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으로 빼돌린 우리은행 615억원 행방 ‘오리무중’
  • 이석․송응철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2 14:00
  • 호수 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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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금감원 ‘쌍끌이’ 조사에 우리금융 경영진 ‘전전긍긍’
안진회계법인·금감원·금융위로 불똥 튀나

“정부와 기업은 서둘러 기업 컴플라이언스(준법윤리경영)를 강화해 내부 횡령에 대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 초 시사저널이 만난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말이다. 오스템임플란트 자금 담당 직원의 2000억원대 횡령 사고로 한국 사회가 떠들썩할 때였다. 승 연구위원은 당시 “오스템임플란트 사건을 보니 기업 컴플라이언스가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 기업들을 관리·감독하는 금융 당국도 마찬가지다. 본연의 역할을 전혀 못 했다.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제2, 제3의 오스템임플란트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지적이 있고 불과 4개월여가 지났다. 4대 시중은행 중 한 곳인 우리은행에서 6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내부 직원의 일탈이 문제였다. 우리은행의 기업매각 담당자였던 A씨가 과거 대우일렉트로닉스 입찰 당시 보관하고 있던 계약금 일부를 빼돌린 것이다.

제1금융권인 우리은행에서 최근 6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하면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제1금융권인 우리은행에서 최근 6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하면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시사저널 박정훈

‘제2 오스템임플란트 사건’ 우려가 현실로

충격파는 오스템임플란트 사건 이상이었다. 관리가 가장 엄격해야 할 제1금융권에서 ‘돈 문제’가 터졌기 때문이다. 횡령 금액 역시 ‘역대급’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은행 금융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국내 20개 은행의 금융사고 금액은 모두 1540억9600만원이다. 하지만 개별 사고액은 많아야 수십억원대였다. 우리은행의 경우 현재 알려진 횡령액만 615억원이다. 2005년 7월 국민·조흥은행 직원이 공모해 850억원 규모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빼돌린 사건 이후 최대 규모로 전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우리은행 측은 “내부 감사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경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면서 말을 아꼈다. 단지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직원에 대한 고발 조치와 함께 발견 재산 가압류 등을 통해 횡령 금액 회수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 손실 금액을 최소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원덕 우리은행장도 최근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공적자금의 멍에를 벗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점에 있어서는 안 될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한 사람의 이기적인 범죄로 모두가 땀 흘려 쌓아올린 신뢰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았다”면서 “현재 관련 직원의 신병을 확보해 경찰 조사와 금감원 검사가 진행 중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당사자는 물론이고 연관자들이 있다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금융권 안팎의 시각은 곱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은행은 이중, 삼중으로 출금을 감시한다. 단순한 업무처리도 팀장급 이상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면서 “경찰 조사를 지켜봐야겠지만 우리은행의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금융그룹은 금융지주 이사회 안에 감사위원회와 함께 내부통제관리위원회를 두고 있다. 4대 금융그룹 중에서 가장 먼저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우리은행 역시 금융 사고를 제보하는 ‘내부자 신고제도’를 현재 운영 중이다. 하지만 차장급 직원이 10년간 600억원이 넘는 돈을 빼돌렸음에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말 그대로 은행 내부 통제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얘기다.

ⓒ연합뉴스
회삿돈 61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우리은행 직원 A씨가 4월3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직원 A씨 “주식이나 선물 투자로 돈 다 썼다”

무엇보다 빼돌린 자금의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우리은행 발표와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A씨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세 차례에 걸쳐 돈을 인출했다. 2018년 마지막 인출 후 계좌를 해지했다. 뒤늦게 횡령 사실을 파악한 우리은행은 4월27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A씨는 당일 밤, 공범으로 지목된 A씨의 동생은 이튿날 새벽에 자수했다. 경찰은 두 사람을 특경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한 상태다. 이후 돈의 행방을 추궁하고 있지만 A씨와 동생은 함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경찰 조사에서 “횡령금 대부분을 주식이나 선물 투자, 사업자금 등으로 사용했다. 현재 남은 돈이 거의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은행의 해명과 다르게 횡령 금액을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4월28일 우리은행 횡령 사건에 대해 수시 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역시 횡령 사실이 10년간 드러나지 않은 만큼 허술한 내부 통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금감원의 금융회사 내부 통제 강화 방안에 따르면 내부 통제 소홀로 금융 사고가 발생할 경우 CEO와 상임감사 등이 제재를 받게 된다. 정은보 금감원장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우리은행 내부 통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주의 업무를 게을리했다면 사후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도 “(최고경영자의) 책임에 대해서는 조사를 해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결과에 따라 우리은행뿐 아니라 주요 경영진도 제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우리금융그룹은 최근 실적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우리금융의 자산이나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등은 4대 금융그룹 중에서 가장 낮았을 뿐 아니라 추세 역시 하락세였다. 다른 금융그룹의 실적이 소폭 상승하거나 유지 수준인 것과 비교됐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금융은 큰 폭의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매출은 소폭 하락했지만,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은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 올 1분기도 마찬가지다. 4월22일 우리금융 실적 발표 결과, 1분기 순이익은 8842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당장 주가가 화답했다. 5년 전에 비해 주가가 하락 추세를 보이는 다른 금융그룹과 달리 우리금융그룹의 현재 주가는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어서 최근 횡령 사건을 바라보는 금융권의 우려가 더하다. 

금감원은 5월1일 안진회계법인에 대해서도 검사에 착수했다. 안진회계법인은 횡령 사고가 발생한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감사를 진행한 뒤 ‘적정 의견’을 냈다. 금감원은 이 과정에 과실이나 절차상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감사조서를 통해 판단한다는 방침이다. 감사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이 기록된 감사조서는 감사 의뢰인이 보유하는 기록과 감사인이 작성하는 감사보고서를 연결해 양자의 정확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하지만 금감원이나 금융위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금감원의 경우 횡령이 벌어진 기간 동안 11차례에 걸친 종합 및 부문 검사를 벌였음에도 횡령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검사 결과, 금감원은 부동산개발금융(PF 대출) 심사 소홀로 인한 부실 초래, 금융실명거래 확인 의무 위반 등을 적발하는 데 그쳤다.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선 금감원 검사의 ‘무용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금감원 ‘검사 무용론’으로 논란 확산

금융위의 경우 이란의 가전업체 엔텍합이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기 위해 지급했던 계약금을 반환하라는 투자자·국가 중재신청(ISD)과 관련한 실무를 맡았다. A씨는 금융위의 주도 아래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과 ISD 소송 전반에 관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금융위와 채권단의 결정이라며 서류를 조작해 우리은행에 보관된 자금을 횡령했다. 하지만 금융위 역시 횡령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2015년 12월에는 대우일렉트로닉스 관련 업무를 잘 처리했다는 이유로 A씨에게 금융위원장 표창을 수여했다. 그해 9월 A씨가 신탁 예치금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서류를 꾸며 148억원을 인출한 직후였다. 금융위는 심지어 2018년 A씨가 일선 지점으로 발령나자 그를 기존 업무에 복귀시키라고 우리은행에 종용키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발령 직전 마지막 남은 293억원을 모두 인출하고 해당 계좌를 해지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른 후폭풍 역시 적지 않을 것으로 금융권은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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