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장기집권 길 닦아주는 ‘젊은 인터넷 전사’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5 10:15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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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7》에 맞서 국뽕 영화 《장진호》 수호 나선 ‘쯔간우’
중국 체제·가치관이 최고라고 선동하며 서구 도발에 앞장

“《007》이 《장진호(長津湖)》에 패배를 안겼다고? 아니, 《장진호》가 이겼다!” 11월1일 중국 SNS에는 이 같은 제목의 포스트가 꾸준히 리트윗됐다. 그 전말은 이렇다. 10월28일 영국 ‘텔레그래프’가 “중국 영화시장에서 일종의 ‘신냉전’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중국에서 상영될 《007 노 타임 투 다이》(이하 《007》) 소식을 전했다. 텔레그래프는 “현재 중국에서는 관객의 애국심을 고양하는 《장진호》가 29일째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29일 개봉되는 《007》이 《장진호》의 아성을 무너뜨릴지가 관심사”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10월31일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를 통해 중국에 전해졌다. 환구시보는 “영국 언론이 중국 시장에서 자국의 스파이 007이 항미원조(抗美援朝·한국전쟁의 중국식 표현)를 배경으로 한 《장진호》에 패배를 안겨주길 바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중국 네티즌들이 들고일어섰다. 중국 네티즌들은 《007》과 《장진호》의 흥행추이까지 일일이 비교하며 “옛 명성에만 기댄 《007》은 《장진호》의 상대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흥미롭게도 이 포스트는 일단의 네티즌들이 주동적으로 리트윗했다.

중국 관객들이 영화 《장진호》가 끝났는데도 극장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웨이보 캡처

당국의 돈 받고 움직이는 ‘우마오’와는 달라

그들은 ‘쯔간우(自乾五)’라고 불리는 젊은 인터넷 전사다. 쯔간우를 알려면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활동해 왔던 인터넷 댓글 부대인 ‘우마오(五毛)’부터 이해해야 한다. 우마오는 중국 당국에 고용돼 한 게시물당 5마오(약 90원)를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다. 중국에서 우마오의 존재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우마오라는 말 자체에서 그들을 조롱하는 뉘앙스가 컸다. 그런데 2018년부터 우마오를 대체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스스로 건량을 가진 우마오(自帶乾糧的五毛)’, 줄여서 쯔간우다. 건량은 중국공산당이 1934년 대장정을 하며 먹었던 휴대음식이다.

그렇기에 쯔간우는 당국의 경제적 지원 없이 스스로 시간과 돈을 써가며 공산당을 옹호하는 애국 청년이라는 의미로 통한다. 실제로 바이두(百度) 백과사전은 이들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전제 아래 이성·역사의식·객관성을 갖고 여론을 주도하는 이’로 정의하고 있다. 관영 ‘광명(光明)일보’는 “쯔간우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펼치는 실천가”라고 규정했다. 그래서일까. 쯔간우는 정치·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SNS로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본래 중국 SNS인 웨이보(微博)·위챗(微信) 등에서는 민감한 정치·사회적 견해는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다.

그러나 쯔간우의 포스트나 영상은 예외다. 이는 해외 언론까지 주목하는 구옌무찬(孤煙暮蟬)의 활동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구옌무찬은 본명이 슈창(舒暢)으로, 639만 명의 웨이보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다. 날마다 수십 개의 뉴스와 동영상을 첨부해 평론하는데 모두 시사성이 있다. 내용은 미국·유럽·일본 등의 정치·경제·사회 문제와 부조리를 비난하고, 반대로 중국을 찬양한다. 구옌무찬의 수많은 포스트는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천 개 댓글이 순식간에 달린다. 지난 7월 광둥(廣東)성 정부가 온라인 문명홍보대사로 선정했을 정도다.

