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색인종 작가의 ‘생명의 위협’ 호소에 갈라진 獨 사회 목소리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5 11:00
  • 호수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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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극우 출판사 참여 두고 갈등
“나치 위한 공간 허락 안 돼” vs “의견의 자유 수호할 의무”

지난 10월24~27일 세계 최대 규모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열렸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거의 디지털로만 이뤄졌던 지난해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대면으로 진행된 이번 북페어는 ‘다시 만남’에 의의를 두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합쳐 2013개 업체만 참여한 이번 전시회는 평균 100여 개국에서 7500개사가 참여했던 예년 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았다. 방문객 또한 30만 명에 육박하던 숫자에서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7만350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올해 전시회의 모토인 ‘re:conn ect’답게 관계자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반가움은 컸다. 이처럼 작지만 반가움으로 가득 찬, 그리고 2년 만에 개최돼 책과 관련된 사람들을 다시 한자리에 뭉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됐던 도서전은 개최를 얼마 앞두지 않고 큰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설치된 극우 성향의 출판사 부스ⓒ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유튜브 캡쳐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설치된 극우 성향의 출판사 부스ⓒ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유튜브 캡쳐

“인종차별은 ‘의견’에 해당하지 않는다”

시발점은 작가 야스미나 쿤케(Jasmina Kuhnke)가 자신의 SNS에 올린 입장문이었다. 쿤케는 10월22일 독일 제1공영방송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깜짝 게스트로 등장해 자신의 데뷔작 《검은 심장》을 소개할 예정이었다. 쿤케는 어머니가 크로아티아, 아버지가 세네갈 출신으로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유색인종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평소에도 극우세력에게 위협받는 처지라고 스스로 밝혀왔다. SNS상에서 극우파들은 그를 나라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몰아세우고 있으며, 실제로 위협을 받아 이사를 한 경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깜짝 등장은 안전 등의 이유로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그런데 도서전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그는 극우세력이 운영하는 출판사가 제2공영방송의 무대 바로 옆에 부스를 세우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그에게 이 소식은 평소 받던 생명의 위협이 한 걸음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을 의미했다.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의 책을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기하고 도서전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측은 언론 발표를 통해 “도서전은 의견의 자유를 수호할 의무가 있다”며 특정 출판사나 서적이 불법이라고 판명되지 않은 한 도서전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른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쿤케는 자신의 입장문에서 “인종차별주의는 ‘의견’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견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보호받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그는 “나치를 위한 공간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도서전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신변의 위협을 받지 않고 특권을 누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바란다”는 비꼬는 듯한 말로 글을 맺었다.

쿤케의 입장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와 연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전시회 참가 의사를 철회한 유명인도 하나둘 나타났다. 쿤케와 마찬가지로 독일 내 유색인종으로서의 경험을 책으로 낸 니케아타 톰슨(Nikeata Thompson)이 대표적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최고 가치는 의견의 자유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평등권, 연대, 그리고 지지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극우세력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도서전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플루언서이자 연예계 활동을 겸하고 있는 리카르도 지모네티(Riccardo Simonetti) 역시 연대 의사를 밝히며 도서전 참가를 취소했다. 쿤케와 같은 사람이 참가를 취소해야 하는 곳이라면 자신 역시 편한 마음으로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문화계뿐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소재의 안네-프랑크 교육관 역시 쿤케와 연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의견의 자유라는 허울 뒤에 숨지 말고 입장을 명확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도서전 측은 이러한 입장 표명 요구에 끝내 응하지 않았다. 독일 일간지 타게스차이퉁은 도서전 측이 처한 현실적인 상황을 이유로 들었다. 도서전은 주최 측이 출판사를 선별해 초대하는 형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에서 돈을 내고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특정 출판사가 배제된다면, 이는 법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빌미가 된다. 배제당한 출판사가 형법상 불법인 내용을 출판한다는 것이 법정에서 증명돼야 한다. 이러한 법적 이유로 도서전 측에서는 정치적인 사상을 근거로 특정 출판사를 제외하는 일에 난처함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안네-프랑크 교육관장인 메론 멘델 박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도서전을 비판했던 교육관의 공식 입장과는 별개의 논지를 펼쳤다. 그는 쿤케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와 연대한다는 입장으로 글을 시작했다. 하지만 도서전을 보이콧하자는 의견 또한 존중하지만, 그것이 극우에 대항하는 유일한 길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은 극우에 ‘직접적으로’ 맞서는 방식을 택하겠다고도 덧붙였다. 타게스차이퉁의 문학편집장 역시 이에 동조하며 “보이콧을 하게 되면 현장에서 극우에 맞서는 목소리가 오히려 축소되므로, 보이콧은 연대의 올바른 형태가 아니다”는 입장을 보였다.

SNS상에서 사방으로 터져 나오는 보이콧 압박에 다른 작가들도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 예로 야고다 마리니치(Jagoda Marini)의 경우, 도서전에 참가했지만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는 비판과 공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작가 티젠 오나란(Tijen Onaran) 역시 “모든 담론이 결국 흑인 대 백인, 청년 대 노인, 남성 대 여성과 같은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빠지고 있으며, 어느 쪽을 선택해도 비판을 받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성 논쟁이 좀 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바란다”는 의사를 밝혔다.

극우세력의 참여를 허락한 도서전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한 작가 야스미나 쿤케ⓒJasmina Kuhnke 인스타그램
극우세력의 참여를 허락한 도서전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한 작가 야스미나 쿤케ⓒJasmina Kuhnke 인스타그램

극우 바라보는 독일 사회의 미묘한 시각차

이번 사태로 인해, 독일 사회 내 극우에 대한 미묘한 인식의 변화가 감지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에는 이른바 ‘가짜뉴스 방지법’도 있으며, 극우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도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같이 소수에 속하는 작가를 보호하는 일을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 정도로 치부하는 현상 또한 함께 나타나고 있다.

도서전은 2017년 이미 극우 출판사의 참가로 인해 한 차례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 2017년은 극우 정당인 대안당이 처음으로 연방하원에 입성한 해다. 이때도 극우 계열 출판사들은 도서전 참가를 강행했다. 하필 대안당의 지도자 비요른 회케(Bjrn Hcke)가 초청되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극우 정당 소속 정치인이 초청된다는 소식에 100여 명이 결집해 반대시위를 했고, 이는 곧 폭력 사태로까지 번졌다. 이때만 해도 독일 사회 내에서 극우에 대한 목소리는 강하게 통일됐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작가와, 그를 위협하는 주체를 같은 공간에 넣으며 ‘의견의 자유’를 주장하는 여유는 적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2017년과 2021년의 독일 사회에 다양성 논의와 극우세력의 득세라는 상반된 시각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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