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빅스텝’에 고민 깊어지는 한은 이창용호號
  • 유길연 시사저널e. 기자 (gilyeonyoo@sisajournal-e.com)
  • 승인 2022.05.19 11:00
  • 호수 17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미 금리 역전되면 대규모 자금 유출 우려
‘매파’ 신임 한은 총재, 긴축 강도 놓고 ‘심사숙고’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달 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0.50%에서 0.75~1.00%로 0.5%포인트 인상했다. 이로써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1.00~1.25%포인트에서 0.5~0.75%포인트로 축소됐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현재 1.5%다. 미국 목표금리의 상단 기준으로는 0.5%포인트로 좁혀진 셈이다.

연준은 올해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몇 차례 회의에서 0.50%포인트 추가 인상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올해 남은 다섯 번의 FOMC 중 6월과 7월에 ‘빅스텝’(0.5% 금리 인상)을 밟은 뒤 이후 금리 인상 폭을 0.25%포인트로 줄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 결과 올해 기준금리가 최종적으로 상단 기준 2.75%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왼쪽),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EPA 연합·사진공동취재단

한은, 기준금리 인상 속도 낼 듯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오는 7월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 높은 이자율을 바라는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서 자금을 빼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경향이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1270원대까지 오른 원-달러 환율을 더 밀어올리는 유인이 된다. 환율이 더 오르면 국내 수입물가가 오르면서 수입업체들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금 유출이 심해지면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려 또 다시 외환위기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증권가에선 한은이 한·미 금리 역전을 피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IB JP모건은 한은이 5월을 포함해 네 차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해 연말 기준금리가 2.5%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의 물가가 최근 급격히 오른 점도 긴축 강도를 높일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지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4.8%를 기록했다. 2008년 10월(4.8%) 이후 13년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ING은행은 한국의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조만간 5%대에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후 첫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제일 문제가 물가”라며 물가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하지만 급격한 금리 상승은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터널을 지나오면서 불어난 대출이 문제로 꼽힌다. 한은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민간신용(가계부채+기업부채)은 약 3343조원으로 코로나 사태 초기인 2020년 3월말 대비 18% 급증했다. 같은 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18.7%포인트 오른 219.9%를 기록했다. 민간의 빚이 경제 규모의 2.2배에 달한다는 의미다.

특히 자영업자 대출은 대규모 부실 사태의 ‘뇌관’으로 꼽힌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사태를 지나오면서 대출이 급증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영업자 대출은 909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말(684조9000억원) 이후 2년 동안 224조3000억원이나 급증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회복되지 않아 대출 상환 능력은 크게 떨어졌다. 한은에 따르면 작년 10월 숙박·음식업 생산은 2019년 12월(서비스업 생산지수 계절조정지수 기준)의 89.8%, 여가서비스업 생산은 72.8% 수준에 머물렀다. 더 심각한 건 대부분의 자영업자 대출이 금리 인상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한은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약 70% 수준이다. 이에 대출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이 6.4조원 늘어날 것으로 한은은 보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도 마찬가지다.

금리 상승기에 가계대출보다 기업대출의 부실 가능성이 더 클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06년 1분기~2021년 4분기 자료를 바탕으로 실증분석을 한 결과, 기업대출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약 0.2%포인트 증가하지만 가계대출 연체율은 가계대출금리 1%포인트 상승 시 약 0.1%포인트 올라가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 때문에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제주체들이 금리 인상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미국 연준의 일정에 맞춰 급하게 금리를 올리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미 금리 역전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1999년 5월 이후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됐던 때가 총 세 차례 있었지만, 국내 주식·채권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금은 모두 순유입을 기록했다. 구체적으로 1999년 6월~2001년 2월에 174억 달러, 2005년 8월~2007년 8월에 347억 달러, 2018년 3월~2019년 10월엔 187억 달러가 각각 순유입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정책금리의 역전 그 자체보다는 국내 경기침체 및 금융 건전성 저하, 글로벌 경기 상황 등의 요인이 외국인 투자 유출입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며 “급속한 금리 인상으로 국내 경제 체력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금리 역전 때도 외국인 자금 순유입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권에서 전형적인 ‘매파’로 평가받았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학계와 관료 영역, 국제기구 등을 두루 거친 그는 긴축적 통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취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스스로를 ‘장기적으로 비둘기파’라고 밝히면서도 “오늘까지 봤을 때 물가가 조금 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앞으로도 통화정책은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며 지금까지 볼 때 그런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금리 인상 속도에 대해선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총재도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은 문제가 있다는 뜻의 발언을 했다. 그는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4%대로 높은 수준이지만 성장률은 미국만큼 견실한 상황이 아니라서 미국보다 (기준금리 인상) 속도에 조심스럽다”면서 “금리를 빠르게 올리게 되면 그에 대한 부작용도 있다”고 했다. 이 총재는 오히려 한·미 금리 역전도 허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는 취임 전 인사청문회에서 “과거에도 한국과 미국 간 금리가 역전된 사례가 있었지만, 대규모 자본 유출은 발생하지 않았다”며 “국내 펀더멘털이 양호하고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이 유럽, 남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일각에서 우려하는 자본 유출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