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은 과연 예능을 구원할까
  • 정덕현 문화 평론가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3 11:00
  • 호수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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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게 돌아온 서바이벌 예능들,
성공 가능성은 “글쎄…”

최근 방송가는 서바이벌 장르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과거에도 오디션 프로그램과 함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시도된 바 있지만, 그때와는 달리 지금의 서바이벌은 훨씬 독해졌다. 그런데 독해진 만큼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 걸까. 

ⓒMBC
MBC 《피의 게임》의 한 장면ⓒMBC 제공

《피의 게임》, 이거 지상파 예능 맞아? 

‘최후의 1인만이 상금을 독차지한다!’ MBC 《피의 게임》을 소개하는 이 문구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최근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목숨을 걸고 참가하는 게임의 룰이 바로 그것이니 말이다. 물론 그 차이는 《오징어 게임》은 허구이고, 《피의 게임》은 실제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게임에서 진다고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고, 최종 승자가 된다고 456억원 같은 어마어마한 상금이 주어지지도 않는다. 대신 게임에서 지면 탈락하고 최종 승자에게 최대 3억원이 지급되지만, 그것이 실제 치열하게 맞붙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그 몰입감은 훨씬 높아진다. 

《피의 게임》이 놀라운 건 이 프로그램이 스스로 내세우고 있는 게임의 성격이다. “피의 게임은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게임입니다. 정치, 음모, 배신 모두 다 가능합니다. 생존을 위한 어떠한 행동도 가능합니다.” 이 말은 사실상 이기고 생존하기 위한 어떤 선택들도, 게임이라는 상황 속에서는 정당화된다는 뜻이다. 게임을 하기 위해 이른바 ‘피의 저택’에 모인 10명의 참가자는 시작부터 이 살벌한 룰을 실감하는 첫 번째 챌린지를 경험한다. 그것은 서로 잘 모르는 상황 속에서 투표를 통해 탈락자를 정하는 것. 

놀랍게도 그 짧은 순간에 배신과 음모가 남모르게 진행된다. 한 참가자에 의해 말수가 유독 적었다는 이유로 대학생 이나영이 희생양으로 은근히 지목되고, 참가자들은 자신의 선택이 갖는 죄책감을 상쇄하기 위해 그를 찍음으로써 결국 탈락자가 된 것. 이런 배신과 음모는 이튿날에도 또 벌어진다. 사실상 ‘마피아 게임’을 변형해 킹과 퀸을 찾아내는 그 챌린지는 게임을 풀어나가는 것보다 누가 누구와 동맹이 되고, 또 누가 누구를 배신하느냐에 따라 탈락자가 결정됐다. 

《피의 게임》은 이처럼 게임을 풀어가는 재미보다는 이 서바이벌에서 생존하기 위해 정치를 하고 음모를 꾸미고 동맹인 척했다가 배신하기도 하는 그 과정들에서 재미를 찾는다. 이건 지상파인 MBC라는 플랫폼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대담하거나 혹은 무모해 보이는 소재와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기기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정당화하는 게임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게다가 《피의 게임》은 게임에서 저들의 배신과 음모로 탈락자가 된 이들에게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 다시 지상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계급적 상황을 공간으로 풀어냈던 《기생충》의 서사를 그대로 가져온 것. 결국 지하 공간으로 떨어진 이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지상의 참가자들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가며 지상을 호시탐탐 노리게 게임의 구조를 만들었다. 이 역시 지상파 예능이 맞나 싶을 정도의 역대급 매운맛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알다시피 《피의 게임》은 2021년 4월부터 5월까지 유튜브에서 방영됐던 《머니게임》에서 출발한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진용진이 《피의 게임》 연출진으로 참여했다. 유튜브 버전을 지상파 버전으로 끌고 온 것. 그래서 《피의 게임》의 이러한 자극적인 구조는 사실상 《머니게임》의 그것을 따르고 있는 데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워낙 자극적인 데다, 이 역시 거짓말이나 음모 같은 것들이 가능해 참가자들의 인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프로그램이다. 즉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아니었다면 탄생하기 어려웠을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가짜 사나이》 이후 생겨난 자극적인 서바이벌 

《머니게임》처럼 여러 유튜버가 참여해 자극적인 서바이벌을 하는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게 된 건, 여러모로 《가짜사나이》의 성공이 촉발한 면이 크다. 이전까지 유튜브 콘텐츠들은 대부분 1인 미디어라는 게 일반적인 등식이었다. 하지만 《가짜사나이》는 여러 유튜버가 하나의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일종의 ‘블록버스터’ 유튜브 콘텐츠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가짜사나이》는 ‘진짜가 되려는 가짜들의 도전’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특수부대 훈련을 체험하며 끝까지 살아남는 유사 서바이벌 장르를 구사했다. 시즌1의 성공으로 시즌2가 제작됐는데, 여기에 김병지나 줄리엔 강, 샘김, 손민수 같은 유명인 혹은 연예인들까지 참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광고와 협찬까지 붙었다. 워낙 논란이 크게 벌어지면서 중도에 유튜브 방송이 중지됐지만 그 콘텐츠는 카카오TV에서 방송을 마무리했다. 유튜브 콘텐츠가 규모를 키움으로써 레거시 미디어들의 콘텐츠만큼 반향과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이후 성공을 거둔 유튜버들이나 기획자들은 카카오TV나 다이아TV 같은 웹 미디어와 결합하면서 다양한 서바이벌 콘텐츠를 내놨다. 유튜버 꽈뚜룹의 《공범》은 상금 1억원을 두고 벌이는 추리게임을 선보였고, 《가짜사나이》 배철순 CP가 새로이 내놓은 《파이트클럽》은 14명의 참가자가 1억1000만원의 파이트머니를 걸고 벌이는 격투 서바이벌을 카카오TV를 통해 내놨다. 올해 말 카카오TV에 공개될 예정인 《생존 남녀》는 그 제작진의 면면이 흥미롭다. MBC 《진짜사나이》를 만들었던 김민종 CP가 연출 총괄을 맡고, 《가짜사나이》 배철순 CP, 《와썹맨》 이건영 PD가 공동연출을 맡았다. 역시 마지막까지 생존하는 이에게 1억원의 상금이 돌아가는 서바이벌이다. 

