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절반의 성공’ 아닌 ‘90%의 성공’인 이유
  •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1 07:30
  • 호수 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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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 발사체 보유로 위성 자체적으로 쏠 수 있어
BBC “사실상 한국형 ICBM으로 전용될 수도”

10월21일 오후 5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우주를 향해 발사됐다. 발사 후 공중에서 2단과 3단 엔진 점화와 단 분리가 이뤄지고, 페어링·위성 분리까지 성공하면서 모형 위성(모사체)을 700km 상공으로 쏘아 올렸다. 마지막 단계인 위성을 목표 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해 ‘절반의 성공’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독자적 발사체의 발사 성공만으로도 사실 대단한 성과다. 우주 수송 능력이 확인된 누리호 1차 발사가 남긴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일까.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10월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날아오르고 있다.ⓒ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100% 국내 기술…세계 4번째 발사체 개발

누리호는 길이 47.2m, 무게 약 200톤의 3단으로 구성된 우주발사체다. 지구 저궤도(600~800km)에 1.5톤급 실용위성을 보내기 위해 제작되었다. 발사체란 우주선을 지구의 중력장에서 벗어나게 하는 로켓 장치를 말한다. 2013년 발사된 나로호가 러시아 기술을 일부 활용했다면 누리호는 엔진 설계부터 제작·시험·발사 운용까지 모두 순수 국내 기술로 완성했다.

누리호의 독자적 개발 의미가 큰 것은 미사일기술 통제체제(MTCR)와 미국의 국제무기거래규정(ITAR)에 따라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주 선진국들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첫 도전에 이 정도 성과를 이뤄낸 건 놀라운 일이다.

우주 선진국들의 발사체 첫 도전은 어땠을까. 자력이든 다른 나라의 기술협력을 통해서든 처음 발사체를 개발한 나라들 중 첫 발사에 성공한 나라는 러시아(구소련)·프랑스·이스라엘 3개국뿐이다. 지금까지의 우주 역사에서 최초 발사체의 성공률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누리호 발사의 일부 성공이 충분히 의미 있는 이유다. 누리호처럼 자력으로 순수 발사체를 개발한 국가도 러시아·일본·프랑스 3개국뿐이다. 우리나라가 4번째인 셈이다. 중국은 러시아, 일본은 미국, 인도는 유럽연합(프랑스)의 기술협력과 엔진 도입 등을 통해 발사체를 개발했다.

그럼 세계에서 1톤 이상의 중형급 실용위성을 지구 저궤도까지 자력으로 발사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 몇이나 될까. 러시아·미국·프랑스·중국·일본·인도 등 6개국이다. 이번에 누리호가 모형 위성의 궤도 안착에까지 성공했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1톤 이상의 위성 탑재 우주발사체를 개발한 나라가 됐을 것이다. 1톤 미만의 소형(이스라엘·이란·북한)급까지 포함한다 해도 독자적으로 발사체를 쏠 수 있는 나라는 현재 9개국에 불과하다.

한국의 독자적인 우주발사체 기술 확보는 9부 능선을 넘었다. 이번 누리호 발사를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절반의 성공’이 아닌, 실제 ‘90%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특히 핵심 기술인 엔진 클러스터링(추진체 결합 기술)을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엔진 하나를 만들어서 2개·4개·6개·9개 등으로 묶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로켓에 사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더 강한 추력을 위해서다. 누리호의 경우 1단에서 75톤급 액체엔진 4기를 이어붙여 300톤의 추력을 낸다. 2단은 75톤급 1기, 3단은 7톤급 1기로 이뤄져 있다.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도 멀린(Merlin) 엔진 9개를 묶어 하나처럼 사용한다. 누리호는 700km 상공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75톤급 엔진에 대한 성능과 1단 추진 시스템 기술은 이미 검증된 셈이다.

둘째는 안전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엔진 여러 개를 묶어 사용하는 만큼 1개가 고장 나도 전체 추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아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엔진 여러 개를 묶기 때문에 추가적 배관 설계나 추력 제어에 어려움이 따르지만, 이 같은 장점 때문에 우주발사체에 자주 적용된다.

클러스터링 기술은 재사용 발사체 기반 기술을 확보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2015년 팰콘9의 1단 발사체는 9개의 엔진 중 가운데 엔진 1개를 사용해 완전한 형태로 재착륙에 성공했고, 2017년 1단 발사체 재사용에도 성공했다. 누리호 또한 추력 제어와 재점화가 가능한 ‘다단연소 사이클’이 적용돼 추후 재사용 로켓 개발도 염두에 두고 있다. 1단 로켓 엔진을 재사용한다면 발사 비용을 엄청 낮출 수 있다.

 

외신, 한국의 군사 강국 대열 합류 점쳐

발사체 기술이 있다는 것은 한국도 위성을 자체적으로 쏠 수 있는 국가가 됐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천리안 위성 등 여러 위성을 발사할 때마다 해외 시설을 이용해 왔다. 이 경우 소형 발사체라도 최소 수십억원을 지불해야 하고, 쏘는 시기도 해외 기업의 일정에 맞출 수밖에 없다. 누리호 덕분에 이제 우리도 남의 도움 없이 위성을 쏘아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CNN은 “한국이 자체 발사체를 보유했다는 사실은 첩보위성을 보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한국은 북한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 의존해 왔다. 알자지라 역시 “한국이 북한 감시체계를 위한 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릴 능력을 갖췄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영국 BBC 등은 누리호 발사를 두고 “사실상 한국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전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주 선진국들의 초기 우주발사체 기술이 ICBM이나 장거리 미사일의 기초가 됐기 때문이다. BBC는 “한국이 누리호를 인공위성 발사에만 사용할 거라고 말하고 있으나, 사실 이 실험은 한국이 진행 중인 무기 개발 확대의 일부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ICBM과 우주발사체는 대기권 탈출을 위한 로켓 엔진 기술이 동일하다. 누리호가 ICBM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 기술적인 면 때문이다. 하지만 ICBM과 우주발사체의 연료는 종류가 다르다. 최근의 발사체들은 액체연료를 사용한다. 액체연료 엔진은 비행 중에 추력을 조절할 수 있어 위성을 정확한 궤도에 올리는 데 유리하다.

반면 ICBM 등 군사용 목적의 미사일은 일반적으로 고체연료를 사용한다. 고체연료는 한번 불이 붙으면 끝까지 타는 성질이 있어 미세 조절이 필요 없다. 또 미사일은 동체 내에 연료가 탑재된 상태여서 언제든 발사가 가능하지만 액체연료는 주입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 그동안 선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누리호의 미사일 전용이 어려운 이유다. 그렇더라도 앞으로 고체연료를 개발한다거나 누리호의 액체엔진 기술과 단 분리 기술이 한국형 ICBM 개발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을 비롯한 일본 등이 긴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누리호 발사에서 위성을 목표 궤도에 안착시키지 못한 이유는 3단에 장착된 7톤급 액체엔진의 연소시간이 목표했던 521초보다 46초 앞서 종료됐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연소시간이 짧았던 원인을 찾아 대책을 세우는 일이다. 그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해 내년 5월 2차 발사에서 완벽한 결과를 보인다면 한국은 우주 강국, 군사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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