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표류하는 중고차 정책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7 13:00
  • 호수 1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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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매매업자 반발에 소비자 권익은 ‘뒷전’
정책이 ‘이해관계 정치’의 산물은 되지 말아야

선거는 일종의 심판이다. 정부는 집권 기간 동안 시행했던 정책의 성패를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심판받는다. 그러나 선거는 동시에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가 정책을 왜곡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정치적 목적 때문에 정책이 흔들릴 때 좋은 정책이 구현되기는 어렵다.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 문제는 지난 3년간 자동차 산업의 현안 중 하나였다. 중고차 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것은 지난 2013년이었다. 그 뒤에도 정부는 적합업종 지정을 3년에 걸쳐 두 번 연장하면서 6년간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금지했다. 그러다 관련 제도가 일몰됐고, 중고차 매매업은 2019년 2월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해제됐다. 하지만 직후 생계형적합업종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겼다. 생계형적합업종은 영세업체 중심의 업종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대기업·중견기업의 시장 진입 금지를 원칙으로 한다. 금지 규정을 위반하면 시정명령을 통해 대외에 공표할 수 있고, 명령 불이행 시 매출액 가운데 최대 5%를 ‘이행강제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대기업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판매업 진출 여부 결론이 3월 이후로 미뤄진 가운데 3월2일 서울 성동구 중고차 매 매시장에 중고차들이 진열되어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중고차 정책은 왜 잘못됐나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2019년 동반성장위원회에 중고차 판매업에 대한 생계형적합업종 추천을 요청하고, 중소벤처기업부에 지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동반성장위는 그해 11월6일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적합업종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중기부에 제출했다. 산업 경쟁력과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다. 규정대로라면 다음 순서는 정해져 있었다. 특별법에 따르면 중기부 장관은 동반성장위원회가 생계형적합업종 지정을 추천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심의위 심의와 의결에 따라 적합업종을 지정·고시해야 한다. 부적합 판정을 한 동반성장위원회의 보고서가 나온 만큼, 중기부는 심의위원회에 넘겨 결론만 내리면 끝나는 문제였다.

하지만 중기부는 심의위원회에 관련 문제를 올리지 않고 지체시켰다. 중기부가 결정을 미루는 사이 정치권이 움직였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서 상생협력위원회를 결성해 논의를 시작했지만 중재에는 실패했다. 중기부는 지난 1월 3년 만에 처음으로 심의위원회를 개최했지만 이번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다시 대선 이후인 3월로 결정을 연기했다. 일부 소비자단체는 현재 중기부의 결정 지연과 관련해 감사원 감사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생산 규모나 신차 판매 대수에 대비해볼 때 중고차 유통시장의 기본 구조나 운영 시스템은 원시적이다. 일반 소비자는 중고차 매매시장에서 구매자인 동시에 판매자이기도 하다. 불공정한 거래 관행과 불투명한 가격의 피해를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다. 허위 또는 미끼 매물은 여전히 많고, 심지어 침수된 차나 심각한 사고차가 정상적인 중고차처럼 소비자를 현혹하기도 한다.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매매사원도 많다. 이들은 사실상 무직자 신분으로 영업활동을 하고 있어 변칙·탈법 행위를 할 우려도 크다. 성능점검 미고지, 품질보증 미시행 등의 문제도 있다.

국내 중고차 시장의 규모는 내부거래 등을 포함해 380만 대 정도라고 한다. 실질적인 소비자 거래만을 보면 약 250만 대 규모다. 신차 시장보다 조금 많은 정도지만 선진국의 경우, 신차 대비 중고차 판매량이 약 2~3배다. 완성차업계의 경우 상대적인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수입차는 이미 10년 전부터 인증 중고차 시장 진출로 신차와의 리사이클링 효과를 통해 수입차 점유율을 더욱 높이고 있다. 실제로 선진국 가운데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막는 나라는 없다.

중고차 산업에는 단순히 차량 매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고차 매입부터 진단평가, 정비와 세차, 광택, 탁송은 물론 중고차 캐피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가 있다. 중고차 매매업계는 중고차 시장에 국내 완성차 대기업이 진출할 경우 물량 및 가격 통제를 견제하거나 제어할 방법이 없고, 소상공인들의 대규모 실업이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경쟁이 해제될 경우 일부 영세업자의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이 크지만 조금이라도 영세업자의 피해가 예상된다면 나름의 보완 대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대기업의 참여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법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대기업의 시장 점유율에 한도를 두거나 대상 차량의 연식이나 주행거리를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생협력위원회가 만든 중재안도 연간 약 250만 대 거래대수를 기준으로 완성차업계는 최대 10%의 시장 점유율까지만 영업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2019년 2월부터 시작된 논의가 3년을 끌었다. 지금까지 결정이 미뤄진 이유는 흔히 말하는 ‘정무적’ 판단이었을 것이다. 2020년에는 총선이 있었고 2021년에는 재보선, 그리고 지금은 대통령선거가 있다. 투표일인 3월9일 이후에는 가능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6월에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동반성장위원회의 합리적인 권고와 많은 소비자의 바람에도 중고차 매매업자들의 거센 반발이 정책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정책이 왜 잘못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선진국 중 완성차업계 막는 곳은 한국뿐

경제학에는 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이라는 개념이 있다. 변화가 일어나도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효용이 늘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이상적인 상황이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정책은 거의 모든 경우 어떤 집단에는 이득을, 다른 집단엔 손해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시되는 정책 판단의 잣대가 이른바 칼도-힉스 기준(Kaldor-Hicks criterion)이다. 정책에서 이득을 본 사람의 후생 증가가 피해를 본 사람이 입은 후생 손실을 보상하고도 남는다면 변화를 ‘개선’이라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유권자들이 편익보다는 비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정책으로 인한 편익이 불특정 다수에게 넓게 분산될 때 개혁을 지지하는 집단은 집합적 행위의 딜레마(collective action dilemma)에 빠져 조직화가 곤란한 반면, 개혁에 저항하는 집단은 정치적으로 집단화될 가능성이 크다. 중고차 매매시장의 규제 철폐가 이뤄지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소비자가 많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편익이 비용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오로지 이 문제만을 위해 뜻을 모아 집단행동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반면 규제 철폐로 손해를 볼 수 있는 집단, 중고차 매매업자들은 상황이 다르다. 그래서 정책 변동 과정에서는 항상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집단이 주도적인 정치행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정책은 그야말로 ‘이해관계 정치’의 산물이 되고 만다. 그런 정책이 ‘개선’을 가져오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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