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외무 “히틀러도 유대계” 발언…국제사회 일제히 반발
  • 장지현 디지털팀 기자 (vemile4657@naver.com)
  • 승인 2022.05.0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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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러시아, 2차 세계대전 교훈 잊은 듯”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1일(현지 시각)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히틀러도 유대인 혈통”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이스라엘과 서방 국가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AP연합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1일(현지 시각)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히틀러도 유대인 혈통”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이스라엘과 서방 국가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AP연합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탈나치화’라는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을 정당화하며 “아돌프 히틀러도 유대인 혈통”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이스라엘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1일 밤(현지 시각) 이탈리아 민영방송 ‘레테4’의 대담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된 인터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대인인데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가 전쟁 명분이 될 수 있냐’는 취지의 질문에 “히틀러도 유대인 혈통”이라며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현명한 유대인들이 ‘가장 열렬한 반유대주의자들은 대개 유대인 자신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오랫동안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침공의 주요 목표로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를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는 이것이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권 수립 또는 영토 확장을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이런 시각을 일축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건 침공 명분의 정당성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의 이날 발언에 이스라엘은 거세게 반발했다. dpa·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외무부는 2일 오전 라브로프 장관 발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며 자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초치했다.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는 “(라브로프 장관의) 그러한 거짓말은 유대인을 겨냥해 저질러진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유대인에게 돌리려는 의도가 있다”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홀로코스트를 들먹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외 국가들의 비난도 이어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상 연설을 통해 “라브로프 장관의 발언은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의 모든 교훈을 잊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아예 그런 교훈을 전혀 배운 적조차 없었던 것”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의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역겹고 위험한 발언”이라며 “러시아가 침공 사실을 방어하기 위해 반유대주의를 주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러시아군은 민간인을 계속 학살하면서, 역사적으로 쓰레기통에 살고 있는 많은 다른 사람들이 했던 과오를 범하고 있다”며 “나는 미국 내 유대인 중 최고위 선출직으로서 그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슈테펜 헤베슈트라이트 독일 정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나치즘의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것”이라며 “유대인뿐 아니라 전 세계 대중을 상대로 공개적인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며 뻔뻔하게 마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곳에서 퍼뜨리려는 러시아의 선전에 대해 논평할 가치조차 없다. 해당 발언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히틀러 관련 부분은 터무니없는 음모론”이라고 비판했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러시아 외무장관의 말을 믿을 수 없다. 말도 안 되며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이날 라브로프의 발언이 이스라엘과 러시아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하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그간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와의 연대 의사를 명확히 하면서도 중동 문제의 주요 개입자인 러시아에 대한 비판은 자제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스라엘이 러시아군의 전쟁 범죄를 비난하고 서방권과 보조를 맞추면서 양국 간 긴장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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