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이 남긴 숙제 ‘K콘텐츠 어디로 가야 하나’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30 11:00
  • 호수 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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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흥행몰이로 K콘텐츠 경쟁력 입증
제작 시스템 개선·토종OTT의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이 과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신드롬으로 K콘텐츠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실로 반갑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여기에 드리워진 글로벌 OTT의 그림자도 적지 않다. 이 성취의 기쁨을 누리는 것만큼 남겨진 숙제들을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오징어 게임》은 현재 한 달 넘게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본 TV시리즈라는 놀라운 결과를 냈다. 넷플릭스 측이 공식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1억4200만 이상의 넷플릭스 시청가구가 《오징어 게임》을 봤다. 이전 시청자 수 1위였던 《브리저튼》(8200만 가구)을 압도한다. 이 수치가 발표되면서 전 세계 외신들도 《오징어 게임》 신드롬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가장 기이하고 매혹적인 넷플릭스 작품 중 하나”(포브스), “한국영화 《기생충》에서 드러났던 것과 매우 같은 현상”(CNN) 같은 분석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가 가진 치열한 경쟁 시스템이 이러한 작품의 탄생 배경이라는 비판적 관점들도 쏟아졌다.

《오징어 게임》이 신드롬처럼 번지고 있는 상황은 콘텐츠 속 내용들이 전 세계에 하나의 놀이문화처럼 확산되고 있는 현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현재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에는 《오징어 게임》과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에 대한 해외 통신원들의 리포트들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 핼러윈 의상을 《오징어 게임》 코스튬이 싹쓸이할 것이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들이나 달고나 게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게임을 하는 외국인들의 모습들이 그것이다. 한국의 놀이문화를 외국인들이 하고 있는 광경은 《오징어 게임》이 방영되기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아닐 수 없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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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이 거둔 놀라운 성과

《오징어 게임》의 성과는 다른 K콘텐츠로도 그 영향력을 확장했다. 즉 넷플릭스에 소개된 《갯마을 차차차》는 《오징어 게임》의 성공에 힘입어 넷플릭스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서 TV쇼 부문 톱10 자리를 거의 한 달가량 유지하고 있다. 새로 시작한 《마이 네임》도 톱5에 올랐으며 《연모》 역시 잠시 톱10에 들기도 했다. 개인화 서비스의 알고리즘에 따라 운용되는 넷플릭스의 특성상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관련 키워드일 수 있는 K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인의 접근성을 높였다. 그 결과가 K콘텐츠들에 대한 글로벌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성과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수익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즉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비를 제공하는 반면, 작품의 성취에 대한 보상(이를테면 러닝 로얄티 같은)이 전무하고 심지어 IP(지식재산권)도 모두 가져가는 구조로 부가 사업의 수익 역시 온전히 넷플릭스가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10월16일 블룸버그통신이 넷플릭스의 내부 문건을 분석해 내놓은 결과는 예상은 했지만 국내외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오징어 게임》의 임팩트 밸류가 약 9억 달러(약 1조원)에 육박하는 수치로 평가된 것이다. 회당 약 28억원으로 총 250억원 상당의 제작비가 《오징어 게임》에 투입된 걸 생각해 보면, 그 수익성은 천문학적이다.

250억원을 들여 1조원을 벌어들였다는 사실에 더욱 충격을 받은 건 해외였다. 외신들은 외국 시리즈와 《오징어 게임》의 제작비를 비교하며 그 놀라운 가성비를 얘기했다. 실제로 해외 작품들은 회당 제작비가 100억원에 달하는 것도 적지 않고 심지어 200억원이 넘는 작품도 있다.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95억원), 《더 크라운》(119억원)이 그렇고 디즈니플러스의 마블 시리즈 《완다 비전》(296억원)이나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핀오프 드라마인 《만달로리안》(178억원)이 그렇다. 이러한 비교분석을 통해 넷플릭스의 로컬 정책이 단지 지역 제작사들과의 상생이라는 가치에만 있지 않다는 걸 미국 언론들은 드러냈다. 즉 디즈니 같은 거대 공룡 콘텐츠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TV쇼의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기업은 오히려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경쟁력을 갖춘 로컬 제작사와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2017년 넷플릭스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 들인 제작비는 600억원이다. 이는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해외에서도 적지 않은 제작비다. 예를 들어 2편으로 나뉘어 개봉된 《신과 함께》의 총제작비가 350억원이다. 그러니 《옥자》에 600억원을 투자하면서 그 전권을 모두 봉준호 감독에게 넘긴 넷플릭스의 투자는 국내 영화계에서도 놀랍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넷플릭스의 손해였을까. 그렇지 않다. 넷플릭스는 《옥자》를 통해 영화를 보는 방식이 꼭 극장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이슈로 끌어냈다. 다른 이도 아닌 봉준호 감독이었기 때문에 그 효과는 더 커질 수 있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멀티플렉스들이 《옥자》를 상영하지 않으며 반발함으로써 오히려 이슈는 더 주목받을 수 있었다. 즉 《옥자》는 영화적 성취뿐만 아닌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는 돈으로 셀 수 없는 성취를 가져간 것이었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넷플릭스

