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친중 강경파 내세워 ‘홍콩 민주’ 숨통 끊기?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8 07:30
  • 호수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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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공안경찰 출신 존 리를 새 홍콩 행정장관에 낙점…홍콩 민주화 시위 강경 진압으로 신임

5월8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제6대 홍콩 행정장관 선거가 열렸다. 행정장관은 홍콩특별행정구의 정부 수장을 가리킨다. 중국이 정한 홍콩기본법에 따라, 행정장관은 5년마다 1500명이 정원인 선거위원회의 간접선거로 뽑는다. 현재 행정장관 선거위원은 1461명이다. 이날은 1428명의 선거위원이 참석해 97.7%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투표 결과는 예상과 같았다. 단독 출마한 존 리(64)가 99.4%의 득표율로 당선된 것이다. 반대는 8표에 불과했고 무효가 4표 나왔다.

향후 5년 동안 홍콩을 이끌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였으나 홍콩은 평소처럼 조용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강력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라 통치되는 홍콩의 현실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하지만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혁명이 실패했고, 2019년 장기간의 민주화 시위도 수포로 돌아갔던 배경이 더욱 컸다. 그렇기에 이번 행정장관 선거는 홍콩인들의 무관심 속에 치러졌다. 예전에는 선거장 주변이 선출되는 행정장관의 찬반 시위대로 들썩였지만, 이번에는 홍콩의 야당인 사회민주연선 당원 3명이 기습 시위를 벌였을 뿐이다.

2021년 7월1일 홍콩 반환 24주년 기념 국기 게양식에 이은 리셉션에서 홍콩 행정장관 권한대행인 존 리(오른쪽 두 번째)가 중국 및 홍콩 관계자들과 건배하고 있다.ⓒAP 연합

‘친중파’ 일색의 역대 행정장관들

지난해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홍콩 선거제도에 대한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개편안의 핵심은 행정장관 선거위원으로 할당된 구의원의 몫을 모두 배제했다. 현재 구의원 전체 의석 85% 이상은 민주진영이 차지하고 있다. 이를 대신해 직능대표의 범위를 확대했다. 직능대표는 홍콩 당국이 선정하기에 친중(親中) 성향이 강하다. 또한 선거 입후보자는 중국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중국 언론은 개정된 홍콩 선거제도를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법’이라고 이름 지었다. 과거에는 ‘홍콩인이 다스리는 홍콩(港人治港)’이 기조였다.

그러나 지금은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이 돼버린 것이다. 이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였던 덩샤오핑이 마련한 홍콩기본법의 기본 원칙인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와 ‘홍콩인이 다스리는 홍콩’을 뒤엎는 조치다. 게다가 애국은 ‘중국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애국자에게 요구되는 핵심요소는 중국공산당에 대한 충성”이다.

따라서 이번 행정장관 선거는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의 기조 아래 치러진 첫 선거였다. 그렇기에 입후보자는 중국 당국이 낙점한 존 리 외에 아무도 없었다. 행정장관 선거에서 경쟁자가 없었던 것은 2002년 제2대 이래 처음이다. 제2대 선거에서는 초대 행정장관이었던 퉁치화가 단독 입후보하면서 선거 없이 자동으로 당선됐다. 3대 도널드 창, 4대 렁춘잉, 5대 캐리 람에 이르기까지 역대 행정장관은 모두 친중파들이었다.

물론 행정장관 선거위원회의 절대 다수 역시 친중파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최소한의 선거 형식을 빌리면서 행정장관의 정통성을 갖추도록 했다. 게다가 행정장관은 성공한 기업가나 정통 행정관료가 돌아가면서 맡았다. 실제로 퉁치화와 렁춘잉은 기업가 출신이었고, 도널드 창은 재정사, 캐리 람은 정무사에서 성장했다. 그에 반해 존 리는 경찰 출신이다. 1977년 한국의 경사에 해당하는 독찰로 임용된 이래 2012년까지 경찰에서 승승장구했다.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강력계와 정보과, 마약조사과를 거치며 조직범죄 척결에 앞장섰다. 당시 존 리가 상대했던 범죄조직이 ‘삼합회’다. 삼합회는 9세기부터 마약·도박·매춘 등을 장악하며 악명 높았다. 일본 야쿠자와 함께 아시아의 대표적인 범죄조직으로 손꼽힐 정도였다. 그렇기에 1970년대까지 삼합회는 정부 관료나 경찰에게 뇌물을 바치고 협박을 일삼으며 번성했다. 이런 관료와 경찰의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1974년 설립된 반부패 수사기구가 ‘염정공서’다. 염정공서는 한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모델이다.

이처럼 존 리는 삼합회와 싸우면서 커리어를 쌓았다. 2012년 치안을 책임지는 보안국의 부국장이 되면서 경찰을 떠났지만, 경직된 경찰의 모습은 여전했다. 따라서 2014년 우산혁명에 줄곧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때의 공로로 2017년 보안국장으로 승진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 첫 경찰 출신이었다. 2019년 홍콩 당국이 경찰을 앞세워 민주화 시위대를 강경 진압한 것도 존 리의 입김이 컸다. 존 리는 중국 국영 CCTV에 출연해 “시진핑 총서기가 홍콩의 가장 긴급한 임무는 폭력을 중단시키고 난동을 제압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존 리의 불도저식 업무 추진력은 중국 당국의 눈에 들었다. 지난해 6월에는 경찰 출신으로는 최초로 홍콩 정부의 2인자인 정무사장이 됐다. 존 리가 정무사장이 된 뒤 행정장관 연임을 추진하던 캐리 람의 움직임이 사라졌다. 행정장관은 중국 당국이 미는 인사가 맡는데, 캐리 람 카드가 버려진 것이었다. 일부 중화권 언론에서는 “행정장관에 존 리를 낙점한 이는 사실상 시진핑 주석”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시 주석이 홍콩 시민과 학생의 민주화 시위에 타협하지 않고 강경하게 대응했던 존 리의 행보를 전폭 신임해 대권을 맡겼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시 주석이 존 리를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최근 중국 당국은 홍콩의 정통 행정관료보다 경찰 출신을 더욱 신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존 리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 최우선으로”

지난해 존 리의 후임으로 보안국장이 된 이도 경찰 출신인 크리스 탕이었다. 2019년 크리스 탕은 경찰 총수로, 존 리의 주문을 받아 민주화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다. 5월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존 번스 홍콩대 교수와의 인터뷰를 빌려 “중국 정부는 홍콩의 보안 분야를 가장 신뢰하고 행정관료는 신뢰하지 않으며, 공무원 전체의 충성심을 의심하는 듯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향후 홍콩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이에 대한 단서는 존 리가 선거에 출마하면서 내건 공약에서 엿볼 수 있다. 존 리는 “행정장관이 되면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을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제정한 홍콩국가보안법에 뒤이어 추가 제정해 민주진영의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속내다. 홍콩은 이미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정치적 자유가 극도로 위축됐다. 5월3일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2022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홍콩은 전 세계 180개국 중 148위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68위나 떨어져 가장 가파른 하락세다.

하지만 존 리는 “홍콩에서 언론의 자유는 기본법에 보장돼 있기에 따로 약속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존 리는 “결과 지향적인 정부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그동안 제도와 절차, 전통을 중시해 왔던 홍콩의 정통 행정관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따라서 적지 않은 지식인들은 홍콩이 경찰국가가 되거나 공안정국이 강화될 것으로 우려한다. 케네스 찬 홍콩 침례대 교수는 “존 리는 시민사회에 압박을 가하며 향후 5년간 민주적인 개혁에 관한 모든 이슈를 죽이겠다고 결심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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