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대충돌 현실화할까…김정은의 도발 수위는?
  •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6 10:00
  • 호수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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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호전적·도발적 행보 강행하기엔 제약도 많아
한·미 공조 따른 대북 압박 수위 강화도 부담

당연한 통과의례 수순이었을까, 아니면 대격돌을 위한 전주곡을 울린 것일까. 북한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에 맞춰 거친 대남 공세의 포문을 열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비방 수위를 조절하며 탐색기를 갖거나 초반부터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등 도발의 고삐를 당길 가능성이 병존하는 상황에서 그 향방에 따라 남북관계와 윤석열 정부 대북정책의 기류가 결정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다.

일단 출발 분위기는 다소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첫 반응은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나왔다. 윤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지 4시간 만인 5월10일 오후 조선신보는 “대미종속과 반북대결 노선의 강행을 표방하는 윤석열 정권은 동북아시아의 화약고인 조선반도의 정세불안을 극도로 고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인터넷 선동매체인 ‘여명’도 같은 날 윤석열 정부가 4월말 일본에 정책협의대표단을 보낸 걸 두고 “윤석열 주변에는 온통 뼛속까지 친미·친일분자, 동족 대결자들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27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경축 열병식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월29일 보도했다.ⓒ연합뉴스

중·러, 北 도발행보에 불편한 기류 보여

한 가지 주목되는 건 북한이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 같은 공식 관영매체를 통해서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관련해 제대로 된 보도나 논평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대선 국면의 연장선상이다. 한국 대선에 개입해 보수 후보에 대한 반대와 선동을 일삼던 북한은 지난 선거의 경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특이한 점은 인터넷 선동매체 등을 주로 동원하고 주민이 접할 수 있는 노동신문 등의 경우 거의 남한 대선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향후 남북관계와 관련해 더욱 중요한 건 김정은의 행보다. 올 초부터 10여 차례 미사일 시험발사 도발을 해온 북한은 4월25일 조선인민혁명군 열병식을 정점으로 한국과 미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노골화하고 있다. 미 본토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7형의 발사 성공을 주장한 데 이어 김정은이 직접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공개 연설로 언급하는 매우 호적전이고 도발적인 움직임이다.

이런 위협은 대미용에만 그친 게 아니다. 한국을 상대로 한 협박 수준의 핵과 미사일 압박공세가 만만치 않다. 북한은 ICBM급 미사일의 시험발사와 실전배치뿐 아니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소형 SLBM 보유를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이는 은밀한 대남 타격에 목적이 있다는 게 우리 군의 판단이다.

대남 타격용 소형 전술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사실도 드러났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5월7일 언론인터뷰에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는 소형 핵탄두 완성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실험이 성공한다는 건 결국 단거리 미사일에 소형화되고 경량화한 핵탄두를 탑재해 한국과 일본을 공격하거나 위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을 겨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文 정부 때가 좋았다”란 말 절로 나오게 할 수도

북한의 도발 수순과 수위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5월20일부터 24일 사이에 이뤄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일본 연쇄 방문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취임 후 불과 10여 일 만에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는 점에서 한·미 동맹의 복원 및 강화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특히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과 그에 따른 대처 방안은 정상회담 논의의 중심축을 이룰 게 분명하다.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억제책도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시진핑 주석의 윤 대통령 방중 초청이다. 시 주석은 5월10일 취임식에 축하사절단으로 참석한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을 통해 “양측이 편리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하는 것을 환영하고 초청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남을 견제하려는 듯한 의도가 깔려있지만, 시 주석 역시 윤 대통령과 조속히 소통하길 희망하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움직임은 김정은 입장에선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어떤 도발도 자제하라’는 중국 수뇌부로부터의 은근한 압박이 될 수 있다.

셋째는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장기화로 딜레마에 빠진 러시아의 상황을 비롯한 국제 정세 요인이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사태 와중에 탄도미사일 도발을 잇따라 감행했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대한 어떤 추가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 미국 등 서방과 대립각을 바짝 세운 러시아와 중국이 유엔 무대에서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제재 움직임을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 움직임과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김정은의 무분별한 도발 행보에 중국과 러시아가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북한이 5월4일 ICBM급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7일에도 SLBM을 발사했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을 두고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술적 문제 등이 무게 있게 거론됐다. 하지만 중국의 자제 권고 때문에 공론화를 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서는 남한의 보수 성향 정부 출범에 내심 불쾌한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삶은 소대가리’ 운운하며 비방을 퍼붓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뒷맛이 개운치 않게 결별했지만 그래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 입장에서 만만하게 다룰 수 있는 측면이 많았다. 이제 새로 등장한 보수 정부의 깐깐한 대북정책과 마주해야 한다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 특히 대화에 열려있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비핵화와 인권 문제 등을 정면 거론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선은 김정은과 북한 노동당 간부들에게서 ‘문재인 정부 때가 좋았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할 수 있다. 이종섭 신임 국방부 장관이 인사청문회 답변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사용 징후가 명백하면 선제타격도 신중하게 판단해 시행할 수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 출범에 따라 미국의 대북 압박 수위가 고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미 동맹 차원에서 대북정책의 공조가 이뤄질 경우 북한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시기가 올 수 있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5월10일 주한미군의 지하갱도 수색·점령 훈련을 맹비난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북한은 “주한미군이 특수작전, 참수작전이라는 명목하에 우리의 지하갱도 점령 및 수색 훈련을 강행한 것은 미국의 북침 기도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다시 들려오는 참수작전 이야기에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북한에선 경험할 수 없는 5년 만의 정권교체 때문에 모든 게 달라진 상황에서 대남·대미 전략의 셈법도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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