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에서 승승장구한 기업들 "나 지금 떨고 있니"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04.13 10:00
  • 호수 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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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모터스, 새 정부 출범 앞두고 절체절명 위기 
SK·셀트리온·중흥·호반·SM그룹 등도 ‘친정부’ 이미지 고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에서 잘나갔던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급성장한 기업들이 정권교체를 앞두고 각종 악재로 사업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정치권 특혜 의혹과 친정부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윤석열 정부의 ‘사정 1호’ 기업이 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은 공정거래위원회 기업포털 분석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서 어떤 기업이 가장 많이 성장했고, 어떤 리스크를 안고 있는지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과거 경험상 이전 정권과 긴밀했다는 평가를 받은 기업들은 대체로 다음 정권에서 순탄치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선 태광실업이 대대적인 특별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태광실업의 박연차 회장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 그룹 리더 격이었다. 포스코는 이명박 정부 실세들과의 유착 의혹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대대적인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결국 문재인 정부에서 구속됐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서 특혜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는 에디슨모터스가 이런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에디슨모터스는 쌍용차 인수가 무산되면서 그 후폭풍을 거세게 맞고 있다. 우선 자금조달 창구였던 상장사 에디슨EV(옛 쎄미시스코)가 대주주의 주가조작, 먹튀 논란 등으로 한국거래소의 조사를 받고 있다. 에디슨EV는 지난 3월30일부터 거래가 정지돼 소액주주들의 피해도 막심한 상황이다.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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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부 기업’ 흑역사 반복될까

사실 그동안 에디슨모터스의 성장 배경을 둘러싸고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다. 2015년 설립된 에디슨모터스가 흑자를 본 건 2019년부터였다. 특히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회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친정부 이미지가 굳어졌다.

정치권 특혜 의혹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앞서 본지는 지난해 2월1일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회장과 ‘문재인 정부 실세’로 통했던 이상직 전 의원의 친분관계로 에디슨모터스가 2년 동안 70억원의 정책자금을 지원받은 의혹을 보도했다(시사저널 1633호 [단독]‘라임 사태에 중진공이 어른거리는 이유’ 기사 참조). 이 전 의원의 낙하산 인사로 평가받는 류근태 전 한국국토정보공사(LX) 상임감사는 재직 당시 에디슨모터스를 공사 업무용 차량 임차업체로 추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에디슨모터스는 문재인 정부에서 급성장했지만, 정권 말기로 치달으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급성장한 기업은 이뿐만이 아니다. 시사저널이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대기업집단 자산총액(2017~21년 5월 공시 기준)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SK그룹, 셀트리온, 현대산업개발, 중흥건설, 호반건설, SM그룹 등의 자산이 지난 5년간 크게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흥건설과 셀트리온의 경우 자산총액이 100%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처지다. 문재인 정부에서 급성장한 탓에 ‘친정부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붙어, 새 정부에서 미운털이 박힐까 전전긍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SK그룹을 꼽는다. SK그룹의 자산총액은 2017년 170조2830억원에서 2021년 239조5300억원으로 증가했다. 다른 4대 그룹의 자산도 두자리수로 증가했지만 SK의 성장세가 두드러진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SK그룹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 비슷해 주목을 받았고, 이번 정부에서 기업 분할을 통해 덩치를 키웠다. 반면 정권과 관계없이 ESG경영은 글로벌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요구하는 시장의 흐름이고 기업 분할 역시 신약, 백신 등 바이오 사업 확장에 따른 수순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과정에서 재계 구도도 변화하고 있다. SK그룹은 올해 창립 69주년 만에 자산 기준 재계 서열 2위 자리를 넘보고 있으며 LG그룹은 시총 기준 2위에 올라섰다. 

중흥그룹·셀트리온 5년 동안 100% 성장

SK그룹이 윤석열 정부 출범 뒤에도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와 접점이 많은 대한상의 회장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활동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배터리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을 두고 정부에서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자, LG 측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SK를 편들고 있다고 반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호남 3대장 기업으로 꼽히는 중흥·SM·호반그룹의 성장세도 거세다. 중흥건설은 최근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하면서 자산총액이 5년간 130%(8조4790억원→19조540억원)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SM그룹과 호반건설의 자산총액은 각각 48%(7조230억원→10조4360억원), 52%(6조9970억원→10조6680억원) 불어났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 세 기업은 이름조차 생소한 변방의 향토기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로 정창선·우오현·김상열 회장이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면서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리스크도 존재한다. 중흥그룹은 우여곡절 끝에 대우건설을 품에 안았지만, 산업은행 특혜 의혹과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SM그룹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전 국무총리 동생을 영입하면서, 이번 정권과 긴밀하다는 뒷말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호반건설은 부당내부거래 등의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는 상황이다.