성취만큼 고민도 커진 가성비 문제

《킹덤》 역시 가성비 높은 성과를 이끌어낸 작품이다. 방영 이후 글로벌 팬덤이 생겨난 《킹덤》은 코로나 시국에 시즌2가 이어지면서 더 큰 열광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킹덤》 시즌1의 회당 제작비는 12억원에서 15억원 사이였다. 물론 이 제작비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로 제작된 《태양의 후예》(8억원)나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9억원)보다 훨씬 높은 것이었지만, 미국 메이저 제작사들의 그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가성비 좋은 투자가 아닐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프렌즈》 같은 시트콤은 출연료 비중이 높아 회당 제작비가 무려 110억원에 달한다. 그러니 리스크가 적은 제작비를 투입해 글로벌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K콘텐츠가 넷플릭스에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총 7700억원을 투자했고 2021년에만 약 5500원을 투자했다. 《오징어 게임》의 엄청난 성취는 내년 넷플릭스의 투자 규모가 훨씬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당연히 가성비 높은 투자를 하고 모든 콘텐츠 저작권을 가져가는 이 상황에 대한 우려들이 쏟아져 나왔다. 국정감사에서도 나온 우려의 내용들은 대부분 K콘텐츠 제작사들이 결국 넷플릭스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국내에서 몇백억원이 들어가는 대작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즉 기존 레거시 미디어들과 함께 만들어온 제작 시스템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K콘텐츠 생산이 제작 규모에서부터 장벽에 부딪힌다는 얘기다. 중요한 건 이미 국내 시청자들조차 OTT 콘텐츠를 접하면서 한층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고만고만한 콘텐츠로는 국내에서도 성공하기 어렵게 됐다. 결국 제작사들이 넷플릭스를 찾게 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웨이브나 티빙 같은 국내 토종 OTT들이 굳건히 자리를 잡은 상황도 아니다. 물론 최근 들어 토종 OTT들도 수조원에 달하는 제작 투자를 할 것이라는 비전들을 내놨지만 아직 넷플릭스처럼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오징어 게임》 같은 성취를 만들기는 어렵다. 《오징어 게임》 덕분에 동반 상승한 《갯마을 차차차》가 넷플릭스에서는 주목받았지만, 동시에 오픈된 티빙에서는 소소한 반응에 그친 건 플랫폼 영향력의 차이를 잘 드러내준다.

그렇다면 K콘텐츠는 어쩔 수 없이 넷플릭스 같은 공룡 글로벌 OTT의 진격 앞에 가성비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을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런 우려들은 지나친 비관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도 독보적인 콘텐츠가 없으면 순식간에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건 이 플랫폼이 그간 매년 엄청난 오리지널 콘텐츠에 왜 그토록 투자해 왔는가 하는 점에서 드러난다. 실제로 최근 군대 내 폭력을 소재로 다뤄 화제가 됐던 《D.P.》가 소개되고 바로 이어서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신드롬을 만들기 직전, 넷플릭스는 위기설이 돌았다. 볼 만한 콘텐츠가 없다(볼 건 다 봤다는 구독자들의 목소리)는 얘기들이 솔솔 흘러나와 구독자 증가 추세가 주춤했고, 마침 서비스가 시작된 디즈니플러스가 엄청난 속도로 구독자를 확보하며 넷플릭스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단번에 날려 버린 건 역시 《오징어 게임》 같은 독보적인 콘텐츠였다. 이 사실이 말해 주는 건 거대 공룡 OTT 플랫폼이라고 해도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킹덤》 시즌1(사진)의 회당 제작비는 12억원에서 15억원 사이였다. 리스크가 적은 제작 비로 큰 성과를 만들어내는 K콘텐츠가 넷플릭스에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넷플릭스

글로벌 OTT와 K콘텐츠의 대결인가, 상생인가

《오징어 게임》이 250억원을 들여 1조원이 넘는 수익을 가져왔음에도 이에 상응하는 러닝 로열티나 보너스가 없다는 사실은 씁쓸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성취가 만들어낼 향후의 좀 더 나은 계약 조건들이다. 아마도 《오징어 게임》 시즌2가 제작된다면 제작진들은 더 높은 제작비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K콘텐츠들이 만들어내는 일련의 성과들은 전반적인 콘텐츠 제작 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사실 ‘가성비’라는 표현은 “이 돈에 이런 엄청난 걸 만들어내냐”는 국뽕을 자극하는 말들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공짜 노동’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당하게 받아야 할 노동의 대가를 몸으로 때우며 채워넣은 것이 그간 우리네 ‘생산성’의 실체로 드러나고 있듯이 말이다. 실제로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벌어지는 안전사고들과 과노동 문제는 여러 차례 사건으로 등장한 바 있지 않은가. 제대로 된 제작비를 받아내고 그것이 배우나 작가 등에게 쏠리기보다는 스태프들까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이제 글로벌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K콘텐츠가 내적 진화를 이뤄야 하는 중요한 숙제다.

또한 《오징어 게임》으로 주목받게 된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토종 OTT로서도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최근 웨이브가 해외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고 있고, 티빙이 해외 투자자들을 공격적으로 끌어모을 수 있게 된 데는 이러한 K콘텐츠의 높아진 위상이 한몫을 하고 있다. 즉 콘텐츠 제작의 보다 좋은 토양을 만들어내 지속적으로 매력적인 K콘텐츠를 생산하면서, 한편으로는 토종 플랫폼들이 이를 통해 해외 투자와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병행하는 일. 그것이 이제 K콘텐츠가 걸어가야 할 새로운 길로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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