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왜 와디즈에 800억원 투자했나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4.07 10:00
  • 호수 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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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출시 전 크라우드펀딩으로 소비자 반응 미리 확인…MZ세대의 입소문 홍보 효과는 ‘덤’

크라우드펀딩은 그동안 자금력이나 마케팅 여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소액의 자금을 다수 개인으로부터 손쉽게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 같은 인식이 변했다. 대기업들도 크라우드펀딩을 마케팅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펀딩을 통해 새로 출시되는 제품의 반응을 미리 살필 수 있고, 신흥 소비권력으로 떠오른 MZ세대와의 소통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 크라우드펀딩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롯데그룹이다. 2021년 11월은 고(故) 신격호 창업주의 탄생 100주년이었다. 롯데그룹은 신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을 기리고, 청년 기업인의 도전정신을 북돋우기 위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와디즈에 대한 투자도 그 일환이었다. 와디즈는 웹이나 모바일을 통해 다수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많은 기업이 와디즈를 통해 성공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신제품 또한 홍보했다. 롯데그룹 역시 이전에 롯데마트와 롯데칠성음료, 롯데하이마트 등 계열사들이 와디즈를 통해 신제품이나 PB(자체 제작) 제품을 공개해 효과를 얻은 바 있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이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크라우드펀딩협의회 발족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이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크라우드펀딩협의회 발족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유통·식품 기업은 지금 ‘크라우드펀딩 홀릭’ 중

주목되는 사실은 롯데그룹의 투자 규모다. 총투자액은 800억원으로 기존 주주인 KDB산업은행이나 신한벤처투자 등을 제치고 2대 주주가 된 것이다. 롯데는 향후 와디즈와의 사업 제휴를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롯데에서 생산되거나 단독 판매되는 제품을 와디즈에 선보여 시장성을 검증하는 것은 기본이다. 와디즈를 통해 검증된 제품을 롯데 유통채널에 소개해 차별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와 롯데멤버스, 대흥기획 등 계열사와의 서비스 제휴를 통해 스타트업의 물류나 광고, 결제 역량도 강화해 나갈 방침도 세웠다. 궁극적으로 롯데벤처스를 통해 유망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펀드 투자도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룹 관계자는 “계열사와 함께 조성한 스타트업 펀드 규모가 현재 2500억원대에 달한다”면서 “제조, 유통, 물류 등 전 분야에 걸친 협업과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선순환 구조의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스크린 골프업체 골프존도 지난해 가정용 골프 시뮬레이터인 ‘비전홈’의 사전 펀딩을 와디즈를 통해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하루 만에 사전 배송 물량 완판을 기록한 것이다. 펀딩 목표치를 2만1000% 이상 웃도는 수준이었다. 펀드 참여자인 서포터의 반응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골프존은 최근 홈쇼핑과 온라인 쇼핑몰 등으로 판매 루트를 확대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경우 크라우드펀딩 전용 패션 브랜드인 ‘플립’을 선보이기도 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사내 벤처팀이 만든 이 브랜드는 유통망이 기존 백화점이나 마트, 온라인 쇼핑몰 등이 아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선주문을 받고, 펀딩이 성공하면 그때 제품을 생산하는 구조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품을 배송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반응은 나쁘지 않다. 한정된 양만 생산하고, 가격도 합리적이기 때문에 MZ세대에게 인기가 높다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특히 고객 반응에 민감한 식품업계의 경우 이 크라우드펀딩을 신제품 출시를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펀딩을 통해 신제품에 대한 고객 반응을 미리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농심과 삼양식품, 신세계푸드, 동원F&B, 대상, 롯데푸드, 아워홈, hy(옛 한국야쿠르트), 매일유업, 오뚜기 등이 그동안 와디즈나 카카오커머스의 주문 제작 플랫폼인 카카오메이커스를 통해 제품을 성공적으로 출시했다.

1인 가구를 겨냥한 농심의 건조 식재료 ‘심플레이트’가 대표적이다. 푸드테크 사내벤처팀이 지난해 개발한 것으로 채소와 육류 등을 동결 건조한 제품이다. 농심은 두 차례의 펀딩을 통해 약 1억2000만원을 모았다. 소비자 반응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농심은 이 제품을 시장에 정식 출시했다. 삼양식품 역시 팬층이 두꺼운 ‘불닭볶음면’의 신제품 3종을 펀딩으로 출시, 한 달 만에 2700만원을 모았다.

LG전자가 신인 일러스트 작가들과 함께 하는 아트펀딩 프로젝트 모습ⓒ뉴시스
LG전자가 신인 일러스트 작가들과 함께 하는 아트펀딩 프로젝트 모습ⓒ뉴시스

재계의 新마케팅 플랫폼으로 각광

이 밖에도 신세계푸드와 동원F&B, 아워홈 등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사 제품을 출시했고, 목표금액 대비 최대 1200%의 모금액을 달성했다. 대상의 경우 펀딩으로 김치·고추장 시즈닝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대상 관계자는 “청정원의 수많은 제품을 조금 더 쉽고 간판하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 시즈닝을 개발했다”면서 “서포터들의 솔직한 피드백을 통해 제품을 평가받기 위해 펀딩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기업은 크라우드펀딩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2018년 9월 첫선을 보인 SSG닷컴의 ‘우르르’가 대표적이다. ‘우르르’는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상품을 구매할 고객을 미리 모은 뒤, 목표금액과 수량이 달성되면 출고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인터넷 최저가 대비 평균 60%까지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가격적인 이점이 있다. 입점업체에는 판로 확보와 동시에 재고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에 일석이조라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SSG닷컴의 한 관계자는 “올해 2월말까지 2800여 건의 펀딩을 진행해 1000곳 이상의 중소기업·스타트업에 판로를 지원했다”면서 “향후에도 ‘우르르’ 서비스가 소비자와 우수 중소기업을 잇는 ‘상생 서비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도 현재 사회적 기업인 우시산을 통해 환경보호활동을 우회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시산은 최근 온라인 기부 플랫폼인 해피빈을 통해 ‘지구를 지키는 업사이클링 플로깅 굿즈’ 이벤트를 진행했다. 버려지는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티셔츠나 장갑, 양말 등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판매하는 게 골자였는데, 반응이 좋았다. LG전자의 경우 신진 작가와 협업해 프리미엄 로봇청소기를 판매하는 ‘아트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펀딩 금액 전부를 어린이재활병원에 기부했다. 장정은 와디즈 법무정책총괄이사(변호사)는 “자금난을 겪는 스타트업부터 일상의 작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고자 하는 개개인까지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지지의 장을 열어주는 것이 크라우드펀딩의 본질”이라면서 “유통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펀딩시장 규모는 향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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