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시대, 혁신과 ‘대통령 한류’의 계기로 만들어야
  • 서문표 자유기고가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2.04.09 14:00
  • 호수 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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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제 청산뿐만 아니라 용산 개발 따른 실질적 이익도 국민에게 돌아가야

“단순 집무실 이전이 아니다. 천도(遷都)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20일 “대통령실 용산 이전 브리핑”을 했을 때 도시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 이야기다.

서울은 900년 동안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한 행정체계와 도시계획의 메커니즘을 바꾸지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 당선인이 용산 국방부 자리로 대통령실을 옮겨가겠다고 하니 수많은 이에게 충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혹자는 “민생보다 집무실 이전이 우선이냐”고 비판했고,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하나회 척결에 버금가는 전광석화 같은 결정”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정치원로도 있었다.

3월19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이전 후보지 중 한 곳인 용산 국방부 청사를 방문해 직접 답사하고 있다.ⓒ국민의힘 제공

용산 시대의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일요신문이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50명을 대상으로 4월3~5일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용산 대통령실 이전에 ‘공감 못 한다’는 응답자가 53.8%, ‘공감한다’는 응답자가 44.1%다. 윤 당선인의 발표 이후 여론조사 결과가 비슷한 형태로 유지되고 있고,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조금씩 다른 결과들이 나오고 있는 정도다. 용산 대통령실 이전의 명분이 확실함에도 반대 여론이 아직 우세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마도 “용산 시대의 플러스 알파(+α)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은 온 국민이 필수 과제로 느끼는 것이지만, 개개인의 실익과 결부 짓기에는 부족한 명분이다. 5월10일 이후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청와대 개방 역시 국민의 관심을 붙잡기에는 다소 철 지난 해법일 수 있다. 청와대 수준만큼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휴양지인 저도 개방, 청남대 개방을 둘러싸고 여론이 당대 대통령에게 호의적으로 바뀌었던 선례가 없었던 사실도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구중궁궐처럼 여겨졌던 청와대 공간이 대중에게 베일을 벗고 개방되는 순간이 꽤 화제가 될 수 있겠지만, 대통령이 현재 거주하며 일하는 공간을 개방하는 것과 후적지(비어있는 땅)를 개방하는 것에 대한 관심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정말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철폐했다는 느낌을 주려면, 대통령이 활용하고 있는 공간의 현재형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용산 시대’는 명분과 철학의 문제뿐만 아니라, 좁게는 서울 시민과 용산 구민, 넓게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돌아가는 이익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용산은 서울 도시기본계획에 따라 국제업무 중심지로 개발될 예정이었던 땅이다. 윤 당선인 측은 “집무실 이전으로 인한 관련 지역의 추가 규제는 없을 것”이라면서 재개발사업의 이해 당사자들과 주민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지금처럼 반대 여론이 우세할 때는 용산 시대의 이익에 대해 홍보할 필요가 있다. 가령 집무실 이전이 오히려 용산 정비창 개발, 용산역 인근 철도 지하화, 용산기지의 조속한 반환과 녹색 여가 공간화 등을 촉진하게 된다면, 서울 시민과 지역 주민들에게 큰 이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용산 일대를 ‘혁신특별구’로 지정하고, 그동안 엄격한 도시계획 규제로 인해 해내지 못했던 다양한 변화와 실험이 가능한 공간으로 바꾼다면 대한민국에도 이익이 될 것이다. 우선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폐쇄적 규제로 공간의 용도와 밀도, 성격 등을 엄격히 제한했던 ‘용도지역제’가 과감하게 혁파되고, 복합·고층 개발이 가능한 사례가 용산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일과 여가, 업무와 취미생활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공간의 성격도 융·복합화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용도지역제’는 너무나도 철 지난 규제 방식이다. 인구가 많고 공간 수요가 큰 서울 지역과 인구가 적은 지방을 동일한 법적 잣대로 평가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아울러 수도권 역차별 규제로 인해 각종 세제 혜택이나 혁신 특구의 이득을 누리지 못했던 구시대적 관행을 정리하고, 용산에서부터 신산업, 첨단기술 기반의 산업 등이 자유롭게 시장을 형성할 수 있도록 ‘글로벌 플랫폼화’하는 작업도 중요한 ‘플러스 알파’가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면서 공개한 조감도ⓒ국회사진취재단

용산을 한류와 디지털 플랫폼의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가 중요한 정책 목표로 내건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비전이 용산 일대에서부터 구현되는 것도 대통령실 이전을 통한 국민적 이익 창출이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용산전자상가와 정비창 일대를 ‘디지털 플랫폼 클러스터’로 지정하고 플랫폼·네트워크·콘텐츠가 어우러지는 혁신산업의 중추로 선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요 공공기관들의 분사무소나 글로벌 기업의 본사 이전 등이 이루어질 경우 대통령이 직접 ‘글로벌 세일즈’의 상징이 되는 효과도 누리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이자 콘텐츠다. 구중궁궐이 있던 지역에서 최첨단 자본주의 중심으로 이동한 대통령이 용산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직접 국민과 함께 일한다는 서사가 절실하다. 새 정부는 ‘용산 시대’를 ‘대통령 한류(韓流)’의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임했으면 한다. BTS를 비롯한 아이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혁신적 정부 시스템도 한류의 원료가 되는 날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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