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호의 K리그 성공신화’ 주시하는 유럽파들의 시선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2 15:30
  • 호수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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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저니맨’에서 K리그 ‘톱’으로…이승우도 K리그행 고민 중

11월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의 경기는 올 시즌 우승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한판 승부였다. 승점이 67점으로 같은 두 팀은 시즌 마지막 맞대결을 펼쳤다. 승리를 가져가는 팀이 3경기를 남겨놓은 우승 경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경기 내내 중원을 휘젓고 다닌 것은 녹색 유니폼에 등번호 5번을 단 전북의 미드필더 백승호였다. 올 시즌 내내 울산의 미드필드진에 밀려 네 번의 맞대결에서 2무2패를 기록한 전북은 이날만큼은 우세한 중원 싸움을 펼쳤다. 그 중심에는 올 시즌 미드필드 중앙을 든든하게 지탱하는 백승호가 있었다. 결국 전북은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스트라이커 일류첸코의 결승골에 힘입어 울산에 3대2로 승리했다.

(왼쪽)백승호, 이승우ⓒ연합뉴스·신트트라위던 홈페이지
(왼쪽)백승호, 이승우ⓒ연합뉴스·신트트라위던 홈페이지

진통 끝에 K리그 입성, 반년 만에 전북의 에이스로 재기

팀의 레전드인 김상식 감독이 부임하며 변화를 맞은 전북의 최대 고민은 팀의 엔진이었다. 미드필더진 대다수가 30대인 탓에 기동력 싸움에서 밀리며 5월부터 고비를 맞았다. 테크니션은 즐비했지만 중원 싸움을 이끌 에너지를 발산할 선수가 없었다. 백승호가 그 역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전북도 다시 1위 싸움에 시동을 걸었다.

백승호는 지난 3월, 독일 2부 리그의 다름슈타트를 떠나 전북 입단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거 유소년 시절 지원금을 제공한 수원 삼성과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인 것이 뒤늦게 알려져 큰 논란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전북이 선수생활의 위기에 놓인 백승호 영입을 원안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두 달여의 긴 진통 끝에 백승호가 수원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반납했다. 위약금 성격의 합의금을 추가하고, 사과를 담은 입장문까지 내놓으면서 극적으로 K리그에 입성할 수 있었다.

힘겹게 전북 유니폼을 입었지만 K리그 적응은 순탄치 않았다. 코로나19 자가격리 여파에다 수원과의 갈등으로 이적이 마무리되지 않아 두 달 가까이 팀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며 체력과 경기 감각이 뚝 떨어졌다. 데뷔전을 치른 뒤 11경기 중 풀타임 출전이 네 번밖에 되지 않았다. 경기력이 회복되지 않자 결국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도쿄올림픽 최종 명단에서도 탈락하는 좌절을 맛봤다.

올림픽팀 탈락은 오히려 터닝포인트가 됐다. 소속팀으로 돌아온 백승호는 6월25일부터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2021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 나섰다. 2주 동안 6경기를 치르는 살인적 일정 속에서 백승호는 지속적인 출전을 통해 체력과 경기 감각을 되찾았다. 8월말부터 백승호는 11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했다. 9월에는 수원·광주·인천을 상대로 3경기 연속 골을 터트렸다. 김상식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대체 불가능한 팀의 에이스로 거듭난 것이다.

결국 지난 10월 열린 시리아·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2연전을 위한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벤투호에 2년 만에 승선한 것이다. 11월 UAE·이라크와의 2연전을 위한 명단에도 뽑혔다.

 

못 뛰는 유럽파보다 뛰는 K리거가 낫다

백승호의 부활은 유럽파의 K리그 복귀에 대한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백승호는 이승우·이강인 등과 함께 유럽파 3세대로 꼽힌다. 1세대는 한국의 선수 육성 시스템에서 성장해 20대 초반 유럽 무대로 진출해 성공한 박지성·이영표·이청용·기성용 등이다. 2세대는 10대 중후반에 일찌감치 넘어가 유럽 내 선수 육성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1군에 진입한 손흥민·황희찬을 꼽을 수 있다. 3세대는 아예 10대 초반에 건너가 유럽의 유소년 시스템 안에서 온전하게 자란 경우다. 백승호를 비롯해 이승우·장결희 등 바르셀로나 3인방이 대표적이다. 이강인도 만 10세에 불과하던 2011년 발렌시아 유소년팀에 입단해 10년간 몸담았다.

유럽파 3세대에 대한 기대는 특별했다. 기준이 높은 유럽 명문 클럽 스카우트의 눈에 들어 발굴된 영재들이 잠재력을 폭발시킬 것으로 봤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3인방은 한창 성장해야 했던 2014년 FIFA(국제축구연맹)로부터 유소년 영입 규정 위반 판정을 이유로 2년간 공식전에 나서지 못하는 징계를 받았다. 그 결과 커리어가 크게 꼬였고, 성인이 되면서 바르셀로나가 아닌 스페인 2부 리그나 유럽 내 다른 리그 팀으로 옮겨가는 저니맨의 행보를 이어가게 됐다.

백승호는 전북 입단 전까지 페랄라다와 지로나(이상 스페인), 다름슈타트(독일)를 전전했다. 그 과정에서 팀 상황과 감독의 시각에 따라 포지션을 이리저리 옮기며 주전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안정된 상황에서 꾸준히 경기를 소화하고 싶었던 백승호는 K리그로 돌아오는 결단을 내렸고, 그 선택은 적중했다. 후반기 들어 백승호는 전북을 넘어 K리그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올라섰다. 성인 무대에 진입하고 가장 눈부신 시간을 유럽이 아닌 국내에서 열고 있는 것이다. 전북은 2020 시즌 리그 MVP였던 손준호가 중국 무대로 떠난 공백을 메웠고, 대표팀은 정우영·황인범과 함께 미드필드를 탄탄히 할 자원을 확보했다.

백승호의 화려한 부활은 유럽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또 다른 선수의 국내 복귀를 부채질하고 있다. 벨기에 신트트라위던에서 뛰고 있는 이승우다. 이승우 역시 바르셀로나와의 성인 계약이 불발된 뒤 엘라스 베로나(이탈리아), 포르티모넨스(포르투갈)를 거쳤지만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했다. 2019년 여름부터 몸담고 있는 신트트라위던(벨기에)에서 상황이 가장 좋지 못하다. 올 시즌 공식전에 단 1분도 나서지 못했다. 최근 8경기에는 아예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이승우도 백승호처럼 지난해 겨울 국내 복귀를 추진했지만, 최종적으로 유럽 잔류를 택했다. 하지만 포르투갈 무대로 임대를 떠나는 과감한 변화에도 상황을 바꾸지 못하고 벨기에로 돌아왔다. 2년6개월 동안 소속팀에서 입지를 굳히지 못하며 A대표팀에서도 제외된 지 오래다. 타이밍이 더 늦어진다면 재기조차 어려워질 수 있는 시점이다.

결국 이승우는 최근 K리그행을 본격적으로 노크하는 모습이다. 에이전트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수원 삼성·수원FC 등 복수의 구단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승호가 유럽 무대를 뒤로하고 K리그 복귀를 선택하며 화려하게 부활한 것처럼, 이승우도 국내 리턴을 통한 또 한 번의 성공 케이스를 만들길 원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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