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폭발 직전…현대차그룹 노조 ‘철밥통 시대’ 끝날까
  • 박성수 시사저널e. 기자 (holywater@sisajournal-e.com)
  • 승인 2022.05.11 10:00
  • 호수 169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조 둘러싼 부정적 여론에 MZ세대 불만 폭발
“자동차 패러다임 바뀌는 만큼 노조도 바뀌어야”

현대자동차그룹 노동조합을 둘러싼 기류가 최근 심상치 않다. 수십 년간 ‘철밥통’ ‘귀족 노조’ 등으로 불리며 부정적 여론을 생성한 현대차 노조에 대한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한 사무직·연구직 직원들이 고령의 생산직 노조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보이면서 기존 노조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들고 있다. 전기차로 업계 트렌드가 빠르게 전환되면서 내연기관 생산직에 대한 중요도가 떨어지고 있는 점도 한몫한다.

위기의식을 느낀 현대차그룹 노조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이하 임단협)에서 현대차와 기아가 공동 투쟁에 나서기로 했으나, 이들을 바라보는 회사 안팎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기만 하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생산 거점을 해외로 넓히면서 국내 생산 비중을 줄여나가는 상황에서도 ‘떼쓰기’ 전략만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 요구안이 ‘40·50대 생산직’의 밥그릇 챙기기 아니냐는 내부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귀족 노조’라는 비판 여론에 전기차로 시장 패러다임까지 바뀌면서 고령의 생산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광주 서구 기아차 광주공장 1공장ⓒ연합뉴스

정년 연장 요구, 내부에서도 공감 못 얻어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16만52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작년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호봉제도 개선 및 이중 임금제 폐지, 임금피크제 폐지, 정년 연장 및 신규 인원 충원, 해고자 복직 및 가압류 철회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또한 미래차 공장 국내 신설과 전기차 모듈 라인 기존 공장 유치, 한시 공정 외 촉탁직 폐지 등도 요구안에 담을 예정이다. 그룹 노조가 공동 투쟁하기로 한 만큼 기아 노조도 현대차와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년 연장도 핵심 쟁점이다. 현대차 생산직의 경우 정년퇴직을 앞둔 50대 조합원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만큼, 정년 연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노조는 정년퇴직자 대상의 시니어 촉탁제를 폐지하면서 정년을 현재 만 60세에서 만 61세로 연장하려 하고 있다. 시니어 촉탁제는 정년퇴직자 중 희망자를 선별해 신입사원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며 1년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사측은 노조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임단협에서도 만 64세 정년 연장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정년 연장은 수용 불가”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조는 정년 연장과 함께 신규 인원 충원까지 외치고 있는데, 이는 실현 불가능한 요구안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전기차 시대엔 기존 내연기관 대비 필요 생산인력이 30~40% 가까이 줄어들기 때문에 현재보다 인력을 더 늘리는 것은 회사 경쟁력 약화만 불러온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MZ세대와 연구소 등 비생산직 직원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현대차 연구직의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귀족 노조’라는 말이 우리를 강성 노동자로 만든다. 밖에선 떼쟁이 취급받는다”며 “매년 나오는 해고자 복직, 생산직 추가 고용, 정년 연장은 지긋지긋하다. 노조가 있는 이곳에서 이유 없이 해고되는 사람은 없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 사무직 직원은 “밖에서는 현대차 노조의 억대 연봉을 거론하며 모든 직원을 싸잡아 차 가격을 올리는 주범으로 비난하고 있는데, 실제로 신입 초봉 순위를 보면 현대차는 대기업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면서 “재계 순위로는 2~3위를 하고 있는데, 내부 직원들은 그만큼 대접을 받지 못해 이직을 알아보는 젊은 직원이 많다”고 토로했다.

현대차 직원뿐 아니라, 계열사 직원들도 현대·기아차 생산직 노조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지난 2020년 기아 노조는 전기차 주요 부품을 기아 공장에서 직접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들은 현대모비스 친환경차 부품 공장 신설에도 반발하며 일감 몰아주기라고 주장했다. 당시 업계에선 전동화 부품의 경우 현대모비스가 예전부터 개발·생산을 담당했으며, 부품사 물량을 완성차 기업이 가져오면 역으로 일자리 뺏기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올해에도 현대차 노조는 본인들 고용 유지를 위해 현대모비스 일감을 가져와야 한다고 재차 주장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시사저널 임준선

전기차 시대 맞아 국내 생산 비중 줄여

전기차 시대를 맞아 국내 생산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점도 노조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요인이 될 전망이다. 100년 넘게 지속된 내연기관 시대가 끝나고 전기차 시대로 바뀌면서 모든 완성차 기업들이 현재 동일한 출발선에 서있다. 어느 때보다도 글로벌 시장 선점이 중요해졌다. 고임금·저생산성 구조가 고착화된 국내 생산방식으로는 해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쉽지 않다. 또한 매년 반복되는 파업으로 인해 생산에 차질이 생길 경우 ‘물량전’ 중심의 전기차 시장에서 뒤처질 우려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2022 CEO인베스터데이’에서 전기차 전략을 발표하며, 향후 전기차 생산 확대를 위해 해외 거점을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는 현재 한국과 체코가 중심인 전기차 생산기지를 좀 더 확대해 나갈 계획으로, 인도네시아와 미국에서 우선 연내 전기차 생산을 진행한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새로 짓고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 양산에 돌입한다. 미국의 경우 앨라배마 공장에 3억 달러(약 3794억원)를 투자해 전동화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싼타페 하이브리드와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을 연내 생산할 계획이다. 기아도 유럽·미국·중국·인도 등 대부분 글로벌 생산기지에서 현지 특화 전기차를 생산할 방침이다.

특히 미국에 대한 투자 결정에는 조 바이든 정부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 영향이 크다. 바이든 정부가 미국 현지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추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테슬라, GM, 포드 등 현지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현대차는 현지 생산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강성 노조에 대해 강경 대응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노조엔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앞서 윤 당선인은 “전체 근로자의 4%를 대변하는 강성노조는 완전히 치외법권”이라며 “강성노조의 법 위에 군림하는 행위에는 엄정 대처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곧바로 현대차 노사 임단협 협상이 시작되기 때문에 새 정부에서도 이를 중요하게 볼 것”이라며 “현대차 노조는 ‘회사가 없어져도 노조는 영원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데 자동차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에서 노조도 바뀌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