 종양표지자(CA19-9)를 찾기도 하지만 정확도가 높지 않아 조기 진단법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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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진단·치료 공식이 없는 췌장암 

췌장암 치료는 다른 암 치료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암의 크기와 위치, 병기, 환자의 나이와 건강 상태 등을 두루 고려해 수술,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중에서 선택한다. 한 가지 요법만 쓰기도 하고 두 가지 이상을 병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수술 전 항암치료를 먼저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술이다. 하지만 암의 크기가 작고 주변으로 심하게 침입하지 않았을 때라는 조건이 있다. 이 조건에 맞아 수술이 가능한 환자는 전체 환자의 20% 정도다. 수술해도 5년 생존율은 12%로 다른 암에 비해 낮다. 수술 후 재발은 1~2년 사이에 주로 일어난다.

위암은 조기에 발견해 수술하면 완치율이 95%다. 그러나 췌장암은 조기 췌장암이라고 부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른 암처럼 크기가 작다고 조기암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췌장암 크기가 1cm보다 작은데도 5년 생존율은 57%에 불과하다. 크기가 2cm보다 작아도 환자 10명 중 5명은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다. 전이된 암세포는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 몇 년 동안 정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몇 년 후 활동하면서 다시 생명을 위협한다. 이처럼 췌장암 발병에는 공식이 없다. 

췌장암 환자는 암을 우연히 발견한다. 소화불량이나 요통과 같은 애매한 증상으로 집 근처 병·의원을 방문해 검사했을 땐 대개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는다. 그러면서 몇 개월을 보낸 후 증상이 심해져야 비로소 큰 병원을 찾아 암을 발견한다. 이런 배경 때문에 조기 췌장암 진단율이 낮다. 췌장암 환자는 10년 전보다 약 40% 늘어 한 해 6000~7000명에 이르며 향후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의사와 환자 모두 췌장암 발견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송 교수는 “평소 없던 증상이 생겼고 병원에서 검사해도 정상인 경우에 CT 검사를 권한다. 50세 이후 갑자기 당뇨가 생겼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포심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의심하고 관심이 있어야 조금이라도 일찍 췌장암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췌장암과 싸우다 세상을 떠난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던 6월8일 인천시 중구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서 유 전 감독의 유니폼을 입은 팬이 조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췌장암과 싸우다 세상을 떠난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던 6월8일 인천시 중구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서 유 전 감독의 유니폼을 입은 팬이 조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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