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웅 홍범도 장군 유해,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다
  •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13 12:00
  • 호수 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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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대통령이 광복절 맞춰 직접 방한해 봉환…고려인 연결된 한-카자흐 관계 발전 계기 될 듯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기고]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한국을 국빈 방문한다.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에 대한 답방이라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이번 토카예프 대통령 방한은 2년 전 문 대통령과 협의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헌에 대한 약속 이행이라는 의미가 큰 것으로 보인다. 당초 삼일절에 방한할 예정이었다가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취소됐기에, 이번에 한국의 ‘광복절’에 맞춰 유해 봉헌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올해는 봉오동 전투 101주년이다. 홍범도 장군이 이끈 독립군은 중국 봉오동 골짜기에서 일본 정규군 ‘월강추격대’와 전면전을 벌였다. 임시정부가 ‘독립전쟁의 해’를 선포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얻은 독립투쟁 최초의 전면전 대승이었다. 이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식민통치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우리 민족은 희망의 빛을 보았다. 평범한 백성들로 구성된 독립군의 승리였기에 승리가 전하는 자주독립 가능성에 대한 울림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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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3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의 홍범도 장군 기념공원 모습ⓒ연합뉴스

카자흐 교민, 홍 장군 유해 송환 반대하기도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명장이다. 1868년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만주에서 독립군 양성에 힘쓰며 주로 연해주에서 독립투쟁을 벌였다. 연해주에 정착해 활동하던 중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감행된 한인 강제이주 정책의 직접적 피해자가 됐다. 스탈린은 러일전쟁 이후 연해주에 정착한 한인들이 일본인 첩자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우려해 하루아침에 연해주 고려인 22만여 명을 중앙아시아 오지로 기차에 실어 날랐다. 표면적인 이유는 척박한 땅을 개간해 벼농사를 일궜던 고려인의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스탈린의 속셈은 다른 데 있었던 것이다.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 험난한 강제이주 여정을 견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확한 통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거의 한인 2만여 명이 강제이주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은 중앙아시아의 낯설고 척박한 황무지에 버려지듯 내팽개쳐졌고, 벼농사를 지으며 삶을 일궈갔다. 홍 장군은 죄인처럼 버려진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도자가 돼주었고, 결국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1943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76세로 생을 마쳤다.

이제 7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마침내 우리 민족의 영웅, 독립투사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죽는 그 순간까지 조국의 자주독립과 해방을 빌었을 홍 장군의 유해가 고국 땅에 안치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난관과 우여곡절이 많았다. 무엇보다 봉환을 추진했던 초창기에는 분단과 남북한 대치 상황이라는 비극적 현대사가 발목을 잡았다. 카자흐스탄과 국교를 맺었던 1992년부터 추진을 시도했지만 북한 측이 남한으로 가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며 카자흐스탄 정부에 강력 항의하는 바람에 무산됐던 것이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동포들은 장군의 고향인 평양에 안치돼야 한다며 반대하기도 했다. 아직도 카자흐스탄 교민 사회에서는 홍 장군이 정신적 지주이고 구심점이 되고 있으므로 크즐오르다에 그대로 남겨두자는 입장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5년부터 ‘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가 창립돼 유해 봉환을 추진해 왔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홍 장군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내고, 카자흐스탄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구하는 등 끈질긴 노력 끝에 마침내 고국 땅을 밟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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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22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 통령이 누르술탄 대통령궁에서 공동기자회견 중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수교 30주년 되는 내년 ‘상호 문화 교류의 해’

한국의 독립운동가 유해 봉환을 위해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특별히 광복절에 직접 방한한다는 것은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카자흐스탄 국내 상황이 코로나19로 인해 매우 어수선한데도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주독립과 독립투쟁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신들도 역사를 통해 통렬히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제국주의와 구소련 식민통치라는 아픔과 고통을 경험한 나라며, 올해로 독립 30주년을 맞는다.

카자흐스탄과 한국의 관계는 1992년 수교 이래 꾸준히 발전해 왔다. 특히 2009년에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고, 카자흐스탄은 우리 정부의 신북방정책 핵심 파트너 국가다. 2019년 4월 문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국빈 방문 때 양국 수교 30주년이 되는 2022년을 ‘상호 문화 교류의 해’로 지정해 양국 국민 간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교류 행사를 추진하기로 약속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품에 안고 우리나라를 찾는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지난 80여 년간 강제이주로 느닷없이 카자흐 초원에 내던져진 고려인들을 ‘동포’로 품어주었던 카자흐인들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강제이주로 카자흐 초원에 내던져진 고려인들이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릴 때 가장 먼저 먹을 것을 주고, 덮을 것을 주며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카자흐인들에게 한민족은 늘 ‘이웃’이었다.

이에 비해 돌아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도 무관심했다. 30년간 문화 교류가 있었지만 우리 것을 카자흐스탄에 알리는 데만 너무 주력한 나머지 카자흐스탄 문화를 이 땅에 알리려는 노력엔 소홀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제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도 균형 잡힌 세계관을 가지고 우리의 이웃을 알아가기 위해 해외의 언어·역사·문화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고 문화 프로그램의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공공외교의 영역을 확대하고 전문가 양성에도 주력할 필요가 있다.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영웅의 유해를 안고 방문하는 외국인 정상, 카자흐스탄 대통령 방한의 의미를 되새기며 진정한 우방으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카자흐스탄은 국제사회에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국 편에서 ‘표’를 던져줄 수 있는 영원한 우방이 될 수 있는 나라다. 고대부터 전해지는 언어·역사·문화 등 모든 인문학적 자료가 한국과 카자흐인들이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고려인들이 있고, 독립영웅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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