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 피하려면 ‘PMI 원칙’ 지켜라”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2 10:00
  • 호수 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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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M&A 프리딜ㆍ포스트딜 전략 마련해야”

최근 재계에서 초대형 M&A가 잇따르고 있다. 쌍용차와 대우건설, 아시아나항공, 이베이코리아, 요기요, 이스타항공 등이 매각됐거나 매각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한국M&A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3분기에만 M&A 거래금액이 19조5390억원을 기록했다. 1분기와 2분기까지 합하면 거래금액은 37조2562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8.0% 증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수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다 보니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 같다”면서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인수를 위한 기획 및 실사 단계에서부터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 단계를 M&A 이전에 살펴봐야 할 ‘프리딜(Pre-deal) 전략’이라고 말한다.

인수 이후 추진하는 ‘포스트(Post)’ 전략도 중요하다. 황 교수는 “M&A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 중 하나가 기업 인수 후 통합 작업이다”면서 “하드웨어적 통합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융합시켜 이른바 ‘원팀’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의사결정권자 역시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황 교수와의 일문일답.

ⓒ시사저널 임준선

최근 M&A가 잇따르면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 M&A의 목적 중 하나가 시너지다. 최근 인수 사례를 보면 시너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지역 건설업체인 성정이 법정관리 중인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것만 봐도 그렇다. 전략적으로 어떤 판단에서 인수를 진행했는지 모르겠다. 인수 가격 역시 지나치게 높게 책정됐다. 최근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한 이마트의 경우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로부터 ‘부정적 관찰 대상’ 등급을 받았다. 이런 우려 때문에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기업들은 왜 승자의 저주에 빠지나.

“승자의 저주의 종합선물세트 격인 곳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2000년대 중반 금호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재계 8위까지 순위가 뛰어올랐다. 하지만 2008년 말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룹이 동반 부실에 빠졌다. 대우건설 주가가 급락하면서 재무적 투자자(FI)들에게 갚아야 할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인수 2년 반 만인 2009년 6월 대우건설을 되팔았다.

박삼구 회장은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서 그룹 재건을 추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오히려 대한통운과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등 핵심 회사를 모두 내다 팔았다.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중견기업 수준으로 전락한 상태다.”

무엇이 문제였나.

“오너의 독단 경영이나 무리한 경영철학이 만든 ‘인재’로 본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입찰에 참여할 때 최고평가액을 정하고, 거기서 20% 뺀 후 단 1센트도 더하지 말라’고 말한다. 피인수 기업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모르는 만큼 인수가를 적을 때뿐 아니라 실사 때도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대우건설 주식이 주당 1만4000원 수준이었다. 금호그룹은 90%에 가까운 프리미엄을 붙여 주당 2만6200원에 사들였다.

M&A를 지나치게 차입에 의존했다는 점도 문제다. 당시 금호가 대우건설 인수에 투입한 자금만 모두 6조4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3조5000억원을 FI들로부터 조달했다. 이후 FI들은 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될 것이라는 시그널을 계속 보냈지만 회사 수뇌부들은 무시했다.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곪았던 고름이 터진 것이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기업 M&A를 위한 준비 단계에서부터 전략을 정교하게 짤 필요가 있다.”

M&A 이전뿐 아니라 이후 전략도 중요하지 않나.

“그렇다. 앞서 언급한 사례가 ‘프리딜 전략’이다. M&A 전에 기업이 미리 살펴봐야 할 경영전략이란 뜻이다. 인수 후 통합 작업을 얼마나 잘하는지도 중요하다. 이를 ‘포스트딜(Post-deal) 전략’ 혹은 PMI(Post Merger Integration) 전략이라 한다. 다국적 회계법인 PwC는 최근 전 세계 인수·합병 사례를 조사한 적이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M&A 실패 사유의 35%가 프리딜(실사 단계)에서, 나머지 65%는 ‘포스트 전략’ 부재에서 나온다. 인수 후 예상되는 변화나 정책을 직원뿐 아니라 소비자, 투자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또 각 사업부나 부서별로 통합의 목표나 실현 과제를 공유하고 성과를 주기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과거 STX그룹이 노르웨이의 크루즈 선박 건조회사인 아커야즈를 인수한 적이 있다. 하지만 STX는 얼마 안 있어 회사를 재매각했다. PMI 전략이 전무했던 게 원인이었다. 두 개의 회사를 통합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다. 많은 기업들이 피인수 기업에 기업문화를 강요한다. 피인수 기업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핵심 인력 유출로 인수 시너지를 기대하지 못하게 된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융합이 중요하다는 얘긴가.

“그렇다. SK그룹은 과거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당시 SK그룹의 PMI를 위해 최태원 회장이 직접 하이닉스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이후 최 회장은 하이닉스의 국내외 공장을 수시로 방문했다. 수시로 직원들과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하며 자연스럽게 SK그룹의 기업문화에 스며들게 했다. 이 때문에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 이후 사상 최대 매출을 이어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옛 유공), SK텔레콤(옛 한국이동통신) 등 주력 계열사들이 M&A 방식으로 그룹에 포함된 것도 이 때문이다. SK그룹의 기업문화가 ‘따로 또 같이’다.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는 계열사 CEO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도 포함된 전문가 집단이다. 오너가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소통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신한은행도 마찬가지다. 신한은행은 2003년 조흥은행을 인수했지만, 바로 합치지 않았다. ‘하나의 은행, 새로운 은행(One Bank, New Bank)’이라는 모토 아래 2년여의 시차를 두고 두 조직의 화학적 통합을 추진했다. 이후 M&A 시너지가 커지면서 국민은행을 제치고 리딩뱅크 자리를 차지하는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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