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유럽의 대통령 꿈꾸지만…
  • 이동진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5 07:30
  • 호수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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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vs 중·러 대립 구도에서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강조
“프랑스 내부 분열 문제부터 해결해야” 지적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했다. 4월24일 마린 르펜 국민연합 후보와 결선투표에서 맞붙은 마크롱 대통령은 58.5%의 득표율로 17.8%포인트 차이로 르펜(41.4%) 후보를 다시 제쳤다. 당초 예상됐던 접전 양상이 아닌, 의외로 큰 표 차이의 짜릿한 승리였지만 프랑스 언론들은 “마크롱이 파티를 벌이기엔 이르다”고 지적했다. 투표율은 역대 두 번째로 낮았고, 무효표가 프랑스 전체 유권자 중 28%에 달했기 때문이다. 대선 직후 프랑스 전역에선 반(反)마크롱 시위가 벌어지며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다가오는 6월 하원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마크롱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벌써부터 꿈틀대고 있다.

ⓒEPA 연합
재선에 성공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4월24일(현지시간) 결선투표 승리 확정 직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EPA 연합

비판적 진보언론도 호평한 ‘마크롱 외교’

이같이 요동치는 정국 속에서 프랑스와 유럽을 둘러싼 국제정세 또한 매우 불안정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새로운 전쟁의 위협이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이는 현 유럽연합(EU) 의장국인 프랑스의 외치(외교)에 커다란 난제로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현재 EU 국가 중 유일하게 유엔 상임이사국이다.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이며 유사시 군대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하드파워 보유국이기에 마크롱 대통령의 대외정책 기조에 온 유럽의 시선이 쏠린다.

마크롱 대통령은 앞으로 5년, 명실상부한 유럽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마크롱 정부 출범 이후 프랑스 대외정책은 EU의 영향력 강화에 초점을 뒀다.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했다. 강력한 EU를 만들어 미·중 패권 싸움 속에서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실익을 챙길 수 있는 스스로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개념이다. 프랑스 지정학자 프레데릭 앙셀은 “마크롱 이전 그 누구도 ‘강한 유럽’을 이렇게까지 강조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당초 EU 지도자들에게 마크롱 대통령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들렸다고 프랑스 언론 레제코(Les Echos)는 상기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무역전쟁, 이란 핵협정 일방적 폐기, 나토 방위비분담금 문제, 유럽을 배제한 인도-태평양 전략 수립,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둘러싼 불협화음 등 미국과 EU 사이 갈등이 고착되기 시작하면서 유럽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의 주장이 힘을 얻는 추세다. 벌써 방위 분야에서는 EU 자주국방을 이뤄내기 위한 노력이 현재 진행 중이며,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은 ‘경제적 주권’ 확보를 외치며 유럽의 핵심 산업들의 대중 의존도 축소 및 협력관계 다변화를 통한 다자체계 수호를 감행해 오고 있다.

지난해 마크롱 대통령은 퇴임하는 메르켈 전 독일 총리에게 ‘모든 것을 변화시키려는 혈기 넘치는 젊은 대통령’인 자신에게 끝까지 인내심을 가져준 것에 대해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자신 스스로 인정했듯이 2017년 취임 이후 줄곧 사회·경제적으로 쇠퇴하는 프랑스와 유럽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좋게는 ‘과감하다’, 나쁘게는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고군분투해 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9년 EU 집행위원장 추천 과정에서 독일 후보였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현 집행위원장을 적극적으로 밀었다. 이는 EU 내에서 줄어들었던 프랑스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됐다. 또한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마크롱이 EU 수뇌부에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마크롱 대통령이 주장하는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혹은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주권’ 회복 정책들이 현재 EU의 주된 정책이 되고 있다. 거기에 더해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유럽 경제를 살리기 위해 EU 출범 이래 최대 규모인 1000조원대 예산 편성안을 통과시킨 주역 또한 마크롱 대통령이다. 당시 유럽의 양대 산맥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많이 망설였지만, 마크롱 대통령에게 비판적이었던 프랑스 진보언론들도 그의 거침없는 추진력이 이뤄낸 결과라고 호평했다.

 

우크라 전쟁에서 드러난 대미 의존도 한계

앞으로의 마크롱표 대외정책은 어떤 모습일까. 안보 분야에서는 ‘전략적 자율성’ 정책을 고집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독자적인 길을 걷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주도 아래 유럽 안보를 보장하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마크롱 대통령으로부터 벌써 ‘뇌사’ 판정을 받은 지 오래다. 게다가 지난해 말 바이든 정부의 공작으로 호주와 맺은 77조원 규모의 잠수함 공급 계약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돼버린 뼈아픈 기억을 마크롱 대통령은 갖고 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의 리더십 아래 유럽이 자주성을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아직은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해야 하는 유럽 안보체제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떨어진 국정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전쟁을 서방의 승리로 끝맺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가 불가피할 것이고, 이는 결국 ‘전략적 자율성’ 정책의 한계를 나타내고 말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앞으로 다가오는 5년 동안 내부적으로는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모으고 외부적으로는 유럽을 한데 모으는 커다란 과제를 떠안은 듯 보인다. 그는 자신의 리더십과 영향력이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기를 희망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간의 행보를 봤을 때 전망은 썩 밝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프랑스와 오랜 역사를 함께해온 레바논에서는 마치 자신이 레바논의 대통령인 것처럼 행동했다는 평가로 국내외에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일본의 아베 전 총리처럼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친분을 쌓기 원했으나 결국 프랑스와 유럽이 실익을 챙기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평이 많았다. 서아프리카에서도 마크롱식 외교는 악재를 겪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직설적 화법이 많은 불어권 아프리카 국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그 결과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의 입지가 많이 추락했다는 평가다. 이로 인해 생긴 권력의 빈 공간을 러시아가 파고드는 실정이다.

성공한 마크롱 대통령은 그의 희망대로 유럽의 대통령, 그리고 유럽을 넘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의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우선 프랑스 국내에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는 입지를 탄탄히 해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있다. 그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5년이 매우 치열한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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