따라서 쯔간우는 우마오와는 전혀 다른 존재다. 비록 지방정부로부터 명예를 수여받지만 돈을 받는 ‘어용’ 알바는 아니다. 애국심에 불타 광분하는 샤오펀훙(小粉紅·작은 붉은 팬덤)이나 펀칭(憤·분노청년) 등과도 차이가 있다. 샤오펀훙과 펀칭은 복잡한 정치·사회 문제에서 오직 감성적 애국심에만 기대어 날뛰는 광팬과 비슷하다. 그렇기에 중국에서도 이들을 조소하는 기류가 있다. 하지만 쯔간우는 바이두가 ‘이성·객관·중립이 특징’이라고 정의할 정도로 나름의 이론과 논리를 갖추고 있다. 구옌무찬의 포스트만 봐도 근거를 제시하고 주장을 전개한다.

《007》과 《장진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전문 데이터까지 찾아내 대응한다. 이런 현실로 인해 쯔간우는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10월21일 영국 BBC는 “쯔간우의 목소리가 국영 언론매체에 종종 소개되어 큰 이목을 끌고, 일부 쯔간우는 국가 행사에 초청받거나 지방정부의 명예대사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쯔간우는 어떻게 형성됐을까? 쯔간우는 1990년대부터 태어나 경제 성장 속에서 자랐다. 또한 1997년 홍콩 반환, 1999년 마카오 반환,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상하이엑스포 등 욱일승천하는 국력을 체감했다.

그래서 1980년대 이전 세대와는 큰 차이가 있다. 중국인은 주입식 애국교육을 받기에 반외세 의식이 강하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서구 세계에 대한 동경도 크게 존재했다. 이는 중국 노년층부터 중장년층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세대는 전혀 다르다. 풍족해진 경제적 환경 덕분에 외국 유학과 해외여행을 쉽게 갔다. 그 과정에서 서구에 대한 환상은 조금씩 깨졌다. 게다가 2001년 9·11 테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등을 겪었다. 미국과 자본주의의 패권에 금이 가고 자유주의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난 현실을 보았다.

이러한 와중에 1990년대 이후 세대의 가슴속에 외세에 수모를 당했던 역사적 치욕은 사라졌고, 자국에 대한 자긍심만 남게 된 것이다. 따라서 쯔간우는 민주주의·인권·다문화주의·페미니즘 등을 부패한 서구적 가치라고 규정하고 공격한다. 중국의 전통문화, 중국식 체제와 가치관이 최고라고 선동한다. 문제는 중국에서 해외의 다양한 뉴스와 소식이 차단되면서 그들의 주장이 광범위하게 먹히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당국은 주요 해외 언론의 홈페이지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구글과 유튜브, 카카오톡과 네이버 카페 및 블로그까지 모두 봉쇄했다.

ⓒ웨이보 캡처
대표적인 쯔간우인 ‘구옌무찬’의 웨이보ⓒ웨이보 캡처

티베트 등 소수민족 젊은이들까지 경도돼

더욱 주목할 점은 티베트인·위구르족 등 반중(反中) 성향이 강했던 소수민족 젊은이들까지 경도되는 현실이다. 모델로 일하는 위구르족 쑤비(여)가 대표적이다. 그는 필자에게 “일본·동남아 등을 다녀봤지만 중국만큼 살기 편한 나라가 없는 것 같다”며 “나날이 커지는 조국의 위상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예전에는 중국어를 학교에서 가르쳐 배웠지만, 지금은 한족만큼 잘하고 싶어 스스로 공부한다”며 “대다수 위구르족 젊은 세대도 같은 생각”이라고 밝혔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 울타리 안에서 얻는 경제적 이득이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쯔간우의 활동도 마찬가지다. 중국 당국은 쯔간우가 활약할 수 있는 여러 매체나 공간을 마련해 주고, 광고와 유료 콘텐트를 통해 수익을 얻게 해준다. 우마오처럼 직접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큰 간접효과를 얻을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그렇기에 쯔간우는 앞으로 더 많이 늘어나고 더욱 맹렬하게 활동할 공산이 크다. 게다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장기집권과 맞물리면서 이들의 보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완수를 내세워 집권을 연장하려는 시 주석의 입지를 쯔간우가 앞장서 닦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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