과거 지상파들은 케이블 채널에서 성공한 포맷을 가져와 프로그램을 만들어 비판받은 시절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Mnet 《슈퍼스타K》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오디션 트렌드가 형성된 후 MBC가 《위대한 탄생》을 시도했고, tvN이 일련의 나영석표 여행 예능을 하나의 트렌드로 만들었을 때 지상파들이 유사 여행 예능 프로그램들을 쏟아낸 것이 그 사례들이다. 

하지만 지상파를 포함한 케이블, 종편 등 이제는 기성 미디어가 된 플랫폼들이 들여다보는 건 유튜브 같은 웹 예능, 그중에서도 서바이벌이다. 《머니게임》이 《피의 게임》이 돼 MBC에서 방영되는 상황이 그렇고, 《가짜사나이》가 성공한 후 떠오른 밀리터리 서바이벌이라는 소재는 tvN 《나는 살아있다》를 통해 여성 밀리터리 서바이벌로 이어졌으며, 채널A 《강철부대》로 재해석되면서 역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 《강철부대》의 성공은 MBC 《극한 데뷔 야생돌》처럼 오디션에 서바이벌을 더한 이색적인 조합으로도 만들어졌다. 밀리터리 서바이벌은 이제 SBS가 올해 말 방영을 목적으로 찍고 있는 《더 솔져스》로 이어질 전망이다. 《강철부대》와의 차별점으로 ‘글로벌’을 내세운 《더 솔져스》는 한국은 물론이고 영국, 스웨덴, 미국 등 각국 특수부대 출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한 장면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한 장면ⓒMnet 제공

웹 콘텐츠에 영향받는 기성 플랫폼 

물론 2010년대 들어 《슈퍼스타K》 신드롬으로 시작해 최근까지 예능 트렌드로 자리한 오디션 프로그램들 역시 출연자들의 서바이벌이라는 점에서 서바이벌 예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워낙 음악 오디션에 특화된 트렌드로 이어져 왔다는 걸 염두에 두고 보면, 상대적으로 혹독한 야생이나 게임에서 살아남는 서바이벌 예능은 거의 없다시피 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형태는 2011년 KBS에서 시도된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 정도가 거의 유일할 정도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음악이 아닌 다른 소재들을 좀 더자극적으로 다루는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최근 들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는 건 이것이 또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지금 지상파, 케이블, 종편 나아가 웹TV, 유튜브를 막론하고 서바이벌은 방송의 굳건한 경향으로 세워지고 있다. 최근 가장  크게 성공을 거둔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도 결국 음악 오디션에 좀 더 강력한 서바이벌 요소들을 더한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채널A 《강철부대》도 마찬가지다. 밀리터리 서바이벌을 예비역들(미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가짜사나이》와 달랐던 지점이다)을 통해 선보였기 때문에 더 강력한 자극이 가능했던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성공 사례들을 보면 마치 서바이벌 장르는 성공 보증수표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과연 현실도 그럴까. 

MBC 《피의 게임》은 ‘역대급’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내세우며 시작했지만 첫 회 1.8%(닐슨코리아) 시청률에 머물렀고 2회는 1%로 떨어졌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물론 콘텐츠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들이 나오지만, 이보다 중요한 건 콘텐츠와 플랫폼의 매칭이 그만한 효과를 내지 못한 면이 있다는 점이다. 즉 《피의 게임》 같은 자극적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유튜브 같은 웹에서라면 훨씬 큰 반향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MBC라는 지상파 플랫폼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색깔을 갖고 있어 그만한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카카오TV 《파이트클럽》의 한 장면ⓒ카카오TV 제공

카카오TV가 《가짜사나이2》를 끝까지 방영하고, 그 제작진을 끌어모아 《파이트클럽》에 이어 《생존남녀》까지 제작하고 있는 건 이런 플랫폼의 성격과 맞아떨어져 가능해진 부분이다. 사실 《파이트클럽》처럼 스포츠로 포장돼 있던 격투기를 그 포장지를 떼어내고 오히려 ‘싸움’으로 그려낸 서바이벌은 지상파나 케이블에서는 시도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콘텐츠다. 하지만 《파이트클럽》은 자극적인 설정과 연출에도 웹예능이라는 플랫폼 포지션과 맞아떨어지면서 누적 조회 수 1500만에 5주간 폭발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대미를 장식했다. 

즉 서바이벌 장르는 지금껏 기성 미디어들이 그 플랫폼 성격 때문에 감히 열어보지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나 다름없다. 유튜브 콘텐츠가 그 상자를 열었고, 웹TV들은 이 피 튀기는 자극들을 끌어와 일련의 성공 사례들을 만들었고 이제는 기성 미디어들도 플랫폼 성격에 맞게 순화된 서바이벌 예능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한 번 열려 버린 자극은 갈수록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이미 플랫폼을 망라해 스며들어온 서바이벌의 요소들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자극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관찰카메라 아니면 서바이벌로 가고 있는 예능의 양상은 기발하고 색다른 아이디어보다 자극의 강도로 방향을 튼 느낌이다. 서바이벌은 정체된 예능가에 당장의 강장제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도 너무 많이 마시면 피로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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