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KK’ 김광현 시대…KBO리그 마운드 지배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4 12:00
  • 호수 17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년의 메이저리그 경험으로 자신감 넘쳐
투 피치에서 ‘포 피치’로 구종도 다양화

바야흐로 ‘KK’ 시대다. 메이저리그 2년을 거치면서 더욱 강해졌다. 세월을 품어 경기 운용은 더 노련해졌다. KBO리그 최고 에이스로 이름값을 드높이는 ‘81억원의 사나이’ 김광현(34·SSG 랜더스) 얘기다.

김광현은 개막 6경기 등판 동안 난공불락이었다. 6경기 모두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 투구)를 기록했고, 38이닝을 던지는 동안 단 2자책(3실점)만 했다. 평균자책점 0.47. 삼진을 39개 잡는 동안 볼넷은 8개만 내줬다.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는 0.71. 피안타율이 0.147인데 세부적으로 보면 득점권에서 고작 2안타만 허용했다. 득점권 피안타율이 0.069다. 좌타자(0.133)와 우타자(0.154) 상대 피안타율도 별반 차이가 없다. 안타를 맞아도 마운드에서 ‘씨익’ 하고 웃는 모습은 열아홉 살 신인 때나 프로 16년 차일 때나 똑같다.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5월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SSG와 키움의 경기에서 SSG 선발투수 김광현이 키움의 박찬혁을 2루수 뜬공으로 처리한 뒤 미소짓고 있다.ⓒ연합뉴스

속구·슬라이더에 커브와 체인지업까지 가세

김광현은 빅리그 진출 전에도 양현종(34·KIA 타이거즈) 등과 함께 국내 리그 최고 좌완투수로 불렸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하기 전 시즌(2019년) 성적이 17승(2위) 6패 평균자책점 2.51(3위)이었다. 하지만 KBO리그 무대로 돌아온 그의 구종은 타자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리그 최고 타자로 꼽히는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의 경우 김광현의 미국 진출 전 맞대결에서 19타수 10안타(타율 0.526)로 아주 강했다. 하지만 올해는 여섯 번 김광현과 마주해 다섯 번 고개를 숙였다. 이정후는 “김광현 선배를 상대할 때 ‘내가 정말 좋은 투수의 공을 보고 있구나’라고 감탄한다”면서 “김 선배의 공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에도 좋았는데, 지금이 더 좋다”고 했다.

KK의 진화는 구종의 다양성에서 온다. 심재학 MBC스포츠플러스 야구해설위원은 “공을 던질 때 속구와 슬라이더를 놓는 지점이 같고 비슷한 궤적으로 날아온다. 그래서 타자들이 속고 있다”면서 “메이저리그 진출 전과 비교해 체인지업과 커브 등을 섞어 던지면서 타자들의 노림수도 전혀 통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에는 속구와 슬라이더만으로 타자와 싸우던 ‘투 피치 투수’였다면 지금은 명실공히 ‘포 피치 투수’가 됐다. 2년 전만 해도 타자들은 김광현의 속구와 슬라이더 중 하나는 버리고 다른 하나만 노리면 됐는데 지금은 여러 공을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

선수 때도 김광현과 함께했던 김원형 SSG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는 강속구 효과가 떨어질 수 있어 변화구 구사율을 더 높인 것 같다. 2년 동안 여러 구종을 다듬으면서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밝혔다. 5월8일 키움전 투구 내용을 보면 김광현은 속구(최고 구속 시속 150km·평균 구속 시속 144km) 46%, 슬라이더(평균 구속 시속 134km) 27%, 커브(평균 구속 시속 114km) 14%, 체인지업(평균 구속 시속 129km) 13% 비율로 던졌다. 변화구 구사율이 절반을 넘었다.

무엇보다 마운드에 선 김광현은 여유가 엿보인다. 미국 진출 이후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외국 생활을 홀로 하면서 다져진 생존본능이 그대로 그라운드에서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KBO리그 최고 몸값 선수(4년 151억원)라는 타이틀이 그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김광현은 시즌 전 “즐기면서 야구를 하고 싶다”고 했었고, 실제로 마운드에서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김광현의 에이전트는 “광현이가 미국에서 던질 때는 긴장을 많이 하고 말이 안 통하는 곳에서 압박감이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로 돌아와서는 선수들과 말도 통하고 그래서 마음이 편해졌고, 미국과 달리 트레이닝 파트에서 관리를 잘해 주는 면도 있다”고 했다.

 

1승당 3000만원의 자비 이벤트 벌이기도

박종훈·문승원의 팔꿈치 수술 공백으로 4~5월을 걱정하던 SSG는 돌아온 김광현이 그저 고맙다. 그가 없었다면 3선발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돼 트라이아웃으로 영입된 노경은이 맡아야 했다. 하지만 김광현의 합류로 SSG는 남부럽지 않은 1~3선발을 갖추게 됐다. 박종훈이 이르면 5월말 팀에 합류하는데 이럴 경우 SSG는 개막전 9이닝 퍼펙트 투구의 우완 윌머 폰트, 리그 최고 좌완투수(김광현), 리그 최고 언더핸드 투수(박종훈)가 선발진에 포진한다. 여기에 메이저리그 90승에 빛나는 이반 노바도 있다. SSG 마운드는 철옹성이 될 전망이다.

김광현 효과는 비단 성적에 그치지 않는다. SSG 투수진에 더그아웃 리더로서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인천 구단 프랜차이즈 스타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4차례 경험하고, 빅리그 2년 동안 준수한 성적을 남기며 성공 신화를 쓴 그는 SSG의 어린 투수들에게는 ‘눈앞의 우상’이다. 프로 3년 차 좌완투수 오원석이 더그아웃에서 김광현을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어렵사리 볼 수 있는 이유다.

김광현의 남다른 팬 서비스 또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방문 경기를 가도 그는 관중석으로 직접 찾아가 어린이 팬 등에게 기꺼이 사인해 준다. “팬이 있어야 야구가 있고, 인기가 더 많아져야 선수들이 신나고 즐겁다”는 이유에서 적극적으로 팬과의 스킨십에 나선다. 메이저리그에서 배운 또 하나의 에티켓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승을 쌓을 때마다 자비를 들여 깜짝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복귀 첫 승(4월9일)을 했을 때는 인천 지역 초등학교 1학년 전원(2만4500명)에게 문구 세트 및 야구장 입장권을 선물했다. 5승을 거둔 뒤에는 김광현이 직접 고른 디자인으로 KK 텀블러를 제작해 6월10일 한화 이글스전에 인천 SSG랜더스필드를 방문하는 팬 1000명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일명 ‘KK 드림 기프트’ 이벤트인데 100% 김광현의 자비로 충당한다. 이벤트당 비용은 3000만원으로 책정한 상태. 만약 시즌 15승을 달성하면 4억5000만원을 쓰게 된다. KBO리그 최고 연봉(올 시즌 뒤 샐러리캡 도입으로 김광현의 계약 첫해 연봉은 비정상적으로 81억원으로 책정됐다. 계약금을 포함한 금액이라고 보면 된다)을 받기는 하지만 후원사를 전혀 끼지 않은 채 진행하는 선수 개인의 통 큰 기부다. 2019년의 김광현과 2022년의 김광현은 다르다. 낯익고도 낯선 모습이 보인다. 그의 복귀 덕에 침체했던 KBO리그가 조금은 다이내믹하게 됐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