이렇게 급성장한 호남 기업들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사정의 칼바람을 맞는 흑역사가 반복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호남 기업인 팬택·대주·프라임그룹 등이 잘나갔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들 기업 모두 각종 부패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무너졌다. 중흥그룹도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호남 정치인들과 유착됐다는 의혹으로 대대적인 검찰 수사를 받은 아픈 기억이 있다.

코스닥 대장주로 불리는 셀트리온은 바이오 기업 중 유일하게 대기업집단에 포함될 정도로 성장했다. 2017년 셀트리온의 자산총액은 5조8550억원에 불과했지만, 2021년 14조8550억원으로 119%에 달하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주요 바이오시밀러 제품의 글로벌 판매 확대와 함께 코로나19 치료제와 진단키트 등의 덕분이다.

셀트리온도 이번 정부에서 특혜 의혹을 피할 수 없었다. 정부의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지원사업 연구비의 상당액이 셀트리온에 집중되면서다. 2020년 셀트리온은 정부로부터 52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는데, 이는 정부가 책정한 지원금 711억원의 73%에 이르는 규모다. 아울러 연구비 지원 당시 셀트리온은 대기업임에도 중견기업으로 분류돼 연구비를 더 받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계 참석자들이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계 참석자들이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 정부 출범 앞두고 곳곳에서 난맥상 노출

건설 현장에서 연이어 대형 참사를 일으킨 현대산업개발(HDC그룹)도 지난 5년 동안 크게 성장한 기업 중 하나다. 자산총액으로 따지면 2017년 6조8600억원에서 2021년 13조4890억원으로 증가했다. 5년 사이 무려 2배로 성장한 셈이다. 현대산업개발은 아파트 아이파크 브랜드로 꾸준히 인지도를 쌓으면서 재계 서열이 28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최근 현대산업개발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광주 학동 철거 사고에 이어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까지 벌어지면서 현대산업개발은 영업정지를 당할 위기에 놓였다. 이미 학동 사고로 8개월 영업정지를 사전 통지받았으며, 화정아파트 사고와 관련해 최고 징계인 1년 영업정지를 넘어 ‘등록말소’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다. 경찰 수사 결과 등에 따라선 현장 책임자나 회사 경영진이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적극적인 M&A(인수·합병)를 통해 그룹의 덩치를 키웠던 정몽규 회장의 고민이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있다.

정몽규 회장 폭락, 서정진 회장 10조 클럽 이탈

기업 총수 1분기 주식재산 현황 보니…

국내 33개 주요 그룹 총수 주식재산은 올 1월초 대비 3월말 기준 5조원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CXO연구소가 4월6일 발표한 ‘2022년 1월초 대비 3월말 기준 주요 그룹 총수 주식평가액 변동 조사’에 따르면 33개 그룹 총수의 주식평가액은 1월초 64조6325억원에서 3월말 59조7626억원으로 5조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올 1분기 주식재산 증가율 1위는 이순형 세아그룹 회장이었다. 세아제강, 세아베스틸, 세아홀딩스, 세아제강지주 등 4개사 주식을 보유한 이 회장은 1월초 1113억원에서 3월말 1314억원으로 주식 가치가 약 200억원(18.1%) 불어났다.

주식재산이 가장 많이 줄어든 총수는 정몽규 HDC그룹 회장으로 조사됐다. 올해 1월초 정 회장의 주식재산은 2838억원이었으나 계열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지역 대형 붕괴 사고로 지주사인 HDC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3월말 현재 연초보다 814억원(28.7%) 적은 2024억원을 기록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은 주식재산이 1조원가량 감소하면서 ‘10조 클럽’에서 이탈했다. 서 명예회장의 주식 가치는 최근 3개월 동안 1조6196억원 하락해 8조5667억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 명예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13조1018억원)과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11조3653억원)에 이어 주식재산 순위 3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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