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디젤차 시대, 요소수가 방아쇠 당기다
  • 박성수 시사저널e. 기자 (holywater@sisajournal-e.com)
  • 승인 2021.11.16 10:00
  • 호수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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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차 비중 2015년 45.9%→2021년 17.8%…신규 전기차 수요 커지며 체제 전환 급가속

중국발(發) 요소수 대란으로 인해 국내 산업계가 한 차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디젤 자동차 운행에 꼭 필요한 요소수의 품귀 현상으로 화물차와 버스, 택배차뿐 아니라 구급차나 소방차가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모든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상용차 운행 중단에 따라 물류·교통대란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철강·건설·시멘트·석유화학·조선업계는 제품을 생산할 때 필요한 요소수의 재고가 바닥날 경우 공장을 멈춰 세워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해외 각국에서 요소수 조달에 나섰고, 중국이 이미 수출하기로 계약된 요소수 물량을 풀기로 하면서 당장 급한 불은 끄게 됐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저널 박정훈
요소수 품귀 현상으로 물류대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11월8일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에서 화물트럭 기사가 빈 요소수 통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요소수 대란으로 전기차 시계도 빨라진다

전문가들은 요소수 사태로 국내 디젤 차량 퇴출 속도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디젤차는 그동안 높은 연비와 토크로 오랜 기간 인기를 끌었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경유차량을 ‘클린 디젤차’라 홍보하며 가솔린 차량에 비해 친환경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는 당시 디젤차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솔린차보다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를 들며 경유차를 친환경차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2015년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 일명 ‘디젤 게이트’ 사태가 터졌다. 국내에선 지난 2018년 BMW 디젤차에서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결함으로 인한 ‘화차(火車) 게이트’까지 터지면서 디젤차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악화됐다. 경유차가 미세먼지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또한 디젤차가 가솔린차보다 질소산화물을 23배 이상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디젤차에 대한 인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은 환경규제를 강화하며 디젤차 퇴출을 선언하기도 했다. 완성차 기업들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디젤차 생산을 점진적으로 줄여 나갔다. 자동차 조사기관인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승용차 시장 내 디젤차 판매 비중은 45.9%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16년에는 40.9%, 2017년 36.7%, 2018년 35.6%, 2019년 28%, 2020년 24%까지 떨어졌다. 올해 1~10월에는 17.8%로 급락했다. 화물차 등 상용차를 포함하더라도 디젤차 점유율은 2015년 52.5%에서 올해 25.4%로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 요소수 대란은 디젤차 퇴출의 기폭제가 됐다. 실제 요소수 사태 이후 자동차업계 일선에선 디젤차를 기피하는 현상이 급증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아차 영업사원은 “최근 영업점에 요소수 관련 문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백 통씩 오고 있다”며 “디젤차를 구매하기로 한 계약자 중 상당수가 계약을 취소하거나 다른 모델로 갈아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반도체 대란으로 차량 출고가 지연되고 있는 고객이 많다. 이 중 디젤차를 계약한 고객들은 이참에 계약을 취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디젤차 비중이 높은 한 수입차 딜러 역시 “수입차의 경우 요소수를 꽉 채워서 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로 불안감이 커지면서 고객들이 동요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디젤차 종말은 정해진 수순이며, 이번 사태로 인해 국내에서 퇴출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디젤차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강화하고 생산 중단을 장려하고 있다”며 “국내에선 요소수 사태로 인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점점 더 디젤차를 꺼리게 될 것이고, 당분간 가솔린차나 하이브리드차가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완성차 기업들은 전기차 전환에 ‘풀액셀’을 밟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2035년 이후 내연기관차 생산과 판매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GM은 2025년까지 전 세계에 30종 이상의 전기차를 출시하고, 향후 5년간 연구·개발에 270억 달러(약 31조90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30년부터 전 차종을 전기차로 출시하기로 했으며, 배터리 전기차 부문에만 400억 유로(약 54조75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신차 절반을 전기차로 판매할 계획이며, 2035년에는 유럽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한다. 볼보는 2030년까지 생산하는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전환할 예정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전기차 대중화 시대

현대자동차그룹은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전동화의 선봉에 나선다. 제네시스는 2025년부터 출시하는 모든 신차를 전기차와 수소차로 내놓을 계획이며, 2030년에는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고 전기차·수소차만 생산·판매할 방침이다. 현대차는 올해 초 디젤 엔진 신규 개발을 완전 중단하기로 했으며, 디젤 엔진 생산도 점진적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제네시스는 G70, G80 디젤 모델의 경우 지난 10월부터 신규 계약을 중단했으며 코나, 셀토스 디젤 모델 등도 생산을 멈췄다. 현대차는 전동화 비중을 오는 2030년 30%, 2040년 80%까지 높일 계획이다. 유럽에선 2035년부터 전기차만 판매하고, 2040년에는 미국과 한국 등 주요 시장에서 순차적으로 모든 차량의 전동화를 완료할 방침이다.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전기차 구매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테슬라를 시작으로 긴 주행거리와 첨단 기술을 탑재한 전기차가 계속 나오고 있는 데다 올해는 현대 아이오닉5, 기아 EV6, 제네시스 GV60 등 국산 전기차가 연이어 출시되며 전기차에 대한 여론이 반전되는 추세다.

아이오닉5, EV6의 경우 폭발적인 인기로 주문이 밀리면서 대기 기간만 6개월 이상이며,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판매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수입차의 경우 테슬라 모델3·모델Y와 같이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저렴한 전기차는 물론, 1억원이 넘는 포르쉐 타이칸도 완판되며 전기차 전환이 빨라지는 추세다. 특히 올 연말에는 국내 수입차의 양대 산맥인 벤츠와 BMW에서 각각 EQS, iX·iX3 등 전기차 모델을 내놓을 예정이며 내년 초에는 폭스바겐의 ID.4도 출시를 앞두고 있어 전기차 대중화가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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